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느 공공기관을 방문했는데 로비에‘머리와 가슴’이란 제목의 글귀가 붙어 있었다. 머리와 가슴을 성격이나 행동에 빗대어 은유적으로 비교한 글인데 읽는 순간부터 마음을 뺏겨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머리는 차가운 것을 좋아합니다, 가슴은 따뜻한 것을 좋아합니다. 머리는 따지기를 좋아합니다, 가슴은 이해하기를 좋아합니다. 머리는 엄숙함을 좋아합니다, 가슴은 편안함을 좋아합니다. 머리는 권위를 좋아합니다, 가슴은 친절을 좋아합니다. 머리는 결과를 좋아합니다, 가슴은 과정을 좋아합니다. 머리는 앞서가기를 좋아합니다, 가슴은 같이 가기를 좋아합니다. 머리는 현실을 좋아합니다, 가슴은 꿈을 좋아합니다. 머리는 만족을 좋아합니다, 가슴은 부족도 좋아합니다. 머리는 받기를 좋아합니다, 가슴은 주기를 좋아합니다. 머리는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가슴은 감추기를 좋아합니다. 머리는 후회하기를 좋아합니다, 가슴은 희망하기를 좋아합니다. 머리는 곱하기를 좋아합니다, 가슴은 나누기를 좋아합니다, 머리는 성공을 좋아합니다, 가슴은 사랑을 좋아합니다.’

필자는 이 글귀를 자리에 서서 3번이나 읽은 후 목적지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종일 마음에서 진한 여운이 맴돌았다. 특히 가슴이 좋아한다고 언급된 ‘따뜻함, 이해, 편안함, 친절, 과정, 같이 가기, 꿈, 부족, 주기, 감추기, 희망하기, 나누기,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 글귀대로 가슴으로 사는 사람이 누구일까를 생각하다가 불현듯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올랐다. 물론 노 전 대통령의 서거일이 다가오면서 언론에서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보도를 내보낸 것이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었으나 필자가 생각하는 노 전 대통령은 늘 머리보다는 가슴을 따랐던 사람, 마음이 열려 있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서울 종로에서 어렵게 국회의원에 당선돼 재선이 유력한 상황에서도 지역 구도를 깨겠다며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 국민들 앞에서는 한없이 따뜻하면서도 특권과 반칙 없이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며 수구 기득권 세력과는 차갑게 싸웠던 사람, 엄숙함과 권위보다는 편안함과 친절함을 끝까지 보여주었던 사람이 바로 노 전 대통령이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적 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국민 대다수의 이익을 기준으로 정책을 추진해 사상이 물처럼 자유로웠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국회의원 한번 더 하겠다고 정치적 신념과 상관없이 당적을 이리저리 옮기고, 국민의 이익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떤 일이든 서슴없이 덤벼드는 정치인들 속에서 노 전 대통령은 가슴의 길을 묵묵하게 걸어온 영혼의 정치인이었다.

머리와 가슴의 삶을 생각하고 노 전 대통령이 지나온 길을 그려보면서 요즘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떠올려본다. 학교와 직장, 가정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가? 경제가 어려울수록 자신만 잘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출세가 중요하니 이름을 알리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친절과 미소는 나약해 보일 수 있으니 무조건 권위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머리 좋고 똑똑하며 약삭빠른 사람들만이 넘쳐나는 사회는 다 함께 사는 사회가 아니다. 조금은 늦더라도 함께 가고, 서로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경청하고 이해할 줄 알며 사랑을 나누는 삶, 그렇게 가슴으로 사는 길이, 가슴의 소리를 듣는 삶이 가장 지혜롭다. 우리에겐 지금 가슴으로 사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노 전 대통령이 좋아했던 양희은의‘상록수’를 들으며 푸른 생명력의 5월에 가슴으로 사는 길을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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