결국 클럽-경찰 유착 핵심 세력 근처도 못 간 채 사실상 사건 종결

경찰서 연행 당시 김상교씨의 모습
경찰서 연행 당시 김상교씨의 모습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버닝썬 사건을 처음 접한 것은 지난해 12월 20일이었다. 당시 김상교 씨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신의 사연을 적어 게재했다. ‘2018년 대한민국 경찰서에서 벌어진 일입니다’라는 제목의 이 글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으로 가득했다. 차근차근 글을 읽고 김 씨의 개인 SNS를 찾아 연락을 취했다. 답장은 1시간 20여 분 뒤에 왔다. “충격적이었다. 몸은 괜찮나” 질문을 건넸다. 김 씨는 “오른쪽 손가락은 (사건) 3주가 지났지만 감각이 없어서 신경외과 검사 중”이라며 “갈비뼈는 전치 4주 진단으로 부러졌는데 아직 뼈가 안 붙은 것 같다”고 대답했다. 중상이었다.

승리 불구속·윤 총경 무혐의로 ‘몸통’ 잡기는 불가능해져

용두사미로 끝났다는 비판 피하기 어려울 듯

사건은 2018년 11월 24일 김 씨가 친구 생일을 맞아 클럽 ‘버닝썬’을 방문한 날 벌어졌다. 증언에 따르면 이날 김 씨는 샴페인 3잔을 마신 뒤 클럽을 나서던 중 한 여성을 쫓던 남성을 막아섰다. 남성은 버닝썬의 대표이사였다고 김 씨는 기억했지만 몇 달 뒤에 이루어진 경찰 조사 결과 그는 일반 손님으로 드러났다.
남성은 김 씨를 폭행했고, 버닝썬 가드들은 이 모습을 지켜봤다. 클럽 밖으로 끌려나간 김 씨는 버닝썬 영업이사 장모 씨 등 2명에게 또다시 폭행을 당했다.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맞고서야 김 씨는 경찰에 신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추후 공개된 CCTV에는 출동한 경찰이 김 씨만을 지구대로 연행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쌍방폭행’ 혐의가 적용된 두 사람 중 한 사람만을 연행한 경찰의 대응은 이후 큰 논란을 낳았다.

최초 제보자 김 씨 “지구대에서 경찰들에게 추가로 폭행당했다”

경찰 폭행 ‘불기소’ 송치

연행된 김 씨는 지구대에서 경찰에게 추가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욕설을 하며 다리를 걸어 넘어트린 후 발로 얼굴을 3회 가격했다는 것이다. 또 5명 안팎의 경찰이 자신의 몸을 짓밟고 항의하는 어머니를 강제로 끌어냈다고도 했다. 보고도 믿기 어려운 주장이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단순 폭행 사건으로 끝날 사안이 아니었다. 기자는 “진단서를 첨부해 경찰을 고소할 계획인가”라고 물었다. 김 씨는 “경찰에 주요 증거가 될 CCTV 열람 신청을 했으나 타당한 사유 없이 비공개 결정이 나왔다”면서 “피 흘리며 맞은 저에 대한 가해자는 없는 상태”라고 호소했다.
이후 사건의 당사자가 된 강남경찰서에 진위를 물었다. 강남서 관계자는 “김 씨의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라면서 “경찰이 시민을 폭행한다는 것은 바로 구속될 정도로 중대한 범죄”라고 반박했다.
5달여가 지난 2019년 5월 15일, 서울지방경찰청은 경찰이 김 씨를 폭행하고 증거인멸을 시도했다는 사안에 대해서 불기소 의견을 냈다. 역삼 지구대 경찰관 71명의 휴대폰 72대와 공용 휴대폰 18대, 클럽 관계자 706명 간의 통화·계좌 내역을 분석한 결과다.
경찰은 또 김 씨가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한 ‘지구대 내 CCTV 및 순찰차 블랙박스 증거인멸’ 고소장 관련 조사에서도 영상 조작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김 씨에게 성추행과 명예훼손·폭행·업무방해 등의 혐의가 있다고 판단,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결국 버닝썬 사건의 공론화에 불을 붙인 ‘경찰의 민간인 폭행·클럽과의 유착’ 의혹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 내려지게 됐다.

‘물뽕’부터 ‘연예인 몰카’까지…버닝썬 사건이 향한 곳

김 씨는 사건이 뜨거운 관심을 받을 당시 버닝썬이 일명 ‘물뽕’이라는 마약을 이용해 여성 고객들을 성폭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수의 제보를 접한 그는 자신의 SNS 등을 통해 물뽕 성폭행이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성토했다. 실제 일각에서는 ‘버닝썬 물뽕 동영상’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음란 동영상이 나돌기도 했다. 방송과 언론도 앞다퉈 물뽕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이 역시 의혹만 무성했을 뿐 확인된 사례는 없이 사그라들었다. 조직적 마약 유통설도 나돌았으나 이는 사실무근으로 조사됐다. 이문호(29) 버닝썬 대표와 중국인 A씨(애나) 만이 마약 투약 혐의로 기소됐다.
폭행 사건에서 시작돼 성폭행, 마약 등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파헤치던 수사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방향이 크게 틀어졌다. 다수의 연예인이 포함된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단톡방)’에서 불법 촬영물을 공유한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가장 먼저 버닝썬의 사내이사였던 승리(29·본명 이승현)가 일본인 투자자를 상대로 성 접대를 지시한 내용이 공개됐다.
이어 가수 정준영(30)이 2015~2016년 사이 성관계하는 장면을 몰래 찍은 등 불법 촬영물 11건을 단톡방에 게재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정준영은 단톡방에서 피해자를 조롱하는 듯한 음담패설까지 하며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이 밖에도 로이킴과 에디킴, 그룹 FT 아일랜드 출신 최종훈 씨도 음란물을 올린 혐의로 입건돼 조사를 받고 있다. 문제는 연예인 스캔들에 시선이 집중되며 사건의 본질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명운’ 걸겠다더니…초라한 성적표 받아든 경찰

버닝썬 사건 초반 민갑룡 경찰청장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수사에 임하겠다”는 각오를 밝힌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도 직접 나서 엄중 수사를 지시했다. 하지만 무려 107일간 152명의 인력이 투입돼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분투했다고 하기엔 성적표가 초라하다. 승리 등과 유착 의혹이 제기된 경찰관 윤모(49) 총경에게는 직권남용 혐의 하나만이 적용됐다. 김영란법 위반도, 뇌물 수수도 무혐의로 종결했다. 승리와 유인석 전 유리홀딩스 대표도 구속을 피했다.
버닝썬이 국민적 관심을 받았던 것은 이번 사건을 통해 그동안 소문만 무성하던 ‘높으신 분들의 검은 거래’가 수면 위로 떠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대적인 수사에도 몸통은커녕 꼬리도 제대로 자르지 못하며 경찰과 법조계에 대한 국민적 불신만 더욱 커지게 됐다.

국민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수사 결과…민심은 행동에 나설까

수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불법 향응 소비, 범죄 가담 VVIP 고객 수사 착수 및 유착 공권력 특검, 청문회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게재됐다. 청원은 만 하루가 지난 16일 현재 6만 2000명이 넘는 서명을 얻었다. 청와대의 공식 답변 기준인 20만 명 달성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이처럼 청원 동의 서명이 급속도로 증가하는 것은 국민이 경찰의 수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대놓고 봐준다”는 강도 높은 비판까지 쏟아지는 상황이다. 최초 제보자 김 씨 역시 “청문회, 특검, 시위 분명 필요해 보인다”는 의견을 밝혔다. 자칫 국민이 정말로 행동에 나선다면 경찰로서는 더욱 곤란해질 수 있다. 수사는 사실상 종결됐지만 사건은 아직 매듭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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