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편집위원]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양정철 전 홍보기획비서관이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집권여당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양 원장은 2년 동안 야인생활을 했다는 점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에 초긴장하는 쪽은 당내 3선 이상 중진들이다. 최근 양 원장의 행보를 보면 문재인 정부에 복무했던 40여 명의 총선 전진배치설이 현실화되고 자신들이 그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우려감이 쌓이고 있다. 특히 금배지도 쉽게 만날 수 없는 국정원장과  4시간 동안 만남을 가졌다는 점에서 여당 의원뿐만 아니라 야당 의원들까지 긴장케 만들었다. 총선 전 국정원 발 사정풍으로 대폭적인 정치권 물갈이가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 이해찬發 식사정치 문희상·정세균·원혜영 등 중진 불출마하나 
- 현역 중진 물갈이 25명 내외 서훈 등장 ‘사정풍 물갈이’? 긴장

7선의 이해찬 의원이 당대표에 오르자 더불어민주당 중진 의원들은 축하하기보다 걱정스런 모습을 보였다. 이 대표가 전당대회과정에서 “더는 총선에 출마자지 않겠다”고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세대교체를 위한 백의종군 행보는 당내 40여 명에 달하는 3선급 이상 중진의원들에게는 달갑지 않는 소식이었다.

내년 총선에서 공천권을 갖고 있는 이 대표가 총선불출마를 빌미로 중진들에게 ‘함께 후배를 위해 백의종군하자’고 할 공산이 높기 때문이다. 당시 이 대표가 당대표 당선 기념으로 중진들에게 ‘밥 한번 먹자’는 제안을 ‘불출마 제안’ 자리로 받아들여  중진들은 식사자리를 꺼려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였다. 

“이 대표 밥 먹자고 할까 두려워...” 우려가 현실로

본지 취재 결과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원장이 당 복귀한 전후로 더 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닌 ‘중진 물갈이론’이 현실화되고 있는 정황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양 원장이 대통령 복심으로 존재감을 알린 문희상 국회의장과 단독 회동 자리가 빌미가 됐다. 

여권에서는 양 원장의 ‘개인적 친분’으로 만남을 평가절하하고 있지만 내년 총선에서 문희상 의장의 거취를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었겠느냐는 소문이 돌았다. 통상 국회의장을 지낸 인사는 다음 총선에 불출마하는 게 정치권 관행이기 때문이다. 문 의장의 지역구는 경기도 의정부이고 6선이다. 

뿐만 아니라 부천 오정구의 5선인 원혜영 의원 역시 차기 국회의장을 염두에 두고 내년 총선 출마를 고려했다가 다시 불출마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원 의원은 김부겸 의원의 행정안전부 장관 후임으로 거론될 당시 차기 총선 불출마 입장이었다. 원 의원 지역에는 김만수 전 청와대 대변인이자 부천시장의 출마가 유력시됐다. 

하지만 정치적 인연이 깊은 국민통합추진회의 전현직 의원들의 ‘차기 국회의장을 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아들여 장관직을 고사하고 출마를 준비해 왔다. 하지만 최근 원 의원이 다시 불출마 쪽으로 기류가 바뀐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전반기 의장을 지낸 정세균 의원 역시 종로 지역 출마와 불출마 사이에 ‘NCND'(Neither Confirm Nor Deny·긍정도 부정도 아님) 입장에서 출마를 접을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이에 대해 정 의원실에서는 ‘NCND'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오히려 정 의원실에서는 친문 진영에서 양 원장이 당에 복귀해 친분이 깊은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출마를 위해 의도적으로 흘리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보내고 있다. 

민주당 5선의 한 의원실에서도 이해찬-양정철 발 ‘중진물갈이론’에 대해 체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인사는 “최근 양정철 원장이 당에 오면서 그동안 농담처럼 여기던 이 대표와의  식사나 술자리를 중진들이 꺼리고 있다”며 “만남을 갖고 나면 ‘불출마’ 소문이 돌아서 우리도 이 대표가 연락이 언제 올까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의원실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로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 200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DJ 정부 권력서열 ‘넘버2’이자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 전 의원이 당 혁신을 위해 불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그러고 나서 동교동계 수도권·호남 중진 의원들이 배지를 줄줄이 내려놓게 됐다. 이때 새 피로 수혈된 이들이 소위 운동권 386세대다. 

당시 권 전 의원이 ‘저승사자’로 불려 당내 중진의원들은 전화를 일부로 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불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에 ‘후배를 위해 백의종군하자’고 설득할 경우 대응할 마땅한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권노갑 전 의원은 또한 ‘배지’를 고집하는 중진 의원들에게 지역구민의 높은 교체지수 여론조사 결과를 내밀며 불출마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 역시 비슷한 처지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총선에서 당에서 공천 탈락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시스템 공천’을 강조하면서 ‘전략공천은 없다. 후보자가 있는 곳은 경선을 원칙으로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靑 40여 명 총선 전진배치? 현 경선룰 “어림도 없어...”

반면 이 대표는 세대교체 및 물갈이를 위해 당헌·당규에 마련된 현역 의원들의 지역구와 의정활동 평가를 통해 하위 20%에 속하는 현역 의원들에 대해 경선과 공천과정에서 각각 10%씩 20%의 감점을 주기로 했다. 반면 정치신인에게는 공천심사과정에서 10%와 경선과정에서 10% 그리고 여성 등 정치 소수자에게 10%의 가점을 주기로 했다. 여성이자 정치신인의 경우 경선에서 최대 20%의 가점을 받는다. 

얼핏 보면 정치신인들이 현역의원에 비해 공천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당내 정치신인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청와대 출신 40여 명이 현역의원과 경선을 할 경우 살아남을 사람은 임종석, 한병도, 진성준 백원우 등 인지도가 높은 전직 의원이나 구청장 출신 정도나 유리하지 윤영찬 전 홍보수석, 권혁기 춘추관장 무명의 정치신인은 현역과 지역위원장을 상대로 공천을 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여성이 아닌 정치신인의 경우 경선에서 가산점 10%는 더욱 의미가 없다. 현재 경선룰은 권리당원 50%와 안심번호 50%로 정해졌다. 정치신인 중 공직에 있었거나 선거에 늦게 참여하는 이들은 권리당원 모집에서 어려움이 있다. 

당원 모집에 1인당 얼마, 대납 요구까지 충족하려면 경제적 형편이 안좋을 경우 더 힘들다. 현직에 있으면서 권리당원을 모집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정치신인이 본인을 도와주는 이들에게 권리당원 모집을 지원받는다 해도 현역-지역위원장을 따라잡기는  어렵다. 

반면 현역 의원과 지역위원장들은 꾸준히 지역을 관리해 왔기 때문에 권리당원 확보에서 앞서는 것은 물론 인지도 면에서도 크게 유리한 것으로 평가된다. 민주당은 권리당원 기준과 관련, 오는 8월1일 이전에 입당한 권리당원에 한해 투표권을 인정하기로 했다. 즉 오는 7월 말까지 입당한 뒤 6회 이상 당비를 납부해야 내년 총선 공천에 투표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민주당 당헌·당규가 현역의원에게 유리한 규정이 숨어있다. 권리당원인데 당비를 3개월 이상 내지 못한 권리당원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이들이 밀린 당비를 한꺼번에 낼 경우 권리당원권을 회복한다. 문제는 이 명단을 현역의원이나 지역위원장만이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여성 정치신인이 경선과정에서 최대 20% 가점을 받는다는 점에도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만약 현역 의원이나 지역위원장과 경선을 해 여성 정치신인이 30%의 득표를 했다면 득표율의 20%로 36%가 되는 것이다. 그냥 정치신인일 경우 33%다. 현역이 인지도와 권리당원 확보에서 압도적으로 앞서는 상황에 10%의 가점은 의미가 없다. 더욱이 공천심사과정에서 10% 가점은 더 의미가 없다는 게 정치신인들의 주장이다. 

결국 128명의 민주당 현역 의원들중 하위 20%의 25명 정도 현역 물갈이가 이뤄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호남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의 경우 현역 의원 2명을 제외하고 민주평화당 내지 바른미래당 중진의원들이 꿰차고 있다. 정치신인이 공천을 받기가 힘든 데다 받는다고 해도 지역에서 오랫동안 정치를 해 온 중진들을 상대해 승리하기는 쉽지 않다.

현행 공천룰에서는 현역 평가에서 ‘하위 20%’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전제로 경선에서 정치신인을 상대로 압도적인 표차로 이기면 공천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해찬 대표의 ‘불출마 선언’을 통한 백의종군 요구와 양정철 원장의 대통령 최측근 실세로서 광폭행보는 중진들을 긴장케 만들고 있다. 또한 교체 폭도 커질 수 있다.

제1야당인 한국당의 물갈이 폭이 40% 이상 넘을 경우 민주당의 20% 물갈이는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물갈이 폭을 인위적으로 넓히는 것이 방책이다. 전략공천은 없다고 이 대표는 강조하고 있지만 하위 20% 현역 외에 지역 내 ‘교체지수’가 50% 이상 높게 나오는 현역 의원을 공천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당내 경쟁자를 상대로 한 경선여론조사에서 박빙의 대결을 벌이는 경우 마찬가지다. 경선 후유증으로 상대 후보가 어부지리로 승리할 수도 있다. 결국 물갈이폭은 변할 수밖에 없고 그나마 공천 후유증이 적은 것은 자발적·집단적으로 중진의원들이 불출마를  선언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역 의원들이 아무리 중진이라고 해도 금배지를 쉽게 내려놓는 경우는 드물다. 결국 문재인 정부 임기가 2년 남은 상황에서 불출마 대가로 총리, 장관, 기관장 자리를 통해 빅‘딜’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의 측근인 양정철 원장의 서훈 국정원장과 4시간 만남 역시 인위적 물갈이를 위한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는 배경이다. 국정원의 경우 국내 정보 파트가 유명무실해지면서 인력이 전국 지역으로 흩어진 상황이다. 이로인해 해당 지역 정치인들에 대한 정보는 넘쳐나고 있다는 후문이다. 

서훈 국정원장 회동에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은 부원장

국정원의 총수인 서훈 원장과 양 원장의 만남을 여당 의원들뿐만 아니라 야당 의원들까지 예의 주시하는 배경이다. 국정원이 작심해 먼지 털 듯 300명 의원 뒷조사를 할 경우 걸리지 않을 정치인은 몇 안 되는 게 여의도 현실이다. 비리 정보를  검찰이나 경찰 혹은 경쟁 상대방에 흘릴 경우 해당 정치인의 공천은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 특히 양 원장의 휘하 백원우 부원장은 청와대에서 공직기강과 정치권 비리 등을 다룬 민정비서관 출신이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양 원장과 서 원장 만남 이후 국정원장의 사퇴를 언급한 이유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달 29일 “국가정보원장과 최고 실세 총선 전략가의 어두운 만남 속에서 선거 공작의 냄새를 맡을 수밖에 없다”며 “국정원장은 정치적 중립 의무가 고도로 요구되는 자리인데 그 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살생부’, ‘사찰’이란 단어가 떠오른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발언을 정말 하고 싶은 게 여당 내 비주류 중진들이다. 이 대표가 ‘당근’을 통해 불출마를 종용한다면 양 원장은 ‘채찍’을 들고 압박을 하고 있는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