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사직을 구한 불멸의 명신 이제현

 

그해(1351년) 섣달 초하룻날. 
이제현은 가까운 조정 관료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이승로(李承老), 윤택(尹澤), 이공수(李公遂), 백문보(白文寶), 최영(崔瑩)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세칭 이제현의 문생들이라고 할 수 있는 면면들이었다.  
음식 장만이나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는 가족들은 분주했지만 즐거운 표정이 역력했다. 때맞추어 셋째 부인 서씨가 소담스런 주안상을 들고 들어왔다. 
도첨의정승으로 국정을 총괄하는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의 자리에 오른 이제현의 목소리에는 천근보다 무거운 위엄이 담겨있었다.
“오늘 나와 함께 술이나 한잔 하자고 이렇게 한자리에 모셨네. 그러니 오늘은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파탈하세.” 
“예, 시중 어르신.”
술이 몇 순배 돌고 돌았다. 당연히 즐거워야 할 자리였으나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이제현의 내심을 모르고 있었으므로 함부로 의사를 개진할 수가 없었다. 이제현이 약간은 민망한 안색으로 무겁게 입을 열었다. 
“두 모후에 의한 ‘섭정의 세월’이 장장 7년이나 계속 되었는데, 마침내 수렴청정의 발은 걷혔네. 태조 왕건 대왕이 피를 흘리며 다져온 고려 왕업이 몽골에 의해 짓밟힌 지도 백년이 다 되어가네. 금상이 고려를 다시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조정의 면목을 일신해야 하네. 부원세력들과 권문세족들을 견제할 수 있도록 중요 부서의 우두머리를 정해야겠네. 잠시도 지체되어서는 아니 될 일 아닌가.”
이제현의 말이 떨어지자 한동안 어색했던 분위기가 일순간 바뀌었다. 
이승로가 무거운 침묵을 깨고 폐행세력들을 축출해야 하는 당위성을 말했다.
“새로운 조정의 새 질서를 위한 폐행세력들의 축출이 있어야 하는 것은 고금의 역사가 정해 놓은 이치이옵니다.”
윤택이 거들고 나섰다. 
“이번 조정의 인사는 신왕의 등극에 공이 있는 사람이 빠지고 공이 없는 사람의 이름이 오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옵니다.”
정당문학 이공수가 구체적인 방법을 적시했다.
“왕의 모후로서 수렴첨정을 했던 덕녕공주의 측근들과 전왕(충정왕)의 외척세력들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축출해야 하옵니다.”
전리판서 백문보가 새로운 조정의 개혁 방안을 말했다.
“먼저 신라시대의 숭불(崇佛)이 나라에 미친 폐단을 시정하고, 과거제도의 전횡과 부패를 개혁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하옵니다.”
듣고 있던 이제현이 불쑥 이야기 했다.
“최영, 자네는 왜 한마디도 않는가?”
“원로들께서 좋은 이야기를 다 하신지라…….”
16세 때 사헌부 간관을 지냈던 부친 최원직으로부터 ‘너는 마땅히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라는 유훈을 받은 후 이를 좌우명으로 삼고 실천해 온 최영은 이 당시 우달치(迂達赤, 임금의 신변을 호위하던 숙위)에 임명되어 있었다. 

이제현은 어조를 낮추어 말했다.
“지금은 난세가 아니던가. 난세에는 금상과의 친불친(親不親)으로 관직의 상하를 결정해서는 안 되네. 나는 재능만 있다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등용하겠네. 그것이 천하의 민심을 얻을 수 있는 길이며, 켜켜이 먼지 속에 갇혀 있던 나를 불러내 준 금상께 보답하는 길이기도 하다네. 세상일이란 다 자신만의 직분이 있게 마련이네. 꿩을 잡는 일에는 해동청 보라매가 으뜸이고, 새벽을 알리는 일에는 수탉이 으뜸이네. 이처럼 맡은 바 직분이 잘 지켜지지 않으면 세상이 어수선해지는 법이네. 해서…… 자네들이 어떤 직분을 맡게 되든지 그 직분을 위해 신명을 바쳐주기 바라네.”
“예, 시중 어르신.”
“≪삼국지≫의 조조에게는 경륜을 갖춘 명재상 순욱(荀彧)이 있었고, 유비에게는 실용적 사고를 가진 제갈량(諸葛亮)이 있었으며, 손권에게는 지략가 주유(周瑜)가 있었네. 이들은 모두 임금보다 먼저 생각하고, 임금보다 멀리 내다보고, 임금보다 재빠르게 움직였다고 생각하네.”
“그러하옵니다.” 
“나는 삼국지의 명재상들처럼 뛰어난 재주는 없으나, 신왕의 뜻을 잘 받들어 백성과 나라에 이로운 일을 힘써 행할 생각이네. 이를 위해 충목왕 때 중단된 개혁정책을 적극적으로 수행할 계획이니 자네들이 많은 힘이 되어 주길 바라네.” 
“예, 시중 어른신의 뜻을 잘 받들겠사옵니다.”
참석자들에게 자신의 포부를 밝히고 협력을 요청한 이제현이 건배를 제의했다.
“자아, 모두들 고려 사직을 위해 한 잔 쭈욱 드세나.”
좌중은 순식간에 흥청거렸다. 술항아리가 수없이 들락거리자 방안은 취흥으로 가득했다. 그날의 주연이 파한 것은 자시가 넘어서였다. 측근들이 대문을 나섰을 때 사위는 대낮같이 밝았다. 수십 명의 갑사 군사들이 이제현의 저택을 횃불을 들고 숙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현은 대문에서 측근들을 배웅하고 조용히 정원을 거닐었다. 미지의 앞날을 설계하기 위해 골똘한 생각을 굴려보고 있었다. 먼저 타계한 최해, 안축, 박충좌의 얼굴이 주마등같이 그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이제현은 깊은 상념에 잠겼다.
최해, 안축, 박충좌가 모두 살아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벗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허전한 것인가. 아니면 제자 이곡, 처남 왕후라도 있었더라면……. 이 모든 것은 주책없이 오래 산 업보일 테지…….
이때 다소곳이 나와 서 있던 셋째 부인 서씨의 촉촉한 음성이 겨울밤을 갈랐다.
이제현의 둘째 부인 춘천 박씨는 중년이 지나 몸이 쇠약해지자 집안일을 돌보기가 어려웠다. 그리하여 이제현과 평당(平當) 서씨 지서주사(知徐州事) 중린(仲麟)의 딸의 혼인을 앞장서서 성사시켰다. 서씨 부인은 슬하에 딸만 둘을 두었다. 
“대감, 바람이 찹니다. 어서 방안으로 드시지요.”
“그래요, 드십시다.”
이제현은 서씨 부인의 어깨를 다독이듯 감싸 안으며 방으로 들었다. 서씨 부인의 체온이 이제현에게는 모처럼 여인의 향기로 느껴졌다. 
은은한 향내가 흐르고 있는 방으로 들어선 이제현은 서씨 부인을 품에 안았다. 황촛불이 그윽하게 타고 있었다. 서씨 부인도 이제현의 목을 부드럽게 휘감았다. 서씨 부인의 아름다운 얼굴에 등촉의 불빛이 어른거렸다. 오랜만의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보내기엔 겨울밤이 너무 짧았다. 벌써 어디선가 새벽을 알리는 닭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제현, 국정 쇄신업무에 착수하다

다음 날 아침. 
이제현은 새로운 다짐을 안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십자가의 상점들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으며, 다만 살을 에는 겨울바람이 귓전을 세차게 때릴 뿐이었다. 이제현은 길가에 떨어져 뒹구는 낙엽을 바라보며 고려 조정의 앞일을 생각했다. 
얼마 후면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개경에 당도할 것이다. 그 안에 급한 불을 미리 꺼놓아야지. 개혁의 산고를 위해서는 희생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한 두 사람을 물러나게 한다고 될 일은 아닐 테지……. 
이제현은 시대를 보는 눈이 남달리 예민했다. 그의 눈에 비친 고려의 혼조는 모두 지금 그가 수습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런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이제현을 태운 자비는 십자가를 지나 남대가를 통해 황성의 정문인 광화문에 어느새 당도하고 있었다. 
조정에는 성균관 유생들로부터 ‘온갖 비행을 일삼고 국정을 농단하여 나라를 망친 오적(五賊 : 배전, 노영서, 정천기, 한대순, 윤시우)을 귀양 보내야 한다’는 상소가 빗발치듯 올라와 있었다. 이연종과 이공수가 막후에서 여론을 일으킨 것이다.
이제현은 조정의 쇄신 업무에 착수하기 전에 대궐 안의 대웅전(大雄殿)을 찾아가 관음보살 앞에 향을 피웠다. 그리고 묵상에 잠긴 채 ‘자신을 일깨워 자비를 가르쳐 달라’고 기원했다. 기도를 통해 마음의 평온을 얻은 이제현은 먼저 왕위 교체기에 나타나기 쉬운 일련의 민심수습책을 실시하였다. 공민왕이 귀국하기 전에 백성들이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먼저, 도전(道殿, 도교에서 신을 모셔놓은 사당)과 사당을 수리하고 법관들에게 명령하여 지방관들의 공적과 과실을 조사하도록 조치하였다. 그리고 ‘상은 무겁게 벌은 가볍게’ 하고, 백성들의 노역을 가볍게 하고, 경비를 절약하여 국가 재정의 기초를 충실하게 하는 한편 조세를 경감시켜 민심을 수습하였다.
다음으로, 실력이 없거나 부정비리의 혐의가 있거나 추문이 있는 자들을 가려 정치 일선에서 퇴장시켰다. 특히 당시까지 득세하였던 덕녕공주의 측근들과 충정왕의 외척 세력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하였다. 
악질분자 이문 배전(裴佺)이 행성옥(行省獄)에 투옥되었다. 직성군 노영서(盧英瑞)는 귀양 갔다. 찬성사 정천기(鄭天起)는 제주목사로, 지도첨의 한대순(韓大淳)은 기장감무로 좌천되었다. 찬성사 윤시우(尹時遇)도 각산(角山, 익산)으로 유배되었다. 권세 욕심, 재물 욕심, 계집 욕심에 젖어 있던 오적(五賊)은 사필귀정 조정에서 쫓겨나는 말로를 겪게 된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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