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동물 구조 위해 발로 뛰는 동물권 단체 ‘유엄빠’

나무 구조에 성공한 유엄빠 회원들 [사진=황기현 기자]
나무 구조에 성공한 유엄빠 회원들 [사진=황기현 기자]

 

[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지난 27일, 경기도 성남시 모란역에서 ‘유엄빠’의 팀장 김명수(28. 남)씨를 만났다. 그는 구조견이 치료받고 있는 용인시의 한 동물병원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차에 타자 앞 좌석을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 있는 ‘렉스(코커 스파니엘)’가 눈에 들어왔다. 렉스는 오늘 예방 접종이 필요해 함께 병원에 간다고 했다. 녀석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동석해 가며 ‘이동 인터뷰’를 시도했다.

‘내 삶’의 많은 부분 포기했지만 아이들에게 ‘새 삶’ 주는 일 즐거워
새벽에 벌어진 구조·포획 작전은 ‘성공적’

김 팀장은 매일 동물병원에 방문해 아이들의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 유엄빠(유기동물의 엄마·아빠)가 여태 구조한 아이들이 한두 마리가 아니기에 하루 24시간이 빡빡할 정도라고 했다. 30여 분을 달려 용인시에 위치한 동물병원에 도착하자 문득 왜 이렇게 멀리 왔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질문을 던지자 그는 “(수의사분이) 아이들을 좀 저렴하게 치료해주신다”고 대답했다. 할인율은 무려 30~50%에 달한다.

차에서 꺼낸 상자를 들고 병원에 들어선 김 팀장은 익숙하게 간호사와 인사를 나눴다. 병원의 동물들은 반가운 듯 김 팀장에게 다가왔다. 그는 기자에게 “이 녀석은 우리 아이”라며 덩치가 큰 강아지 한 마리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이 외에도 이 병원에는 유엄빠 덕에 구조된 서너 마리의 강아지가 머물고 있었다. 오늘 임시 보호자의 집으로 거처를 옮길 만복이는 수의사에게 마지막 치료를 받으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김 팀장은 수의사에게 강아지들의 상태를 물었다. 또 강아지에게 사용되는 약을 꼼꼼히 체크한 뒤 상자를 열어 만복이의 집을 뚝딱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기자는 해당 병원 원장에게 “어쩌다 유엄빠를 돕게 됐느냐. 치료비도 30~50% 가까이 할인해 주신다던데”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유엄빠는 제가 본 단체 중에 가장 아이들을 아끼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이어 “저희가 유엄빠 회원분들처럼 현장에서 구조하긴 어렵고, 할 수 있는 것을 찾다 보니 함께하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평일에는 구조, 주말에는 봉사

유엄빠는 열 명 남짓한 스태프와 일반 봉사자들이 모여 구성하고 있다. 김 팀장을 제외한 나머지 스태프들은 대부분 직업을 가진 직장인들이다. 이들은 유기 동물을 위한 관심과 사랑만으로 자신의 휴식 시간을 쪼개 유엄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주말에는 보호소 등을 찾아가 아이들을 돌보고, 평일에는 구조된 아이들을 돌보거나 구조 작업을 한다. 물론 김 팀장 역시 처음부터 유엄빠에 ‘올인’한 것은 아니었다. 김 팀장은 “4년 전 보호소를 찾아갔다가 만난 아이들이 계속 생각나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며 “처음에는 봉사로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본격적으로 유엄빠를 운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쉴 틈 없는 일정에 김 팀장은 보통 일 년에 주말 두 번 정도만을 쉰다고 한다. 그럼에도 유기 동물을 구조하고 입양 보내는 보람은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기에 멈추지 않는다고. 기자가 김 팀장을 만난 다음 날에도 구조 작업이 예정돼 있었다. 참석 의사를 밝히자 김 팀장은 흔쾌히 허락했다.

강아지 한 마리 위해 새벽까지 이어진 구조 작전

구조 작업은 28일 저녁 8시, 경기도 김포시 김포생활체육관에서 진행됐다. 이날 구조할 아이의 이름은 나무였다. 나무는 길에서 아이를 낳고 헤매던 중 유엄빠에 의해 구조돼 딸 사과와 함께 한 가족의 품에 안겼다. 하지만 나무의 상처가 점점 아물어 간다고 생각할 무렵인 24일 산책 중 갑자기 도망쳐 숨어 버렸다. 다행히 나무의 위치는 곧 확인했지만 다가가면 도망치는 탓에 입양자는 속을 끓였다. 지인들과 함께 몇 차례 포획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날쌘 나무를 잡는 데 번번이 실패했다. 오히려 도로로 뛰어나가는 나무를 보며 가슴 덜컹한 순간을 여러 번 겪었다고 한다.

상황을 전해 들은 유엄빠가 다시 한번 나섰다. 이날 유엄빠 공지를 통해 모인 인원은 30여 명, 차량도 13대에 달했다. 작전이 밤 10시에 시작됐음에도 적지 않은 회원들은 기꺼이 시간을 냈다. 작전은 그물망과 뜰채를 이용한 포획이었다. 주차장 주변을 차량으로 막은 뒤 그물망을 둘러치고, 나무를 가운데로 유인해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잡는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유엄빠 회원들은 2시간여에 걸쳐 그물망을 연결하고 두세 차례 연습 과정도 거쳤다. 사람이 많으면 나무가 도망칠 위험이 있었기에 입양자를 제외한 회원들은 차량에 잠복해 대기했다.

나무는 작전대로 입양자를 따라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낯선 사람 냄새를 맡았는지 한가운데로는 들어가지 않고 왔다 갔다 하며 경계를 풀지 않았다. 지루한 기다림이 계속됐다. 시간이 한 시간 이상 지나자 나무가 경계를 풀고 수풀 사이에 누웠다. 유엄빠 회원들은 다시 나무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

나무가 완전히 잠들었다는 판단이 서자 작전이 개시됐다. 회원들은 미리 연습한 대로 신속하게 차량에서 내려 그물망으로 사방을 막았다. 사람들 소리에 놀란 나무는 벌떡 일어나 도망가기 시작했지만, 이미 퇴로는 막힌 상황이었다. 결국 나무는 한 여성 회원이 지키고 있던 그물망에 걸렸고, 여성 회원은 즉시 온 몸으로 나무를 감싸안아 포획에 성공했다. 놀란 나무가 대변을 본 탓에 여성 회원의 손 등에 오물이 묻었음에도, 그는 나무의 신병이 확실히 인계될 때까지 몸을 떼지 않았다. 나무가 완전히 잡히고 나서야 그는 몸에 묻은 오물을 닦아냈다.

새벽에 펼쳐진 포획 작전은 성공적이었고, 결국 나무의 일탈은 6일 만에 막을 내렸다. 유엄빠 회원들은 모두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축하했다. 평일 새벽, 잠잘 시간을 쪼개가며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유엄빠 회원들이 강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유엄빠가 가진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있는 작전이었다. 입양자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직접 와서 도와주시고 멀리서도 걱정해주시고, 많은 감동을 느꼈다”면서 “나무 예쁘게 잘 키우겠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모든 유기견들이 행복해지는 그 날까지…

이날 작전을 지휘한 김 팀장은 “다신 (포획 작전은) 하고 싶지 않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정작 그의 얼굴은 더없이 밝았다. 그는 “(나무의 경우) 굶주린 야생동물에게 공격당할 위험이 커 하루가 급한 상황이었다”며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강아지인데 정말 많은 봉사자들이 모여서 함께 포획해 주신 덕분에 구조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이처럼 유기 동물을 구조할 때마다 김 팀장을 비롯한 유엄빠 스태프, 봉사자들은 큰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 김 팀장은 “구조된 아이들이 치료받고 새 가족을 만나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며 “‘우리가 활동을 멈추면 이 아이들은 누가 구해줄까’라는 생각이 유엄빠를 멈출 수 없게 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죽기 전까지 버림받고 학대당한 유기 동물을 구조하겠다는 유엄빠 회원들. “(죽은 뒤에) 하나님이 천국 보내줬으면 좋겠다. 거기서도 예쁜 아이들 구조하고 있을 것 같은 제가 보인다”는 김명수 팀장. 오늘도 이들 ‘유엄빠’는 열심히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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