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사직을 구한 불멸의 명신 이제현

 

공민왕과 이제현의 치국방략을 위한 담론

즉위식에 이어 온 나라 안이 축제 분위기로 들떠 있었다. 
경축잔치가 끝나고 며칠이 지난 후 이제현은 공민왕의 부름을 받았다. 이제현은 다소 긴장된 심정으로 편전으로 들어섰다. 큰 포부와 야심을 가진 22세의 젊은 국왕과 학자로서 명망이 높은 65세의 경륜 높은 재상이 정치개혁을 위해 머리를 맞댄 것이다. 편전에는 뜻밖에도 중전인 노국공주가 동석해 있었다. 
이제현은 두 사람을 향해 곡배(曲拜 굽은 절)를 올리고 정중히 고했다. 
“전하, 찾아계시옵니까?”
“오늘은 기쁜 날이라 노국공주를 불렀어요.”
“전하…….”
노국공주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치하의 말을 건넸다.
“대감, 하례를 드립니다. 탑전(榻前, 왕의 자리 앞)이기는 합니다만, 이 왕후는 오늘 같은 날이 있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중전마마, 가없는 성은에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이제현과 노국공주가 예의를 갖추고 있는 사이에 곧 어주상이 들어왔다. 공민왕이 몸소 은주전자를 들며 말했다. 
“자, 과인의 스승이 수상의 자리에 올랐으니, 사양 말고 받으세요.”
“전하…….”
“다가앉으세요. 과인의 술잔을 받으세요, 시중.”
“성은이 하해와 같사옵니다.”
시중의 자리에 오른 것만도 영광인데 하례의 첫잔을 주군으로부터 받는 것은 영광을 더하는 일임이 틀림없었다. 술상을 사이에 두고 앉은 군신을 노국공주는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술잔이 몇 잔 오고간 뒤에 공민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시중!”
“예, 전하.”
“우리가 만난 지가 얼마나 되었습니까?”
“햇수로 10년은 되었나 봅니다. 전하께서 원나라 순제의 입조 요구에 따라 12세 되던 해에 연경으로 떠나시기 전에 잠시 뵌 기억이 있사옵니다.”
“맞아요. 그 당시 시중은 조정에서 물러나 면학(勉學)에 몰두하고 있었지요. 과인에게 연경 생활에 대해 자상하게 설명해주던 일이 생각납니다.”
“강산이 변하는 지난 세월 동안 전하께서는 참으로 많은 파란과 곡절을 잘도 이겨내셨사옵니다.”
“시중의 지도와 가르침이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황공하옵니다. 전하…….”
“시중을 정사(政事)의 스승으로 모시게 된 것이 과인에게는 큰 복입니다. 과인은 오로지 시중만 의지하고 있으니 힘이 되어 주십시오.”
“망극하옵니다. 전하…….”
간단한 상견례가 끝나자 공민왕은 스승 이제현에게 ‘치국(治國)의 원칙’에 대한 가르침을 청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원칙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이제현은 두 손을 읍하고 말했다. 
“그 옛날 태공망(太公望, 강태공)은 ‘천하는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요, 만백성과 이익을 함께하는 자만이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갈파했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려면 태공망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세 가지 기본원칙’만은 꼭 지켜 나가셔야 하옵니다. 첫째는 하늘을 공경할 줄 아셔야 하옵고, 둘째는 백성을 사랑할 줄 아셔야 하옵고, 셋째는 만천하의 인재들을 널리 구할 줄 아셔야 하옵니다. 이를 위해서는 풍속을 바로잡고 백성을 교화하는 학교를 재건해야 하옵니다. 국학이 유명무실하고 12공도와 동서학당이 헐고 무너졌으니 마땅히 이를 수리하고 생도들을 양성해야 하옵니다.”
공민왕은 옷깃을 바로잡으며 말했다.
“시중이 말씀하신 태공망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세 가지 기본원칙을 반드시 지켜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노국공주는 두 사람의 대화를 귀담아 들으면서 새삼스런 당부를 했다.
“시중이 3년 전에 충목왕이 서거한 후 원나라까지 와서 전하를 왕으로 추대하려 했던 일을 이 왕후는 잘 알고 있어요. 시중의 높은 경륜과 학덕을 종사를 위해 잘 써 주세요.”
“중전마마, 충절을 다해 전하를 받들겠사옵니다.”
이윽고 공민왕은 ‘치자(治者)의 도리’에 대한 가르침을 청했다.
“지금 나라 안이 매우 어지럽습니다. 관기(官紀)와 군기(軍紀)는 문란해질 대로 문란해져 있고 국고는 텅텅 비어 있습니다. 백성들은 실의에 빠져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나라 밖으로는 원나라가 상국임을 기화로 갖가지 명목으로 재물을 요구해 오고 있고, 왜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도서지방을 노략질하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하는지 방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전하께서 보신 대로 고려는 지금 빈사 직전의 백척간두에 놓여 있습니다. 백성들은 나라가 평화롭고 질서 있게 돌아갈 때는 통치자에게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위태롭고 질서가 문란해지면 통치자를 탓합니다. 이러한 난세에 나라를 다스리는 전하께서는 역대 임금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 주셔야 하옵니다.”
“선왕들과 다른 면모가 어떤 것입니까?”
“≪육도삼략(六韜三略)≫에 ‘임금이 불초(不肖)하면 나라가 위태하고 백성이 어지러우며, 임금이 어질면 나라가 편안하고 백성이 잘 다스려지나니, 화복(禍福)은 천시(天時)가 아니라 군주에게 있다’는 말이 있고, 또한 ≪논어(論語)≫에도 ‘그 몸이 바르면 명령 없이도 행해지나, 그 몸이 바르지 못하면 명령해도 따르지 않는다’는 말이 있사옵니다. 천하가 편안하고 태평하기를 바란다면 먼저 군주가 자세를 바르게 할 필요가 있으며, 군주가 훌륭한 정사를 펼치면 백성은 제멋대로 행동하지 않는 법이옵니다.” 
“잘 알겠습니다.”
공민왕은 화제를 돌려 ‘원나라의 형세’에 대한 자문을 청하는 화두를 던졌다. 옆에 앉아 있는 노국공주도 자신의 조국의 일이라 관심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원은 홍건적의 봉기로 급격히 퇴조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하, 참으로 중국의 정세를 정확하게 내다보고 계시옵니다. 원나라는 남송을 멸하고 중국 전체를 통일한 이래 엄격한 민족차별정책을 실시하여 한인들을 사회의 최하층 계급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잔혹한 통치로 인해 3년 전(1348) 절강성의  방국진(方國珍)이 반란을 일으킨 것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차례로 반란이 일어나, 올해 홍건적(紅巾賊)의 난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군대는 10만에 달하고 군세는 계속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으며, 사기는 높아 가히 기호지세의 형세라 할 만합니다.”
“미구(未久)에는 형세가 어떻게 전개될 것 같습니까?” 
“원나라는 꺼져가는 촛불의 운명으로 향후 20년을 버티지 못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왜냐하면 원나라는 유목민 고유의 군장 계승방식에서 비롯된 치열한 내부 분쟁, 지나친 라마교 숭배로 인한 국고의 소모, 지폐의 남발로 인한 파탄난 재정으로 국력이 쇠락일로에 있기 때문이옵니다.” 
이윽고 공민왕은 ‘치국의 방략’에 대한 가르침을 청했다.
“당장 이 어지러운 나라를 바로 잡기 위해서 어떤 정책을 펴나가야 합니까?”
“대외정책은 배원정책, 대내정책은 부국강병으로 큰 골격을 세워서 잃어버린 국권을 되찾고 북방의 영토를 회복해야 하옵니다. 또한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해 피폐해진 민생을 바로 잡아야 하옵니다. 그러나 토번(티베트) 속담에 ‘서둘러 걸으면 라싸에 도착할 수 없다. 천천히 걸어야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말이 있듯이, 배원정책은 속도조절이 필요하고 부국강병은 안으로 여물 시간이 필요하옵니다.”
“국권회복과 북방의 영토 탈환이 우리의 힘으로 가능할까요?
“‘동트기 전의 어둠이 가장 어둡다’고 했습니다. 지금 고려 조정은 힘이 없지만 원나라의 쇠망과 한족 왕조의 부흥이라는 왕조교체 움직임을 잘 이용할 수 있다면 긴 어둠을 끝내고 여명의 새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래서 고려 백성들은 한결같이 전하의 선정(善政)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옵니다.”
“왕다운 왕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먼저 전하 주변에 능력 있는 인재들을 모으소서. 그리하여 조정의 힘을 키워 쌍성총관부와 동녕부를 수복하고, 한족들과 교통하여 원나라의 쇠망에 대비하면 문종대왕 때의 고려의 전성기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앞으로 인재등용은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하겠습니까?”
“치세에는 능력과 덕망이 모두 필요하지만 난세에는 능력 위주로 인재를 써야 하옵니다. 지금은 난세입니다. 그러니 능력이 검증되고 초기 개혁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경륜을 갖춘 성리학자들을 중용해야 하옵니다.”
“조정의 일 중 가장 시급한 현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인사행정의 난맥상을 바로잡기 위해서 정방(政房)을 폐지해야 하옵니다. 정방이 철폐되고 인사에 관한 업무가 상서 6부 중 문반은 이부, 무반은 병부로 이관되면 단 한 명의 관리를 세우는 데도 여러 절차와 결재가 요구되옵니다. 당연히 부원세력들은 청탁을 받고 벼슬을 마음대로 내릴 수 없게 될 것이옵니다. 그리고 감찰대부 이연종의 건의를 받아들여 전하께옵서 먼저 변발(髮)을 풀어 자주적 명분을 뚜렷이 하시고 고려의 토풍을 되살려 나가야 하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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