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가운데서 정치의 줄기를 찾는 것은 인류가 오랜 역사동안 수많은 희생을 치르며 얻어낸 값진 진리이다. 우리 전통사회에서도 민심 함수가 미치는 영향이 매우 컸다. 우린 벌써 절대군주시대에 각급 수령들이 비판하는 민의를 겸허하게 수렴 할 줄 아는 관습을 가졌던 나라다. 옛 고을 인근에는 ‘욕바위’니 ‘원(님)이 진 바위’라는 게 더러 있었다. 이곳에는 고을을 다스리던 원님이 고을 백성들이 알 수 있도록 어떤 날짜와 시를 정해놓고 미리 이 바위에 올라서면 백성들이 그 바위 아래 숨어서 원님의 잘잘못을 큰 소리로 신랄하게 비판해 민의를 전달했다는 유래가 담겼다.

‘목민심서’에도 민의수렴 방법으로 ‘향통법’을 적고 있다. ‘신문고제도’가 폐지된 후 향통법은 전통적 투서 관행이 됐었다. 향통은 벙어리 통처럼 대나무 통으로 만든 병모양의 그릇으로 가늘게 비벼꼰 종이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작은 구멍하나가 나있을 뿐이다. 이 향통을 날을 정해 이 마을 저 마을에 돌려 투서를 받는다. 한번 들어간 종이는 벙어리 통처럼 다시 빼낼 수 없다. 이렇게 채워진 향통을 고을 수령께 바쳐 민정을 살피게 하는 제도를 ‘향통법’이라고 했다.

또 이 향통을 조선 팔도 도처에다가 걸어 놓고 일정기간이 지나면 거둬들여 민의를 살폈다는 기록도 있다. 이같이 민심은 국가형태나 제도에 상관없이 나라정치의 근간으로 작용했다. 민주정치일수록 민심존중이 확고해야 하는 것은 무순(無順)의 원칙이다. 이런 민심을 뿌리로 한 민주정치의 방편이 곧 정당제도인 것이다. 때문에 민주국가의 정당은 어떤 경우에도 민심을 등지지 못하는 것이 명백한 순리다. 정당이 이를 저버리고 당리당략에만 급급했을 때 그 결과는 자명한 것이다.

멀리 생각할 것 없이 열린우리당의 태동과정과 몰락으로 이어진 정황이 모든 걸 웅변하고도 남는다. 지금 그들 세력은 자신들이 하는 정치는 21세기를 넘고 있는데 국민은 19세기에 머물고 있다고 국민을 형편없이 깔본 댓가를 고스란히 치르고 있다. 그 바람에 한나라당이 국민 위해 별 한 것도 없이 어부지리 지지를 쌓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 바탕에서의 한나라당 주자들 생각이 경선에만 이기면 차기 정권은 받아놓은 밥상이라는 오만에 젖어있다.

계산 없는 ‘대세론’이 얼마나 위험천만 한 것인가를 아주 잊은 듯한 모습들이다.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과거 대세론의 주역들이 집요한 네거티브 공격 앞에 어떻게 공든 탑을 허물고 무릎 꿇었던가에 대한 내면인식이 매우 고약스러워 보인다. 대통령 하겠다는 사람들이 민심에 한발 다가서기보다 네거티브 전략에 골몰하는 가관의 모습을 보면 말이다. 마치 지난 대선 때 네거티브 재미를 크게 봤던 사람들에게서 그 동안 욕하며 숫법을 온통 배워 익힌 것처럼 나타난다.

욕하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잖은가.그렇다고 엄격해야할 검증문제를 네거티브로 주장해서 피해나가려는 부도덕을 국민이 용납할 줄 알면 더 큰일 날 일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 무엇에 대한 어떤 문제를 어디까지 궁금해 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또 국민이 나라를 위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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