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울리는 음악을 들을 때 느껴지는 감정의 힘을 일깨우고 있는 필자는 사람들이 방송에서 인터뷰하는 것을 주의 깊게 보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여행지를 배경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어떤 단어나 표현을 쓰는지 유심히 지켜본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경이로운 경치를 보면서 행복과 기쁨을 가득 느끼는 순간, 그 황홀한 순간을 어떤 표정 속에서 어떤 말로 표현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감성과 창의력은 얼마나 되는지는 물론 그 사람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가 조금은 느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피오르드 협만으로 유명한 노르웨이,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게이랑에르 피오르드를 보면서 어떤 사람은 감격스러운 나머지 울음을 터트리며 말을 하고, 어떤 사람은 벅찬 환희 속에서 탄성을 지르며 말을 하지만 어떤 사람은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한 채 무덤덤하게 말을 한다. 

또한 히말라야의 만년설을 볼 수 있는 인도의 북부 도시 레에서 험준한 히말라야 산맥과 영롱한 별들이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경이로움을 느끼며 희열에 젖어 말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여행에 지친 듯 무관심하게 말을 한다. 물론 방송의 특성상 무덤덤하거나 무관심하게 말을 하는 사람들은 화면에 나오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감동적인 모습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눈부신 풍광을 보면서 그에 어울리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몸과 마음, 영혼의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몸 상태가 좋지 않거나 슬픔이나 우울함 등의 감정에 깊이 빠져있거나 스스로의 아름다움과 탁월함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봉 감독은 많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수상 소감을 밝혔는데 유독 기쁨이란 단어를 자주 썼다. 행복이란 말도 하긴 했지만 기쁨이란 말을 더 많이 사용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 

봉 감독은 수상 직후 “저도 처음이지만 한국 영화로서도 처음이라 더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라고 했고, “봉준호 자체가 장르라는 말이 기뻤다”라고 말하는 등 여러 인터뷰에서 기쁨이란 단어를 입에 올렸다. 평생 잊지 못할 가장 행복한 순간에 기쁨이란 말을 사용했다는 것은 기쁨이란 감정이 행복이란 감정과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행복은 어떤 것을 통해 일시적으로 만족감을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기쁨은 행복보다 좀 더 내밀하고 깊은 감정으로서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것이 충족될 때 느껴지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근원적이고 본질적이라는 것이 바로 나의 길, 나의 꿈, 나의 소명과 관련된 것으로 무언가에서 기쁨을 느낀다는 것은 나의 길을 발견했다는 것이고, 나의 꿈을 조금씩 이뤄가고 있다는 뜻이며, 나의 소명을 향해 가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 일련의 성취감 속에서 느끼는 살아있다는 느낌 혹은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모두 기쁨의 다른 표현들이다. 그런 측면에서 기쁨은 진정한 나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느끼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감정이기도 하다. 진정한 성공은 자신이 그 일을 통해 얼마나 기쁨을 느끼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많은 돈을 벌고 있는 기업가도, 높은 자리에 앉은 공무원도 가슴이 허전하다면 성공했다고 할 수 없다. 돈은 조금 벌고 지위는 낮아도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 진짜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고, 앞으로 더 크게 성공할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자녀들을 봉 감독처럼 창의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사람으로 키우고 싶으면 기쁨과 성취감을 더 자주, 더 깊게 느끼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감을 예민하게 깨워 어떤 느낌과 감정이 가슴에서 피어나는지를 민감하게 알아차리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창의력의 핵심이다. 슈베르트의 즉흥곡(작품 90-3)을 들으며 지금 이 순간의 기쁨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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