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열린우리당측이 헌법재판소에 대한 평가를 160일만에 180도로 뒤집어 많은 국민들을 실망케 하였다. 지난 5월14일 헌법재판소는 파면당할뻔했던 노 대통령을 살려주었다. 헌재가 국회의 노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기각해 주었다는데서 그렇다. 여기에 노무현 집권세력은 헌재의 결정을 구세주로 떠받들며 열렬히 환영하였다. 열린우리당측은 헌재를 가리켜 ‘민주주의를 수호한 헌법기관’, ‘국민의 정서와 권위있는 기관’, ‘헌재 재판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등 경의와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심지어 노 대통령은 헌재 결정으로 자신이 예수님처럼 “부활모습을 보여줬다”고 술회할 정도로 헌재 결정을 승화시켰다.하지만 그로부터 꼭 160일만인 10월21일 바로 그 헌재가 노 대통령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위헌이라고 결정하자, 집권세력은 태도를 180도로 뒤집고 헌재에 대해 사납게 공격하고 나섰다. “헌법재판소가 헌법을 훼손했다”, “분수를 망각한 상식 이하의 결정”, “헌법재판소는 개혁에 저항하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 “재판관들에 대해 탄핵안을 발의할 계획” 이라고 쏴붙였다. 친여매체나 단체들은 “헌재를 손봐야 할 대상”이라고 협박까지 했다. 집권세력의 태도돌변은 자신들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근본부터 뒤흔들게 하기에 충분하고, 그들이 인간으로서 기본을 갖추고 있는가 의심케 했다. 집권세력은 불리한 결정을 내렸다고 해서 헌재를 ‘헌법 수호기관’에서 160일만에 헌법 ‘훼손기관’으로 뒤집었는가 하면, 헌재 재판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가 탄핵 대상이라고 호통쳤다. 그런가하면 헌재를 대통령까지 부활시킬 수 있는 존재에서 손봐야 할 불량 패거리로 전락시켰다. 5개월 전 노 대통령 탄핵안이 헌재에 의해 기각되었을 당시 그에 대한 야당의 반응을 다시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때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탄핵안을 국회에 제출해 재적의원 3분의2 이상의 압도적 다수 표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헌재는 두 야당의 탄핵안을 기각시킴으로써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치명상을 입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측은 지금의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처럼 헌재 결정에 대해 마구 반박하지 않고 도리어 겸허히 승복했다. 탄핵 추진 당시 한나라당의 대표였던 최병렬씨는 “헌재 결정은 존중되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 국회법사위원장인 김기춘 한나라당 의원도 헌재 결정에 대해 “불만이 있어도 승복하고 존중하는 것이 헌법을 수호하는 태도이고 국민의 도리”라고 했다.탄핵안을 주도했던 민주당의 조순형 전대표는 헌재의 소수의견 비공개에 대해선 불만이지만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다. 민주당의 박상천 전대표도 “헌재의 결정을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고 밝혔다.이처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헌재가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결정을 내렸어도 헌정질서 유지와 헌법 수호를 위해 거기에 깨끗이 승복하였다. 그들은 열린우리당과 같이 헌재가 헌법을 훼손했고 분수를 망각한 상식 이하의 결정이라고 모독하지 않았다. 또한 그들은 열린우리당처럼 헌재를 개혁에 저항하는 선출되지 않은 세력이며 탄핵 대상이라고 막말하지도 않았다. 단지 헌정수호를 위해서는 불만이 있어도 겸허히 승복한다는 것뿐이었다.그동안 집권세력은 걸핏하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가리켜 구악이며 청산의 대상이라고 몰아세웠다. 하지만 집권세력은 160일만에 말을 180도로 뒤집는 등 인간으로서 기본을 갖추었는지 조차 의심케 했고, 헌정 질서를 지키려는 것인지 불안케 했다. 정말 청산의 대상은 말을 뒤집으며 헌정 질서를 불안케 하는 집권세력, 바로 그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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