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 교수

아불라피아를 혹시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불라피아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푸코의 진자에서 나오는 가상의 워드 프로세서로 현대적 개념으로는 최근 각광받는 인공지능 (AI : Artificial Intelligence) 문서작성 프로그램이다. 가령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기본 구조로 삼아 주인공 레트 버틀러를 안드레이공작으로, 스칼렛을 나타샤로, 미국 남북 전쟁기의 애틀란타를 프랑스 나폴레옹과 제정 러시아가 전쟁하던 시기의 모스크바로 치환하면 순식간에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를 써내려 갈 수 있는 워드 프로세서를 말한다.
 

만일 맬서스, 마르크스, 에코 등 수 많은 학자들이 인정한 역사는 반복된다는 가설을 검증해 보기 위해 이 아불라피아를 가동해 본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 인류 과학기술의 역사에서 벌어졌던 정책적 오류나 현실을 무시한 규제가 초래한 결과들을 여기에 대입해 보면 우리는 섬뜩한 데자뷔를 목도하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약 60년전으로 돌아가 ‘15년안에 영국의 철강생산량을 따라잡겠다던 중국의 대약진운동 그리고 그떄로부터 다시 10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자동차를 마차가 이끌게 하던 영국의 적기조례 (Locomotive Act)의 역사를 아불라피아에 넣어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탈원전 정책의 키워드에 대입해 보면 어떤 결말이 나올 것인가.

중국은 그 엄청난 후유증을 극복하고 실용주의 노선으로 회귀하는데 수십년의 세월을 허비했고 영국은 자동차를 상용화한 최초의 나라였음에도 결국 미국, 독일, 프랑스에 영원히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일국의 경제 성장을 이끄는 산업의 동맥인 전기 에너지와 관련된 국가 정책의 중요성을 고려하면 아불라피아가 보여줄 한국 탈원전의 미래에는 큰 두려움이 앞선다.
 

국가 정책은 한 개인의 행복 뿐만 아니라 국가의 흥망을 결정지을 수 있다. 따라서 전문가 의견을 무시하고 주관점 이념에 매몰되어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필자는 강단에서 과학은 다른 무엇보다도 현대 인류 문명 발달의 견인차적 역할을 담당해 왔으며 주관적 이념과 감정에 경도되지 않고 견고한 객관성과 엄격한 이론을 확보하여야 함을 학생들에게 반복적으로 주지시킨다.

과학에 주관적 이념과 감정이 개입되면 그 결과는 왜곡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관련 분야 전문가 집단 지성의 참여가 필수사항이다. 전력 에너지는 과학기술의 진보가 인류에게 준 가장 대표적 선물이다.

반도체 못지 않게 세계에서 가장 앞선 원자력 지식과 기술을 성취해 낸 대한민국의 전문가 집단을 기성 이익집단으로 매도하여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과 관련된 규제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있는 원자력안전위원회에 해당 전문가들을 참여시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의 토론조차 회피하는 대한민국의 현실과 반달리즘적 정책이 초래할 암담한 미래를 생각하면 참담할 뿐이다.

아무 근거없는 불안감을 부추겨 특정 과학기술 분야의 최고 전문가 집단이 적폐의 누명을 쓰고 소멸되면 결국 희생양은 전 국민이 된다. 국가전력 안보와 우리 에너지산업의 성취를 지켜낼 시간은 이제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세종대 김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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