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金 밀담’ ‘기강해이’ 논란…고삐 옥죄는 ‘적폐청산’ 공직자 반발 치솟아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출범 2년을 맞은 문재인 정부가 여전히 적폐청산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모양새다. 지난달 2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이홍구 전 국무총리,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등 사회계 원로들을 초청해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적폐청산 부분에서는 타협하기 쉽지 않다”며 적폐청산에 강경 드라이브를 재차 걸었다. 이에 일각에서는 최근 보도 등에서 들려오는 정관계의 마찰과 청와대 경호처 공무원의 시민폭행, 한미 정상 간 통화 유출 논란 등 일련의 기강해이 문제가 취임 직후부터 현재까지 지속된 적폐청산 기조에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관계에서 적폐청산에 대한 피로가 누적됐고, 그에 대한 반발이 표출되는 양상이라는 해석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 내막을 알아보자.

이에 일각에서는 최근 보도 등에서 들려오는 정관계의 마찰과 청와대 경호처 공무원의 시민폭행, 한미 정상 간 통화 유출 논란 등 일련의 기강해이 문제가 취임 직후부터 현재까지 지속된 적폐청산 기조에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뉴시스]
뉴시스

-靑·與 “정부관료 말 덜 들어” vs 公 “伏地不動 하게 한 건 누구인가”
-정치권 관계자 “文 적폐청산 기조, 지지층 결집…총선 준비 태세”


“정부 관료가 말 덜 듣는 것, 이런 건 제가 다 해야…”(이인영)
“그건 해주세요. 진짜 저도 2주년이 아니고 마치 4주년 같아요, 정부가.”(김수현)

지난달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정청 을지로 민생현안회의’에 참석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의 대화 일부다. 이들은 마이크가 켜져 있는 걸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같이 발언했다. 이 ‘밀담’이 언론 보도를 통해 세간에 알려지면서 정관계가 불협화음을 빚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졌다.

적폐로 몰고 쥐락펴락…공직 기강 잡기 위한 명분

여당과 청와대가 ‘정부 관료가 말을 덜 듣는다’고 말하게 된 배경에 대해 한쪽에서는 집권 직후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문 정권의 적폐청산 기조에 공직사회가 피로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한 공직사회 관계자는 “예전에는 모든 부처마다 청와대와 긴밀히 연락하며 사업과 정책을 조율하는 기획조정실이 선호 부서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곳이 기피 부서가 됐다”며 “사업을 기획했다가 정권이 바뀌면 거기에 일조했던 사람들이 다 한직으로 물러난다. 이전 정부의 중점 정책에 일조했다는 이유만으로 ‘적폐’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괜히 나서서 아이디어를 냈다가 정권이 바뀌면 또 (적폐로 몰릴 수 있지 않나)…. 이걸 본 공무원들은 (일을 할 때) 복지부동(伏地不動)으로 시작하게 된다”라면서 “그러다 보니 지금 (공직자에게) 일을 시키려는 여당 대표나 청와대 정책실장 같은 경우는 공무원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야당도 비판에 가세했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지난달 13일 논평을 발표해 “전 정권에서 정책과제를 수행한 공무원들은 적폐로 몰더니, 자기들 정권 공무원은 무능과 복지부동으로 모느냐”며 “공무원이 국민의 공복(公僕)이지 정권의 시녀가 돼야 직성이 풀린단 말이냐”며 일갈했다.

관계자는 “(공무원) 기강을 잡을 만한 명분이 없으니 적폐청산이라는 프레임을 짜놓은 뒤 여기에 걸리면 적폐라고 터는 것”이라며 “취임 직후 한 번 몰아칠 줄 알았는데 (이게) 계속 되는 거다”라고 토로했다.

아울러 “(공무원들은) 여태까지 사회에 봉사해 온 이들을 다 적폐로 몰고 쥐락펴락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굉장히 심하다. 관료 출신이면 대부분 다 공감할 것”이라며 “‘현 정권에 순응하느냐 마느냐’가 적폐의 기준이다. (일련의 상황은) 레임덕이 아니고 현 정권의 의미 없는 적폐몰이에 대한 공직사회의 반발이라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적폐청산, 정권 무관하게 해야 하는 과제…피로도 없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일 청와대에서 사회계 원로들과 오찬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 함께한 이홍구 전 총리와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은 ‘분열이 아닌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취지로 조언했다.

문 대통령은 “어떤 사람들은 적폐 수사를 그만하고 좀 통합으로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도 많이 한다. (그러나) 살아 움직이는 수사에 대해서 정부가 통제할 수도 없고 또 통제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라며 “개인적으로는 국정농단이나 사법농단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아주 심각한 반(反)헌법적인 것이고, 또 헌법 파괴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는 타협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래서 빨리 진상을 규명하고 청산이 이뤄진 다음 그 성찰 위에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나가자는 데 대해 공감이 있다면 그 구체적인 방안들에 대해 얼마든지 협치하고 타협도 할 수 있을 것인데, 국정농단이나 사법농단 그 자체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입장이나 시각이 다르니까 그런 것이 어려움들이 많은 것 같다”고 언급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문 정권의 적폐청산 견지에 대해 ‘총선 준비 태세’라고 풀이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원로들과의 대화에서 ‘적폐청산에 타협 없다’고 했을 때 놀랐다. 그 자리는 원로들과의 대화한 뒤 국민 통합, 화합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 아니었나”라며 “(문 대통령의 태도는) 자신들의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총선 준비 태세에 들어간 것이다”라는 분석이다. 

이언주 무소속 의원은 “정권 초기도 아니고 벌써 몇 년째 적폐청산을 내세우며 정치보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작 경제, 외교, 북핵 등 중요한 국정은 뒷전”이라며 “(현 정부의 태도는) 적폐청산이라기보다는 내로남불 기조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문 대통령의 말을 ‘타협 없는 적폐청산’이라는 기조로 해석한 이들이 많다. 그러자 청와대 관계자는 이튿날인 지난달 3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발언을) ‘선(先) 적폐청산-후(後) 타협’ 기조로 보는데, 마치 타협하지 않겠다는 기조로 읽힌다”며 “대통령의 워딩은 국정농단과 사법농단이 사실이라면 그것이 반헌법적이기 때문에 타협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또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는 성찰과 공감이 있으면 얼마든지 협치와 타협이 가능하다는 말도 담겼다”고 반박했다. 또 “이분법적으로 적폐청산이 안 되면 타협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그렇다고 (적폐) 청산을 아무 것도 안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것이 있고 성찰과 공감이 있으면 협치와 타협이 가능한데 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 어려움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대통령의 발언이) 본의와 달리 해석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이 적폐 청산 관련 언급을 내놓은 이유에 대해서는 “현재 수사에 대해 그만 하자는, 피로감이 있다는 여론이 있고 여전히 미흡하다는 여론도 있다”며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고, 그에 대한 대통령의 시각을 말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 의원실 관계자도 이와 생각을 같이했다. 그는 “적폐 청산에 대한 피로감은 전혀 없고, 적폐청산은 누가 됐든 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설사) 그것에 대한 피로감이 있고 지친다고 해서 멈출 수 없다”며 “누가 정권을 잡든, 정권이 바뀌든 적폐 청산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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