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오럴 히스토리] - 정태익 편

[뉴시스]
정태익 한국외교협회 명예회장 [뉴시스]

국립외교원 외교사연구센터에서 ‘외교’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 현대사를 조명하기 위해 오럴히스토리사업 ‘한국 외교와 외교관’ 도서 출판을 진행해 왔다. 지금까지 총 16권의 책이 발간됐다. 일요서울은 그중 정태익 전 주러대사의 이야기가 담긴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지면으로 옮겼다.

 

“대통령의 외교 철학·수완은 국가 진로에 심대한 영향 미쳐”

“베트남 파병에 따른 경제적 이익으로 산업 발전해”

 

-대사께서는 세 차례에 걸쳐 청와대에서 근무하면서 박정희 대통령부터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여섯 분의 국가지도자를 모셨다. 대사께서 가까이서 관찰한 역대 대통령들의 외교 스타일과 리더십에 대해서 말해 달라.

▲최고의 외교관은 대통령이다. 외무장관과 해외 주재 대사 등 모든 외교관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관에 불과하다. 대통령의 외교철학, 외교적인 수완은 국가의 진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대통령의 뛰어난 외교 역량이 중요하다. 독일 통일의 핵심 주역은 헬무트 콜 수상과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상이다. 냉전시대 소련 외교의 주역들도 스탈린, 흐루시초프, 브레주네프, 고르바초프 서기장이었다. 흐루시초프는 UN 연설, 브레주네프는 제한주권론이라는 독트린을 발표했고,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를 천명했다. 수뇌의 생각이 국가 외교정책인 것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지도자의 전략적 판단이 미국의 대내외 정세와 세계질서 형성에 얼마나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가. 미국 닉슨 대통령이 1972년 상하이 공동성명을 통해 소련과 갈등관계에 있던 중국과 손을 잡았다. 또 소련 해체는 레이건 대통령의 외교적인 판단과 조치가 큰 배경이 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정말 뛰어난 외교관이고 국제정세를 잘 판단해 기민한 외교를 했다. 남북 간 경쟁에서 무엇보다도 경제력을 갖춰야 안보도 튼튼히 할 수 있다는 국정철학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탁월한 선택이 남북 간의 국력을 역전시켰고, 오늘날의 남북관계에서 한국이 우위를 점하게 만들었다. 앞으로 통일할 때 나는 우리 헌법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요청한 베트남 파병을 결정할 때도 전략적인 안목에서 처리했다. 미국의 요구에 보상 논리로 대응한 것이다.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남침을 막기 위해 미군이 주둔해 있는데, 베트남전쟁에 한국군을 참전시키면 국방 공백이 생기므로 이를 보상해 달라는 논리다.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에 따른 보상으로 받은 경제적 이익으로 산업 발전한 거다. 산업화를 위한 종잣돈을 마련한 것이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를 통해서 일본에서 받은 청구권 자금이 산업화에 기여한 것과 마찬가지로 베트남전에 한국군이 참견함으로써 획득한 경제적 이익이 산업의 고도화에 기여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탁월한 외교 전략가라고 생각한다.

내가 노태우 대통령의 비서관을 했는데,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밝힌 북방정책은 북한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가져온 외교 전략의 선택이다. 1988년 7·7 선언은 미수교국인 소련과 중국 그리고 동유럽 국가들과의 국교 수립 그리고 북한과의 본질적인 관계 재정립 및 궁극적인 화해를 위해 북방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북방정책의 성과는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어져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됐고 1992년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도 합의됐다. 이처럼 우리가 남북관계를 주도해 나가게 된 원동력은 노태우 대통령의 탁월한 외교적 선택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1990년 소련과, 1992년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1991년 9월 18일에는 남북한 UN 동시가입이 이뤄졌다. 한마디로 북방정책의 성과는 대한민국의 세계화로 연결됐다.

김대중 정부 시대에는 내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으로 봉직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 그리고 대일본 동반자정책은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대북 햇볕정책을 통해서 우리가 북한에 대해 엄청난 정보도 갖게 됐고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 될지도 알게 됐다. 근본적으로 북한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고 우리가 남북통일을 주도적으로 해야 된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 덕분으로 생각한다.

-대사는 역사 속에서 어떤 인물을, 어떤 이유로 존경하는지 궁금하다. 덧붙여 대사께서 평생 간직해 온 외교철학에 대해서도 말해 달라.

▲시저는 전쟁터에 나가 싸워 제국 건설을 위한 영토 확장과 안정·평화를 이뤄냈고 그 과정에서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로마 역사 속에서 대부분의 리더가 집권을 하면 복수를 했는데 시저는 복수를 하지 않았다. 로마가 공화정으로 융성·발전했는데 영토가 확장됨으로써 공화정의 한계가 노정돼 황제체제가 필요해지게 된다. 시저가 황제가 되고자 루비콘강을 건너 최고 지도자가 되자 반대세력에 의해 암살을 당했지만 후계자로 옥타비아누스를 지정한 것은 탁월한 혜안이었다. 지명자가 권력투쟁을 통해 황제가 됐다. 시저는 그의 자질을 일찍이 내다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지도자로서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을 존경한다. 또 고려의 서희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거란과 외교담판을 통해서 오히려 영토를 확장했다. 거란과 여진 사이에서 역사적인 순간에 혜안을 가지고 외교 교섭을 잘 해낸 것이다. 그런데 병자호란 때 우리의 외교적인 판단 잘못으로 수난을 당했다. 조선 말에 국가가 망한 것도 외교적인 선택이 잘못돼서 그런 거다. 그런 면에서 위기의 순간에 탁월한 선택을 통해 위기를 극복한 역사적 인물에 존경심을 갖고 있다.

외교는 결국 끈임 없이 국익을 수호하는 행위다. 국익이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이 중요하고 국익을 수호해나가는 것이 외교관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국익을 수호하기 위한 외교관의 행위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국익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경우에 따라 책략도 써야 한다. 외교관은 최고의 간첩이라고 한다. 외교 목표 추구의 바탕은 신뢰성이라고 생각한다. 국익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신뢰를 쌓으며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외교관의 능력이다.

-대사께서는 외교의 주연은 대통령이고 외교관은 조연이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대통령의 외교철학과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는 외교 당사자의 외교철학이 항상 같을 수는 없다고 본다. 만일 충돌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되나.

▲조지 캐넌이 유명한 이유는 자기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보고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서방 진영의 대전략이 됐지만 보고 방법은 비밀 경로를 통해서도 했고 공개적으로도 알려 공론화했다. 공개 또는 비공개 등 여러 방법으로 자기의 생각을 전달해 리더가 올바른 선택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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