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벌에서 계백을 격파한 김유신은 소정방과 약속한 날짜 보다 하루 지난 660년 7월 11일에 백강에 도착했다. 소정방은 신라군의 기를 꺾으려고 “약속 기한을 어긴 신라의 선봉장 김문영을 당장 잡아다가 처형하라!”고 명령했다. 소정방은 당고종으로부터 ‘백제를 멸하고 나면, 틈을 보아 신라까지 내쳐 뺏으라’는 밀지를 받은지라, 걸핏하면 트집을 잡고 횡포를 부리던 자였다.

소정방이 ‘김문영을 처형한다’는 급보를 받은 김유신은 급히 당의 군영으로 달려가 말했다. “대장군(소정방)이 황산벌 싸움을 보지 않고 약속 날짜에 늦은 것만을 갖고 죄를 삼으려 하니, 나는 이런 모욕을 참을 수 없다. 반드시 당군과 결전을 한 후에 백제를 깨뜨리겠다!”

이 일촉즉발의 상황을 <삼국유사> ‘신라본기’는 “이에 (김유신이) 큰 도끼를 잡고 (당나라 군영의) 군문(軍門)에 서니, 그의 성난 머리털이 곧추서고 허리에 찬 보검이 저절로 칼집에서 튀어나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김유신의 기세에 놀란 소정방은 김문영을 풀어주었으며, 김유신에게 사과함으로써 신라와 당나라 군대의 갈등은 봉합됐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돌아오지 않는 다리’ 유엔군 측 지역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주한미군 2명을 북한군 수십 명이 도끼로 살해했다. 이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내 철모와 군화를 당장 가져 오라!” “미친개는 몽둥이가 답이다!”하며 제1공수특전여단 대원들을 JSA에 투입시켜 북한군초소 4개를 파괴했다. 한국군과 미군의 강력한 대응에 바짝 겁먹은 김일성은 ‘유감성명’을 밝혀 사과했다.

북한 공산세력은 상대의 힘이 강하다고 판단하면 절대 도발하지 않으며, 약하다고 생각할 때는 언제든지 도발한다. 이것이 지난 70년 동안 얻은 교훈이다.

지난 5월 4일과 9일 북한은 미사일 4발을 시험 발사했다. 주한미군은 이 미사일 4발 모두가 동일한 종류의 신형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KN-23’이라는 식별코드까지 붙였다. 하지만 우리 정부와 군은 “한미가 공동으로 발사체 특성과 제원을 정밀 분석 중”이라고 기존 입장만 되풀이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사과요구는커녕 미사일이라고 말하지도 못하는 ‘홍길동군(軍)’이 되어 버렸다. 문재인 정부가 북의 미사일 도발을 그냥 넘긴다면 북의 도발에 면죄부를 주고 김정은을 더욱 기고만장하게 만들 뿐이다.

점입가경인 것은 ‘안보 자해’라는 비판까지 받고 있는 9·19 남북 군사합의의 서명자인 송영무 전 국방장관이다. 그는 지난 5월 16일 국방연구원 세미나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자유민주 사상에 접근한 상태”라며 “현재 북한의 핵과 화생방(무기)만 빼면 북한을 겁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김정은을 미화하고 우리 군과 국민의 정신전력을 약화시키는 친북(親北) 발언이다.

또한 올해 1월 1일 KBS 신년기획에 출연해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해 “우리가 일부 이해할 부분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정경두 국방장관도 국민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전·현 국방장관의 인식이 이러하니 지난 4일 현역 장성 10 명이 북의 미사일 발사 사실을 알면서도 골프를 중단하지 않았다. 군 장성들의 정신전력 해이가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매주 수요일은 장병 정신교육의 날이다. 그런데 일부 부대에서는 군 전력의 기반인 정신교육은 하지 않고 장기자랑 등 오락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군의 기강해이는 국방력 와해로 이어진다. 100가지 중에서 하나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거기에 대해서 만전을 기하는 것이 국방의 요체이다. <손자병법>에는 “적이 공격을 해오지 않는다는 것을 믿지 말고, 우리에게 여기에 대한 충분한 대비책이 있다 하는 것을 믿어라”는 말이 있다.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달 29일 한미클럽에서 “북한은 실제 변하지 않았다”며 “우리는 외교가 효과를 발휘하도록 (한미연합훈련 취소를) 시도했지만, 효과가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우리 군이 ‘국민의 군대’에서 ‘정권의 군대’로 변질되고 있다. 이 시점에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한 말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6.25 전란의 상흔이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 가고, 그 비극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굳은 결의가 퇴색되는 날, 제 2의 6.25는 오고야 말 것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