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올 여름 장마가 끝났다면서도 계속 비가 너무 많이 자주 내리고 있다. 이러다가는 우리나라도 우기(雨氣)에 찬 열대성기후로 바뀌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생긴다. 날씨는 비와 깊은 연관이 있고, 또 비는 농작물 작황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이런 연유로 우리조상들은 비 내리는 현상과 현실정치를 밀접하게 연관 지어 바라보는 시각이 많았다. 그 유명한 예가 조선조때 태종우(太宗雨)일 것이다. 세종께 왕위를 물리고 태평성대를 기대했던 태종은 자신이 죽던 해에 극심한 가뭄으로 농작물이 타들어가는 안타까움을 겪었다. 태종은 하늘이 자신에게 내리는 노여움이라고 생각해서 대궐 안에 제단을 쌓고 병든 몸을 꿇어 옥황상제께 비를 빌었다.

마침내 음력 5월 초열흘날 태종이 죽자마자 하늘이 한바탕 비를 퍼부었다. 그 후로도 태종의 기일이 되면 비가 내려서 백성들은 이 비를 ‘태종우’로 부르며 감사했다고 한다.

비의 정도는 ‘우(雨)’부수의 글자 모양으로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비인지 비가 아닌지(非) 분간 못 할 안개비를 비 ( )로 표현하고, 게으름피우며 딴 생각하기 좋을 만큼 내리는 비를 삽( )이라고 하며, 맞으면 옷 속에 스며 흐를만한 비를 목( ) 이라 했다. 또 주룩주룩 내리는 장대비를 임(霖)으로, 쏟아 붓듯이 하는 억수비는 패( )로 나타냈다.

특히 우리 한민족 땅은 시베리아의 찬 기단(氣團)과 남태평양의 뜨거운 기단이 마주치는 지역에다 반도이기 때문에 많은 비가 내리고 그에 따른 문명 발달이 수반됐다. 측우기록은 세계적으로 우리만큼 발달한 나라가 없을 정도다. 우리는 조선시대에 벌써 강우량을 강약 8단계로 구분해서 기록했었다. ‘아미우’, ‘세우’, ‘소우’, ‘하우’, ‘쇄우’, ‘취우’, ‘대우’, ‘폭우’등이 그것이다.

또한 ‘우점’이라 하여 어느 정도의 비가 얼마만큼 내릴 것이라는 예측을 자연현상으로 점치는 체험방을 집대성하여 비에 대비하기도 했었다. 각 고을 동헌마다 비를 점치는 체험방인 ‘관규집요’와 ‘전가오행’을 상비해 놓고 비에 대한 예보를 한 것이다. 이처럼 비가 우리생활에 끼치는 영향이 대단했다. 때문에 우리 선조들은 예부터 비와 나랏님의 덕(德)을 서로 연관 지어 비교하는 관습을 가졌다.

태종우에서 보듯이 임금의 덕이 부족하면 흉년이 든다고 하여 임금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등 하늘을 움직이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근래 김영삼 정부때에 가뭄이 심하자 대통령이 아침에 일어나 하늘부터 본다고 말한 것이 그런 맥락에서였다. 올해 너무 잦은 비가 많은 벼락피해를 동반해 내리자
민심이 흉흉할 수밖에 없다.

나라정치가 대선놀음에만 ‘올인’하는 열기 탓에 하늘로부터 벼락에 물 폭탄을 맞고 있다는 말이 나돌 지경이다. 민심은 천재지변에서까지 자신의 실덕을 자탄해 마지않은 옛 이 땅 위정자의 진지했던 모습이 이 시대에 참 되살아 날수 있기를 염원하는지 모른다.

우리에게 국운이 남아있으면 그렇게 민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지도자의 출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말로 떠들어서 국민 화합이 이루어질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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