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물건 주웠다가 ‘저녁’에 신고하자 처벌 받기도

현금 다발. [뉴시스]
현금 다발.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길가에 있는 지갑을 주운 뒤 주인을 찾아주는 ‘선량한 시민’이 되려다 ‘도둑’이 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주워서 소지한 행위만으로도 ‘점유물이탈횡령죄’가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억울하게 ‘범법자’가 됐다는 시민들의 하소연이 들려오는 실정이다.

절도죄와는 무엇이 다를까···습득 시 우체통보다는 경찰서로

습득자 억울하게 도둑되는 사람들도 생각해야

#1. A씨는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진 뒤 귀가하던 중 길가에 지갑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지갑을 주워들고 어떻게 주인을 찾아줄지 고민하다가 귀갓길에 우체통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지갑을 뒤적이는 것이 잘못된 행동인 것 같아 내용물을 확인하지 않은 채 우체통에 넣었다. 지갑 안에 신분증이 없던 탓일까. 일주일 정도가 흐르고 모르는 휴대전화 번호로 연락이 왔다. 수화기 너머 의문의 남성은 형사였다. 경찰은 지갑 분실 건으로 신고가 접수됐고 최초 발견자가 A씨라며 조사를 위해 경찰서에 방문하라고 통보했다. A씨는 경찰서에 방문해 당시 상황을 설명했지만 형사는 ‘결과적으로 지갑이 주인에게 돌아가지 않았다’면서 피혐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게 했다. A씨는 이후 피해자와 합의했다. 검찰에게는 점유물이탈횡령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게 됐다.

#2. B씨는 공중화장실에서 떨어져있는 지갑을 주웠다. 늦은 시간이라 다음날 파출소에 제출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뒤 집으로 귀가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지갑을 주웠다는 사실을 깜빡한 채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3일정도가 흐르고 경찰에게 연락이 왔다. 조사를 위해 경찰서에 방문한 B씨는 피해자와 합의를 보고 지갑도 돌려줬다. 그러나 검찰은 B씨에게 점유물이탈횡령죄로 벌금형을 내렸다.

이처럼 ‘의인’이 되려다가 잘못된 방법으로 인해 ‘도둑’으로 몰리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오전에 주운 물건을 저녁에 신고하자 법적 책임을 지게 된 억울한 사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습득한 물건을 타인에게 돌려주지 않으면 형법상 ‘점유물이탈횡령죄’가 성립돼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뿌린 돈 주우면

처벌 받을까

지난 2016년 3월, 50대 여성이 서울광장 분수대 앞에서 현금 뭉치를 꺼내 2200만 원 상당의 지폐를 공중으로 뿌렸다. 서울광장 일대가 순간 1000원, 5000원, 1만 원 권 지폐 수백 장으로 뒤덮였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신기한 광경을 목격하고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그러나 선뜻 돈을 주워가는 사람은 없던 것으로 전해졌다. ‘처벌을 받지 않을까’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돈을 뿌린 여성은 경찰 조사에서 “아무나 가져가라고 뿌린 것”이라고 진술해 돈의 주인이 소유권을 포기한 상황이라 시민들이 주워갔더라도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그러나 여성이 마음을 바꿔 돈의 소유권을 주장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이 같은 의도를 모른 상태에서 돈을 주워갔다면 절도죄로 처벌 받을 수 있다. 돈을 뿌린 여성이 자리를 떠났다고 해도 그 돈의 소유권이 인정된다면 점유물이탈횡령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개인주의 심화’ 우려

유명 포털 사이트에는 “일하다가 돈을 주웠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디지털 카메라를 주웠다. 주인을 어떻게 찾아줘야 하느냐”, “지갑을 주웠는데 돈을 빼서 썼다. 처벌 받느냐” 등의 질문 글이 쇄도하는 실정이다.

점유물이탈횡령죄는 유실물‧표류물 또는 타인의 점유를 이탈한 재물을 횡령할 경우 성립된다.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 경찰에 접수된 분실물을 6개월이 지나도록 주인이 찾아가지 않는다면 소유권은 습득자에게 돌아간다. 그렇다면 ‘절도죄’와는 정확히 무엇이 다를까.

매장 주인 등 ‘관리자’가 있는 특정 장소에서는 절도죄가 성립될 수 있다. 물건이 직접적으로 도둑질하지 않은 ‘유실물’이나 ‘표류물’이고, 점유자(물건 주인)가 현장에 없더라도 관리자가 있는 PC방‧은행‧편의점 등에서는 사실상 물건이 관리자 지배하에 있기 때문에 절도죄가 성립될 수 있다. 이 경우 6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경찰 관계자는 “타인의 물건을 습득한 경우, 우체통보다도 빠른 시간 내에 가까운 경찰서나 파출소에 가져다주는 것이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며 “지갑을 주워 경찰서에 제출했더라도 지갑 안에 있는 현금을 마음대로 썼을 경우 상황에 따라 절도죄와 점유물이탈횡령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A씨는 “피해자와의 합의 당시, 외국에서 사온 지갑이라며 터무니없는 금액을 요구하더라. 해당 지갑 브랜드에서 한정판을 구매했더라도 60만 원 이하인데 200만 원을 달라고 했다. 형사는 ‘자신이 개입할 것은 아니지만 200만 원은 너무했다. 피해자와 다시 조율해봐라’라고 귀띔했다”면서 “피해자에게 ‘나도 좋은 일 하려다가 이렇게 된 꼴인데 금액을 낮춰줄 수 없느냐’는 질문하자 그는 분개했다.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나를 범죄자 취급하면서 ‘콩밥을 먹이겠다’는 말까지 하더라. 일종의 ‘갑을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일이 복잡해지는 것이 싫어, 합의했으나 정말 수치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인을 찾아주려던 행동 자체가 범죄에 해당하는 실정이라 ‘개인주의 심화’만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람들이 밀집해있는 대로변에서 일방적인 폭행을 당하더라도 아무도 말리지 않는 상황이 일어나는 것처럼 될까봐 무섭다”면서 “피해자가 된 사람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억울하게 ‘도둑’이 되는 사람들도 생각해야 한다. 법이 현실성 있게 개정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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