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경 대응’아닌 ‘민간인의 경찰 폭행’이 본질

[사진 = 구로경찰서]
[구로경찰서]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지난 한 주간 온라인을 가장 뜨겁게 달군 주제는 단연 ‘대림동 여경’이었다. 한 중국 동포 커뮤니티에 올라온 이 영상은 삽시간에 퍼지며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1분 안팎의 짧은 영상에는 만취한 상태로 경찰에게 저항하는 주취자와 이를 달래는 남자 경찰관(남경), 여자 경찰관(여경)의 모습이 담겨 있다. 문제는 주취자가 남경의 뺨을 때리면서 시작됐다. 폭행을 당한 남경은 주취자의 팔을 꺾어 넘어트린 뒤 수갑을 채우려 했다. 이 과정에서 주취자 일행이 남경을 밀치며 방해했다. 옆에 있던 여경이 가세했으나 힘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피의자 아닌 여경에 분노한 국민들
민갑룡 청장 “제 할 일 다했다. 감사하다” 정면 돌파

주취자를 제대로 제압하지 못하는 듯한 영상 속 여경의 모습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국민은 거센 비판을 쏟아냈다. 구로경찰서에서 여경의 대응에 문제가 없었다며 1분 59초 분량의 전체 영상을 공개했지만 논란은 더욱 커졌다. 해당 영상에는 여경이 일반 시민에게 “남자분 한 분 나오세요. 빨리빨리”라며 도움을 요청한 장면이 담겼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경찰이 시민에게 피의자를 제압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라며 비판의 강도를 더욱 높였다. 성별에 관계없이 치안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만 경찰이 돼야 한다는 주장에 점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매뉴얼대로 대처 잘했다” 경찰, 국민 분노에 ‘정면 돌파’

구로경찰서는 “여경이 취객을 제압하고 체포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폭발한 여론을 감당하기에는 무리였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경 비판은) 현장을 잘 모르는 분들이 할 수 있는 말”이라며 “취객 한 분을 남경도 무술 유단자라 하더라도 혼자 제압하기 어렵다”고 힘을 보탰지만 소용없었다. 해당 여경을 징계하는 것을 넘어 여경을 없애자는 ‘여경 무용론’까지 나오자 결국 민갑룡 경찰청창이 직접 나섰다. 그는 “당시 경찰들의 조치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고 단언하며 “경찰을 대표해 감사드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칭찬했다. 비판 여론에 대해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이다. 민 청장은 또 “영상 속 여경이 몸과 마음에 충격을 입었다”면서 “힘을 내 다시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길 바란다”라고 응원을 전하기도 했다.

민 청장 발언에 타오르는 여론

각오한 것이겠지만, 민 청장의 발언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국민들은 눈과 귀를 닫았다며 경찰 전체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여경의 채용 과정과 내근 위주의 근무 환경을 뜯어 고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여경은 정말 경찰로서의 업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것일까? 이번 사안을 통해 ‘여경 무용론’까지 나오는 것이 정당할까? 당시 상황을 다시 살펴보면, 남경이 주취자를 넘어트린 뒤 팔을 잡아 수갑을 채우려 한다. 이때 일행이 남경을 방해하기 위해 덤벼든다. 여경은 즉시 지원 요청을 하고 일행을 막아섰지만 힘에서 밀렸다. 그러자 남경이 일행에게로 향하고, 여경은 넘어진 주취자를 무릎으로 눌러 제압하고 도움을 청한다. 이후 상황은 검게 처리돼 확인할 수 없지만, 경찰에 따르면 당시 현장을 지나던 중 상황을 보고 멈춘 교통경찰이 내려 “(주취자 수갑) 채워요?”하고 묻자, 여경이 “채워요”라고 했으며 결과적으로는 여경이 주취자 손목을 꺾어 직접 수갑을 채운 것이 사건의 전말이다. 결국 여경이 주취자를 직접 체포한 것이다.

“사건의 본질은 공권력에 대한 도전”
 
가장 큰 논란을 일으켰던 ‘시민에 대한 경찰의 도움 요청’의 경우에도 크게 문제될 부분이 없다. 피의자를 검거하는 경찰을 도와 ‘용감한 시민상’을 수상한 시민의 사례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무수히 많다. 꼭 여경뿐 아니라 남경 역시 시민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뜻이다. 이번 역시 시민이 피의자를 직접 검거했다면 ‘용감한 시민상’을 수여해야 하는 사례다. 시민에게 지시하는 듯한 여경 개인의 말투를 문제 삼을 수는 있겠으나, 여경 전체를 묶어 ‘무용론’까지 끌고 가기엔 논리적으로 무리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자는 21일 사건이 벌어졌던 현장을 직접 찾았다. 그런데 ‘대림동 여경’ 사건이라는 영상 제목과는 다르게 현장은 행정구역상 구로동이었다. 그럼에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상에 퍼진 영상의 제목은 ‘대림동’이었다. 사건을 보도한 기사에서도 대림동이라는 단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각에서 대중에게 자극적으로 각인돼 있는 대림동이라는 단어에 여경을 묶어 혐오를 부추기고, 사건을 젠더 갈등으로 이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여경이 아니다. 경찰이 주취자에게 폭행당했다는 점, 공권력이 그만큼 약화됐다는 점이 가장 문제다. 필수적 존재인 여경에 대해 무용론을 제기하는 것은 소모적인 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생산적인 결론을 위해서는 공권력 강화 방안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공권력 강화 방안 마련…“여경 체력검정 기준은 개선”

경찰은 22일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검토해 전국에서 통일된 물리력 행사 기준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기준안에 따르면 물리력은 대상자의 행위에 따라 5단계로 구분돼 행사한다. 경찰을 밀치거나 지시에 협조하지 않고 버틸 경우 누르기 등으로 신체를 제압할 수 있다. 대상자가 주먹이나 발 등으로 폭력을 행사하면 경찰봉과 전기 충격기 사용이 가능하다. 흉기를 사용하는 대상자에게는 권총도 쏠 수 있게 했다. 이는 ‘소극 대응’이나 ‘과잉 대응’ 논란을 최대한 막기 위한 조치다.

이에 앞서 민 청장은 여경에 대한 체력검정 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민 청장은 “(기준은) 경찰대학교, 간부후보생 과정부터 개선하기로 했다”며 “직무집행에 필요한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한 뒤 적응 과정을 거쳐 기준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제기된 시민들의 목소리를 일부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여경 해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찰과 민 청장의 대응은 적절해 보인다. 경찰은 대답을 내놨다. 이제는 시민들이 공권력 강화에 힘을 보태야 할 차례다.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본질’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당장 이번 사건에서도 ‘여경’이 아닌 ‘시민의 경찰 폭행’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어땠을까. 조금 더 생산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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