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관련 범죄 막아야” vs “부정적 인식‧산업 위축 우려”

게임. [뉴시스]
게임.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질병’ 규정을 내리는 가운데 찬반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찬성 측에서는 게임중독으로 인한 범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질병 등재에 환영을 하고 있다. 반대 측에서는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기고 규제가 강화돼 게임산업을 위축시킬 것으로 우려하는 상황이다.

문체부-복지부, 한 지붕 아래 엇갈린 목소리···게임업계는 ‘부글’

WHO는 지난 20일 스위스에서 총회를 개최했다. 여기서 게임중독을 질병코드에 등재하는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 개정안을 최종 의결한다.

ICD는 모든 질병 종류와 이에 따른 신체 손상 정도를 나눠놓은 지침으로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보건의료 정책의 핵심 근거로 삼고 있다. 게임중독이 질병코드로 정식 등재될 경우 각국은 2022년부터 WHO의 권고사항을 바탕으로 새로운 질병코드 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물론 WHO 회원국들이 꼭 2022년을 기해 반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회원국별로 의료체계 등을 정비해 적용하게 된다. 보건복지부에서는 국내 적용 시점이 2025년 이후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효자 산업’ 타격↑

게임중독이 질병으로 분류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관점이 엇갈린다. 찬성 측에서는 게임중독으로 인한 범죄 등 피해 사례 발생, 조기 치료 필요성, 게임산업 건전화 유도 등을 이유로 질병 등재에 대해 환영하고 있다. 반면, 게임과 게임중독의 직접 연관성 증거 부족, 의료과잉 가능성, 게임산업 위축 등을 근거로 반대하는 여론도 상당하다.

이에 WHO는 게임중독의 유해성이 충분히 입증됐다고 판단, 지난해 게임이용장애(게임중독)에 ‘6C51’이라는 질병코드를 부여하고 올해 5월 총회에서 논의해 결정하기로 했다. WHO는 게임중독을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하고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게임을 지속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이번 총회에서 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인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게임중독의 질병 지정에 대해 WHO 집행이사회에서도 미국 정도만 반대한 상황이라 이번 총회에서는 최종 통과가 유력하다”고 예상했다.

국내 게임업계는 게임중독의 질병 등재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문체부, 한국게임산업협회,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달 29일 WHO에 게임중독의 질병 지정을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청소년 게임 과몰입은 부모의 강압적인 양육 태도나 학업부담, 교사와 또래 집단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 등 다양한 심리‧사회적 요인에 기인한 것으로 오직 게임 때문만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게임이 콘텐츠 수출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효자 산업’이라 타격이 클 것으로 분석된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WHO 개정안이 통과되면 게임산업에 대한 세계적 규제가 강화되면서 2023년부터 3년간 한국 게임 산업이 입게 될 경제적 손실은 최대 11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경제 휘청일 것”

시민들의 반응은 어떠할까. 직장인 A(28)씨는 “(질병코드가 부여되면) 전 세계적으로 셧다운제(심야 게임 규제)를 실시해보라. 그리고 어떤 문제가 일어나는지 관측하라. 성인은 새벽 두시 정도로 셧다운하면 될 것”이라고 비난하며 “국내 게임회사들 다 문 닫고 대한민국 경제 휘청하면 찬성 측이 바라는 대로 이뤄지는 것 아닌가. 스마트폰 중독은 생각도 안 하고 게임 가지고 딴지를 거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대학생 B(26)씨는 “(게임중독을) 질병이라 보는 시선도 있겠지만 (이번에 질병코드가 부여될 경우) 질병으로 해당될 것들이 너무 많아 후폭풍이 불 것”이라고 전했다.

직장인 C(31)씨는 “중독은 질병이라 봐도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일상생활에 문제가 발생하는 사람들은 질병으로 분류해서 치료를 해줘야 하는 게 맞다”면서 “그러나 이게 게임 자체에 대해 압력이 가해지는 거라면 절대적으로 반대다. 게임으로 여가를 보내고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에게는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복지부, 실태조사 예고

한국게임산업협회 관계자는 “셧다운제 등으로 한국은 게임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강한 나라인데 WHO에서 질병으로 지정되면 인식이 더욱 나빠질까 우려된다”면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이런 인식이 굳어지면서 우수한 인재들을 영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라고 전했다.

남궁훈 카카오게임즈 대표는 지난 21일 WHO의 시도에 동조하는 일부 의학계를 향해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남궁 대표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정신과 의사들은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을 환자로 만들어야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그리고 많은 학부모들이 동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을 것”이라며 의학계의 게임 질병화 시도 움직임에 강력히 반발했다.

이어 “하지만 자신의 자녀를 정신병 환자로 규정하고 정신과 의사에게 넘겨 아이의 상처를 더욱 키울 학부모님들이 얼마나 될까”라며 의문을 제기한 뒤 “게임에 몰입하는 것은 현상이지 원인이 아니다. 원인을 찾아야 치료할 수 있고, 게임도 제대로 이해 못하는 정신과 의사들이 아이들과 제대로 소통할 리 없고, 제대로 치료될 리 만무하다”고 힐난했다.

그러면서 “원인 분석이 치료의 핵심이다. 치료를 위한다면 원인을 이야기할 것이고, 게임업계의 매출이 필요하다면 현상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면서 “일진들은 돈 내놓으라고 괜한 손목 비틀지 말아주길 바란다”고 일침을 놓았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게임업계 움직임에 동참했다. 박 장관은 지난 9일 게임업계 관계자들과 만나 “게임 과이용에 대한 진단이나 징후, 원인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며 공식적인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질병코드가 부여되면 게임 중독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실태조사 등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또 관계부처와 전문가, 게임업계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필요한 사항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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