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캘거리-첫 번째 여정

[편집=김정아 기자/사진=Go-On 제공]
[편집=김정아 기자/사진=Go-On 제공]

 

젊은 시절 검독수리 깃털로 만든 모자를 머리에 쓰고 무리를 이끌었던, 엘더 브루스 스타라이트 추장 할아버지를 마주한 후 캘거리 여행의 방향은 완벽하게 뒤집혔다. 수천 년 동안 이 땅에 살았던 퍼스트 네이션의 삶에 귀 기울이는 것으로. 보호 구역에서의 산책과 테마파크 방문이 할 수 있는 전부였지만, 그들을 알게 되면서 내가 알던 세상이 조금 더 넓어진 듯하다.

원주민 보호구역에서의 산책

캘거리Calgary 외곽의 광활한 숲. 사위가 고요하다. 젊은 시절 이 지역 원주민들을 이끌며 추장의 지위를 누렸던 할아버지 뒤를 따르는 중이다. 그의 이름은 엘더 브루스 스타라이트Elder Bruce Starlight. 예쁘게도 ‘별빛’이다. 우리의 발걸음에 치여 바스락바스락 발밑의 낙엽 소리만이 공중에 부서질 뿐, 그는 말이 없다. 얼굴에 깊게 팬 주름, 양옆으로 곱게 땋아 내린 흰 머리, 발목까지 내려오는 양모로 짠 외투. 이 산책길에서 나의 할 일이라곤 캐나다의 장대한 산을 꼭 빼닮은 스타라이트 할아버지의 든든한 풍채를 관찰하는 것밖에 없다. 그의 속도는 나무늘보만큼이나 느리다. 이따금 발걸음을 멈추기도 한다. 새의 지저귐을 듣는 건지, 아님 바람을 쫓는 건지. 그렇다고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는 건 아니고, 고개만 미세하게 돌리는 정도다. 다섯 걸음 뒤에서조차 느껴지는 그의 진중한 날숨과 들숨, 그리고 움직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신성한 기운이 곁에 차분히 내려앉는다. 

1시간 남짓 누렸던 스타라이트 할아버지와의 느긋한 산책. 그저 한낱 풀밭을 헤치고 다닌 게 아니었다. 그는 발밑의 잡초도 함부로 밟지 않았다. 작은 이파리 하나, 숲에 뒹구는 열매 하나에도 다 뜻이 있고 용도가 있기 때문이다. 풀과 나무를 쓰다듬는 그의 손끝에, 귀한 지혜가 흘러나오는 그의 입술에 집중했더니 금세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게 없어졌다. 혼자 이곳에 찾아왔다면 잡초들만 무성한 원주민들의 옛 땅을 둘러봤노라 착각했을 텐데. 무지하게도 단순하게 ‘인디언 추장님’을 만난다는 사실에 얼마나 가슴을 떨었던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지만, 잠시나마 그의 영역에서 아름다웠던 시절을 엿본 거 같아 기분이 묘했다.

이 땅의 주인, 퍼스트 네이션 

원주민 할아버지를 만난 곳은 츠티나 네이션 145 인디언 보호구역Tsuut'ina Nation 145 Indian reserve이다. 캐나다 앨버타 주의 중심 도시인 캘거리에서 남서쪽으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그들만의 오랜 집. 대부분을 잃었고, 일부는 빼앗겼다 돌려받았으며, 또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팔아넘기기도 했던, 나로서는 감히 이해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역사가 깃들어 있는 땅이다. 오래전 그들의 영토는 지금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초원을 차지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스타라이트 할아버지의 아들은 이것마저도 다행이라고 귀띔했다. 1910년부터 1998년까지 현재 보호구역의 북동쪽 부분은 캐나다의 군대 기지로 사용되다가 2006년이 되어서야 원주민들에게 다시 반환되었으므로. 현재 2천 명 남짓한 츠티나 네이션Tsuut'ina Nation 사람들이 이 보호구역 내에 거주하고 있다.

“초원에 사는 원주민들의 생활이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한 건 19세기부터예요. 원래 퍼스트 네이션 사람들은 바이슨 유목과 송어잡이를 하며 살았답니다. 그러나 유럽에서 온 백인 사냥꾼들의 조직화되고 산업적인 바이슨 사냥으로 인해 바이슨 떼가 사라질 수밖에 없었어요. 결국 우리들의 삶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니까요. 바이슨이 더 이상 주요한 식량이 되지 않았으니까요.” 말이 없는 스타라이트 할아버지와 달리 그의 젊은 아들은 츠티나 네이션 내에서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바이슨이 사라지자 기아와 박탈이 줄줄이 이어졌다. 식량은 물론이고, 바이슨의 뼈와 가죽으로 의복을 만들어 입고 집을 지었던 이들의 생활과 문화가 순식간에 무너져 버리게 된 것이다. 결국 ‘인디언 보호구역’이라고 지정된 땅에 갇혀서 목장과 농장 운영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1870년대에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이러한 불공정한 조약이 많이 이뤄졌다. 일반인들 속에 흡수 동화되도록 만들었던 ‘연방 인디언 법’. 퍼스트 네이션으로부터 보호 구역 땅을 몰수 하는 데도 용이했던 법이다. 만약 땅을 파는 것을 거부하면, 그들에게 지원해주던 자금이나 식수 등을 보류하기도 했다. 퍼스트 네이션의 리더와 여러 주 정부, 연방 정부에서 만든 협정에 의해 캐나다인과 원주민들과의 삶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지원이 시작된 건 겨우 1990년대에 이르러서다. 

츠티나 네이션의 경우에도 캘거리에 건설 중인 도시 외곽순환도로Highway 201가 보호구역의 남서쪽을 지나도록 설계되면서 영토를 무조건 팔아버리거나 혹은 팔지 않으려는 이들로 인해 오랫동안 충돌을 겪었다. 어쩔 수 없이 2013년 10월 총선거를 통해 앨버타 주의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말이다. 보호 구역의 428에이커의 땅을 넘겨주고, 주 소유의 땅 2,160에이커를 보상 받았다. 그렇지만 일부는 고향을 버리고 이주해야 했으며, 환경적으로 주요한 늪지대도 파괴됐다. 다행히도 엘더 브루스 스타라이트 할아버지의 집과 숲은 지켜졌고, 자신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팟티드 엘크 문화 센터Spotted Elk Cultural Center를 가족과 함께 30년째 운영하고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