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신문을 펼쳐보거나 TV 뉴스를 틀기가 두렵다. 연일 뉴스 화면과 신문지면을 들여다 보면, 어둡고 절망적인 기사들로 가득차기 때문이다. 시리즈로 드러나는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수백억원대 차떼기, 증폭되어가고 있는 노무현 캠프의 검은 대선자금 의혹, 줄줄이 드러나는 노 대통령 최측근들의 비리 혐의, 전직 장관의 뇌물 스캔들, 사제총·화염방사기·새총 등 살인 무기까지 등장하는 이익집단의 시위 현장, 속속 떠나는 외국 투자자와 바이어들, 실업대란, 갈팡질팡하는 노무현 행정부 등이 그것들이다. 지난 12일자 서울의 2대 일간지 1면 기사들을 통해서도 오늘의 암울한 현실은 적나라하게 표출되었다. 동아일보 1면에는 오직 좌절과 절망 그리고 분노로 들끓게 하는 기사들로 들어차 있을 따름이었다. ‘이광재 1억 노캠프 전달’, ‘청년실업 하루 1200명’, ‘노캠프엔 비정상자금 안갔나’, ‘무기납품 연루 천용택의원’ 등 제하의 돈 먹은 기사와 심각한 실업 문제뿐이었다. 같은 날 조선일보의 1면 기사도 동아일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광재씨 1억 개인유용혐의’, ‘현대차서도 (한나라당)100억 받아’, ‘노캠프서 선대위 돈 줄 때 안희정이 주로 가져갔다’, ‘노캠프 돈 내주기까지 밝혀라’, ‘총선 1인2표제 도입’ 등 한 꼭지만 빼고는 전면이 조폭 세상 같은 얘기들로 꽉찼다. 노 대통령은 몇 달 전 ‘신문만 안보면 다 잘되고 있다’고 반박한바 있다. 방송만 보면 모든게 다 잘되어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어두운 사건들이 계속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자, 노 대통령과 색깔 코드를 같이하는 ‘정권 방송’들도 연일 추한 몰골들을 감추지 못하고 토해내고 있다. 이쯤되면 노 대통령은 신문만이 아니라 방송도 안봐야 ‘다 잘되고 있다’고 말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절망만 할 필요는 없다. 불행하고 침울한 일들도 값진 교훈으로 삼을 수만 있다면, 보다 밝은 내일을 위해 도약의 디딤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순환으로 되풀이된 한국의 현대사를 상기할 때, 오늘날 한국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교훈으로 삼을 수 있을지 매우 회의적이다. 한국인들은 지난날의 고통과 교훈을 너무 빨리 잊어버리고 얼마 못가 다시금 과거의 잘못을 반복해 저질러 왔다는 데서 그렇다.최근 국민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는 재계와 정당들간의 검은 돈 거래만 해도 처음 불거진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지속되어온 재계와 정치권의 먹이사슬이요, 정경유착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구세력에 돈 준 재벌은 신진 권력에 의해 ‘구악’이라는 이름으로 단죄되었다. 역사의 정해진 코스처럼 되풀이되어온 악순환이다. 권력실세들의 검은 돈 먹기와 감옥행도 예정된 코스이다. 최도술·이광재·안희정·강금원씨 등 노 대통령 최측근들의 법정행도 자유당 정권말기부터 반복되어온 권력형 비리 악순환의 또 다른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4년 뒤 정권이 바뀌면, 또 그때 가서도 쇠고랑을 차고 고개숙인 몇몇 기업인들과 권력실세들의 추한 모습들이 TV 뉴스에 나타날게 뻔하다. 새로 권력잡은 세력은 ‘구악’을 나무라면서도 ‘구악’ 보다 더 닥치는대로 먹어치운다는데서 빚어지는 한국적 비극이다. 한국은 희망이 없는 나라인가. 한국도 희망이 넘치는 나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저와같이 반세기 동안 반복되어온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만 한다. 악순환의 고리끊기는 실정법을 어긴자들에 대한 추상같은 단죄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이어 법을 어긴자는 재벌이건, 정치인이건, 노조 간부건, 사조직이나 공조직의 중책에 다시는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철저히 규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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