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상속세 50%로 OECD 전체 2위… 할증 붙으면 사실상 65%
대한상의 “상속세, 증여세 내려달라”국회 제출… 뾰족한 대안 없어
경영 일선에 나선 오너 3·4세, 막대한 상속세는 고민거리

[뉴시스]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높은 상속세가 ‘탈(脫)한국’을 부추기고 있다는 리포트가 나왔다. 지난 21일 대한상공회의소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주요 입법현안에 대한 경제계 의견’을 담은 상의리포트를 제출했다.

이 안에는 높은 상속세를 지적하는 내용이 담겼다. 과도한 상속·증여세가 기업 성장을 위축시키고 기업가의 의욕을 꺾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자녀에게 기업 경영권을 세습하기 위해 세금을 축소·폐지하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만만찮아 대립을 이루는 정세다.

국내 상속세 OECD 평균 두 배

대한민국 재계는 최근 큰 별들을 잇달아 잃었다.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이 지난해 5월 타계했으며 올해 3월과 4월 박용곤 전 두산 회장과 조양호 전 한진 회장이 별세했다.

이에 따라 그들의 후계자인 구광모 LG회장, 박정원 두산 회장, 조원태 한진 회장 등이 뒤를 이어 그룹 지배권을 물려받았다. 이들 젊은 총수들은 기업경영에 앞서 ‘상속세’ 해결이 관건으로 떠올랐으며 이를 지켜보는 시선도 양분됐다.

업계에 따르면 구광모 회장은 지난해 별세한 구본무 회장의 지분을 물려받으려고 자회사를 팔아 9215억 원의 상속세 1차분을 마련했다.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 경영 승계를 위해 꾸준히 지분을 늘려왔고, ㈜LG 주식의 49.9%를 용산세무서 등에 담보로 내놓았다.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이 없었기 때문에 역대 최고 상속세에도 불구하고 납부엔 무리가 없는 상황이다.

박정원 두산 회장도 ㈜두산의 지분 6.4%를 보유한 최대주주 상태로 이미 2016년 3월 그룹 회장직을 물려받아 지분 상속과 관련해선 여유롭다. 박 회장은 두산의 등기임원으로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과 함께 경영관리를 총괄하다 박용만 회장으로부터 그룹 회장을 승계해 오너 4세 경영시대를 열게 됐다.

지난 4월 갑작스레 조양호 전 회장이 타계한 한진그룹은 아직 상속세 납부와 관련해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아들 조원태 회장은 고 조양호 회장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 17.84%(최대주주 할증평가 포함 약 4000억 원)을 모두 물려 받으려면 세율 50%로 단순 계산해도 상속세는 2000억 원에 달한다.

조 회장의 한진칼 지분은 2.34%에 불과한데, 경영권을 위협하는 행동주의 펀드 KCGI(강성부펀드)는 최근 한진칼 지분을 14.98%까지 늘리고 있다. 상속세 마련을 위해 주식을 매각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한진칼 지분을 제외한 한진, 정석기업, 토파스여행정보, 대한항공 지분매각을 통해 약 750억 원의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 ▲한진 등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등의 자산매각 등을 통해 배당여력 및 배당금 확대 ▲연부연납신청을 통해 최대 5년 간 상속세 분할납부 신청 ▲보유 및 상속지분의 담보대출 등을 활용해 상속세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가족 간 갈등설 등 3남매 간의 지분정리 및 계열분리 가능성 속에서 상속세 재원 마련에 대한 의견 합치에도 어느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세(稅) 부담에 내려놓기도

과거에는 창업주나 총수의 갑작스런 유고에 따른 세 부담으로 경영권을 포기한 사례도 있다.

손톱깎이 업체 ‘쓰리세븐(777)’은 2008년 창업주 김형규 회장이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며 유족들은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회사를 매각했다. 이후 유족들은 회사를 찾아오긴 했지만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인수했던 바이오 분야 자회사는 끝내 찾아오지 못했다.

OCI도 지난 2017년 이수영 회장이 급작스레 별세한 후 장남 이우현 사장에게 1000억 원 안팎의 상속세 부담이 발생했다. 이 사장은 상속세 납부를 위해 보유지분을 매각하면서 최대주주 자리에서 내려오기도 했다.

이에 따라 재계는 과도한 상속·증여세가 기업 성장을 위축시키고 기업가의 의욕을 꺾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 21일 대한상공회의소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주요 입법현안에 대한 경제계 의견’을 담은 상의리포트를 제출했다. 리포터를 통해 대한상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이 기업 투자 의욕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어 제도 개선을 해야한다고 건의했다. 최대주주 보유 주식에 대해 10~30%를 할증해 최대 65%의 세율을 부과하는데 대해 세금을 내고서는 가업승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일부 기업은 경영권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까지 빚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의는 “최대 65%인 상속세 부담을 낮춰야 한다”면서 “10~30%인 할증률을 인하하고 중소기업부터 할증평가 제도(2020년 일몰 도래)를 폐지·개선해 달라”고 주문했다.

상의는 리포트를 통해 ▲가업상속 중과세제도 개선 ▲중소·중견 가업승계 요건 완화 ▲기업투자 인센티브 강화 ▲서비스산업 R&D 세제 개선 ▲서비스산업발전법 조속입법 ▲기부문화 활성화 지원을 건의하고 관련 법안의 개정을 촉구했다.

중소·중견기업에 대해서는 가업상속 공제제도를 두고 있으나 요건이 너무 엄격해 이용 건수와 이용 금액이 독일에 비해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가업승계 후 10년간 업종·자산·고용을 유지토록 한 것은 급변하는 경제환경에의 대응과 변신을 제약하는 요인이라고 꼽았다. 이에 사후관리기간을 5년으로 단축해 줄 것을 요청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자료에 의하면 국가 상속세는 평균 26%에 불과하다. 특히 룩셈부르크, 호주, 오스트리아, 캐나다, 뉴질랜드, 노르웨이, 스웨덴, 포르투갈 등 15개 국가는 상속세가 0%다. 반면 한국의 상속세는 50%로 일본(55%)에 이어 2위다.

지난해 중순에는 김현준 국세청 조사국장이 정부세종2청사에서 편법 상속·증여 혐의가 있는 50개 대기업·대재산가에 대한 전국 동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대한민국 재벌 일가 상속증여세에 집착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블룸버그 ‘상속세 부작용’ 지적하기도

블룸버그는 최근 한국 언론이 ‘(이건희 회장)그는 지금도 숨 쉬고 있다’ ‘사망 소문’ ‘자세한 내막을 아는 것은 누구?’와 같은 내용을 보도하고 있으며 이 회장의 상속자들이 내야 할 70억 달러의 상속세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어 삼성그룹에 대한 총수일가의 지배를 힘들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블룸버그는 자체 집계로 이건희 회장의 재산을 150억 달러로 추산했다. 상속세를 내기 위해 상속자들은 상속재산 일부를 팔아야 할 수도 있으며 이는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권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일부 시민단체는 소유와 경영 분리에 따라 전문경영인이 기업경영을 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기 때문에, 자녀에게 기업 경영권을 세습하기 위해 세금을 축소·폐지하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역대 재벌들의 상속?증여세 납부 최고액은

역대 재벌들의 상속세 납부액을 보면 천차만별이다. 기업 규모에 비해 많은 세금을 낸 기업인이 있는가하면 적게 낸 총수도 있어 논란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역대 대한민국 재벌 중 상속세를 가장 많이 낸 인물은 누구일까. 업계는 단연 구광모 LG그룹 회장을 꼽는다.

구 회장은 지난해 5월 아버지 구광모 회장이 별세하면서 LG그룹 회장직에 올랐다. 업계는 구본무 전 회장의 상속인들이 내야할 상속세는 상속 주식 지분만으로도 약 8731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여기에 부동산이나 기타 금융자산 등 다른 상속 재산의 규모에 따라 1조 원대로 불어날 수도 있다.

구 회장은 자회사를 팔아 9215억원의 상속세 1차분을 마련했고 ㈜LG 주식의 49.9%를 용산세무서 등에 담보로 내놓았다.

국세청 개청 이래 1000억 원 이상의 상속세를 납부한 경우는 종종 있었다.
2003년 타계한 고 신용호 명예회장의 상속인들은 약 1830억 원 대의 상속세를 납부했는데, 이 중 약 1340억 원 상당액은 자진신고를 통해 납부했고, 나머지 약 500억 원가량은 국세청의 상속세 결정 과정을 통해 추가로 납부한 것으로 알려진다.

2013년 타계한 이운형 세아그룹 전 회장의 후손들도 상속세 모범납부 사례로 꼽힌다. 세아그룹 3세인 이태성 세아홀딩스 부사장은 세아제강과 비주력 자회사 지분을 매각하고 주식담보대출까지 받아서 상속세 재원을 마련한 것으로 유명하다.

'갓뚜기'라는 별칭의 계기가 된 함태호 오뚜기 전 회장의 상속도 기업인의 정직한 상속사례로 꼽힌다. 후계자인 함영준 오뚜기 회장은 상속세 1500억원을 5년간 나눠서 내고 있다.

정재은 신세계그룹 명예회장은 2006년 보유하고 있던 신세계 주식 147만4571주 전량을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에게 증여했다. 두 사람이 받은 주식의 시가총액은 6872억원 규모였으며 납부한 증여세는 3400억원에 달했다.

증여를 통해 후계구도를 완성한 경우도 있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1991년 장남 김남구 부회장에게 주식을 증여하면서 62억원의 증여세를 자진 납부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국세청이 ‘세무조사로 추징하지 않고 자진 신고한 증여세로는 김재철의 62억 원이 사상 처음’이라고 언론에 밝히기도 했다.

최양하 한샘 회장은 지난 2월께 부인 원유란씨와 장?차남 최우혁, 최우준씨에게 각각 40억 원씩 120억 원 상당의 주식을 증여했다. 당시 증여로 최 회장의 보유주식수는 77만9730주로 지분율은 3.31%가 됐다. 종전 지분율은 3.95%였다. 증여 목적에 대해 한샘 측은 "상속 차원일 뿐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