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연한 ‘갑질’, 황당 사례 공개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 없음. [뉴시스]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 없음.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구매한 상품을 문제 삼아 해당 기업‧매장을 상대로 과도한 피해보상금을 요구하거나, 거짓으로 피해를 본 것처럼 꾸며 보상을 요구하는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악성 소비자)’. 일명 ‘진상고객’으로도 불린다. 블랙컨슈머 문제가 지속적으로 불거지면서 관련 법안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관측되고, 업계에서는 차단까지 나섰지만 여전하다는 하소연이 들려온다. 결국 ‘올바른 시민의식’과 ‘국가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일요서울은 사회 각계에서 일하고 있는 여러 노동자들을 만나 블랙컨슈머의 황당 갑질 사례를 들어봤다.

진상고객들, 무리한 요구하며 서비스 제공 강요···물건 던지고 폭언까지

불법 행위 판쳐 처벌 가능성 농후···‘손님은 왕’ 의식개조 필요

#1. 강남구에 위치한 미용실. 고객은 예약을 해놓고 미용실에 등장하지 않았다. 헤어 디자이너는 고객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객은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다른 날로 예약해달라고 요청했다. 다른 날은 예약시간보다 늦게 와서 디자이너의 예약 일정이 뒤틀렸는데도 “약속시간이 다가오니 빨리 해달라”고 우겼다. 결국 고객은 일정에 늦었다며 할인을 요구했다. 디자이너가 어려보인다고 느끼면 서슴없이 반말을 뱉기도 한다.

#2.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 다니는 A씨. 그가 다니는 매장의 브랜드는 ‘소비자 갑질’로 유명세(?)를 떨친 바 있다. 한 고객은 A씨에게 “내가 평소에 먹던 맛이 아니다”라며 다른 음료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고객의 요청은 수상했다. 똑같은 음료가 아닌 신 메뉴만 골라서 6번을 바꿔먹었기 때문이다. 고객이 한입, 두입 먹은 뒤 계속 바꿔달라고 했으나 A씨는 웃으며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 본사 방침이 ‘고객 말에는 무조건 YES’ 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방침 때문에 무리한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본사는 규정을 바꾸기 시작했다.

#3. 피자집에서 홀서빙을 하는 B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고객이 무리한 요구를 했기 때문이다. 고객은 테이블에 피자를 받은 뒤 갑자기 메뉴판을 달라고 요청했다. 5분정도가 흐르고 고객은 B씨를 불러 메뉴판을 펼쳐 보였다. 고객은 ‘테이블에 나온 피자’와 ‘메뉴판에 있는 피자’ 위에 뿌려진 소스 줄의 개수‧모양이 다르다며 소리를 질렀다. B씨는 고객에게 “사람이 만드는 거라 메뉴판과는 상이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고객은 피자가 메뉴판 사진과 달라 기분이 나쁘다며 대놓고 서비스 메뉴를 요구했다. B씨는 결국 매니저를 불렀고, 정식으로 컴플레인(complain)을 걸겠다는 고객에게 서비스 메뉴를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4. 백화점 내 브랜드 매장 중간급 관리자인 C씨는 고객이 던진 옷에 맞았다. 옷에서 보풀이 발생했지만 보상을 해주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C씨는 보풀이 일어났다는 고객의 옷을 받고 원단의 짜임이 제조시점부터 잘못됐을 수 있어, 한국소비자연맹에 의류심의를 접수했다. 그러나 연맹에서는 “옷에는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C씨는 고객에게 전화로 설명을 한 뒤 자세한 내용이 더 궁금하다면 매장 방문을 해달라고 안내했다. 고객이 오자 C씨는 심의 의견서를 보이며 “생활습관, 가방 등으로 마찰이 일어나서 생긴 보풀이다. 원칙적으로 이런 것은 보상이나 교환을 해드릴 수 없다. 필요하시면 보풀제거를 사비를 들여서라도 수선 전문점에 요청해보겠다”고 말하자 고객은 옷을 던졌다. 해당 옷은 15만 원 정도라 판매를 하면 10%인 1만5000원이 남는다. 그러나 보풀제거를 의뢰하면 1만 원이 넘는 비용이 든다. 결국 남는 것이 없는 셈이다. 사비를 들여서라도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려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욕’뿐이었다.

#5. 백화점 내 브랜드 매장 중간급 관리자인 D씨도 C씨와 비슷한 사례를 하루에 3번 이상 겪었다. 일전에 일했던 브랜드의 의류 중 하나는 원단 자체가 좋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 옷을 산 고객 절반 이상이 항의를 하러 매장에 방문했다. D씨는 판매직원이기 때문에 고객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자세한 설명과 친절한 응대, 고객센터 안내 등이다. 그러나 고객들은 D씨에게 “내가 누군지알아?”, “죽을래?”, “XXX” 등의 폭언과 협박으로 일관했다. D씨는 고객들에게 연신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건네며 고개를 숙였다. 고객의 흥분이 사그라들지 않아 사비를 들여 교환‧환불 조치를 해줄 수밖에 없었다.

#6. 성동구에 위치한 주점. 고객은 다급하게 직원을 불렀다.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여러 개 나왔다며 절반 이상 먹은 음식을 직원에게 건넸다. 새로운 음식으로 바꿔달라고도 요청했다. 직원은 매뉴얼대로 “죄송하다”고 말했지만 고객의 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음식에서 나왔다는 머리카락은 길고 염색까지 돼 있었다. 그러나 주방‧홀 직원은 모두 남자이며, 위생을 위해 반삭(半削)을 하고 머리두건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방에 있던 관리자는 고객에게 이 같은 내용을 조용히 설명했다. 그러자 당황한 기색으로 소리를 지르며 “나를 의심하는 것이냐”고 말했다. 이어 “이런 곳에서는 식사를 못하겠다. 돈도 내기 싫다. 오히려 음식 값만큼 돈을 내놔라”라고 소리쳤다. 옆에 있던 손님들도 덩달아 놀라며 주점 안은 아수라장이 됐다.

“시민의식 부재가 원인”

이처럼 사회 각계에서 블랙컨슈머의 갑질 횡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온라인에는 “식품기업에 이물질이 있다고 ‘허위 정보’를 보내면 선물세트를 공짜로 받을 수 있다. ‘꿀팁’이니 참고해라”라는 글이 난무할 정도다.

지난 2015년 현대백화점 모녀 갑질 사건, 같은해 인천 신세계 귀금속 매장 갑질 사건, 2018년 롯데백화점 화장품 직원 폭행 사건 등 많은 논란이 불거진 후 일부 백화점과 많은 기업들이 블랙컨슈머 갑질 차단에 나섰지만 근절이 어려울뿐더러, 시간이 흐르자 본래 상황으로 돌아간 모양새다.

블랙컨슈머의 행동에는 불법적인 요소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 이중 소비자가 피해를 봤다며 온라인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경우 정보통신망법에 저촉된다.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또 악성 게시물‧댓글 등을 지속적으로 다는 행위, 매장 내 횡포도 업무방해에 해당할 수 있다. 일방적인 비난은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블랙컨슈머들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배경에는 ‘손님은 왕’이라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블랙컨슈머를 응대한 노동자들도 “시민의식의 부재가 원인”라고 입을 모으는 상황. 전문가들은 기업‧관계자와 소비자 간의 원활한 소통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의식개조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갑질 행위로 인한 처벌 가능성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도 있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국가적 차원의 관심도 필요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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