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독재체제의 잔혹성을 덮어주었던 미국의 한 언론인이 퓰리처 상 까지 수상했다가 죽은 뒤에 그 사실이 탄로돼 개망신 당하고 있어 브끄럽기 그지없다. 뉴욕타임스의 월터 듀런티씨가 그 수치의 주인공이다.듀런티는 1922~41년 사이 뉴욕타임스의 소련 특파원을 지냈다. 그는 서방 언론과의 접촉을 거부해온 요셉 스탈린과 1929년 단독 인터뷰를 함으로써 동료들의 부러움을 샀고, 31년에는 소련에 대한 연재물을 취재 보도하기도 했다. 그는 이 연재물로 그 다음 해 퓰리처 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 상은 언론계에서는 노벨상과 같은 최고의 명예를 상징한다. 그러나 듀런티는 연재물을 보도하기 시작한 다음 해부터 엄습하기 시작한 우크라이나 지방의 대기근 참상과 공산독재체제의 잔혹성을 보도하지 않고 덮어주었다. 우크라이나 대기근은 스탈린의 급진적인 집단농장화 정책으로 빚어진 것으로서 공산학정이 만들어낸 인재였다. 무려 700만 우크라이나인들이 굶어죽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소련당국이 공산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꾸며낸 선전물들을 그대로 보도해 주기도 했다. 결국 공산학정을 덮어준 듀런티의 죄상은 1986년부터 발각되기 시작해 이제는 퓰리처상을 박탈해야 한다는 비난을 받기에 이르렀다. 인간이 저지른 죄상은 아무리 감추려 한다해도 다만 시간 문제일 뿐, 언젠가는 들통나게 마련이다. 스탈린의 공산독재 잔학상이 폭로돼 단죄되었던 것처럼 그것을 기자로서 감춰주었던 듀런티의 왜곡 보도도 탄로돼 단두대에 올려질 수밖에 없다. 그는 1957년 사망했으므로 생전에 지은 죄 때문에 사후에 인격적으로 부관참시의 모욕을 당하는 셈이다. 퓰리처상 위원회는 여러 차례에 걸쳐 뉴욕타임스에 진실규명을 요구했고, 이 신문은 마크 본 하겐 콜럼비아 대학의 역사 교수를 임명해 조사토록 했다. 본 하겐 교수는 듀런티의 퓰리처상은 취소되어야 한다고 판정했다. “잔혹하고도 황폐한 소련정권의 자기 정당화를 위한 선전물에 대한 편파적이고 몰비판적인 보도는 뉴욕타임스 독자들과 그들이 추구하는 자유가치에 대한 위해 행위요, 러시아 사람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몸부림에 대한 저해 행위였다”고 지적했다.듀런티의 반자유적이며 반미국적인 진실 왜곡 보도에 대한 미국의 단죄를 접하면서 오늘날 일부 대한민국 언론들의 반자유적이며 반한국적인 작태가 떠오른다.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의 잔인무도한 독재권력과 북한주민들의 참혹한 삶에 대해서는 덮어둔채 북한을 찬미하다시피하는 언론인들이 그들이다. 지금 한국에는 ‘정권 방송’으로 정평이 나있는 전파매체들을 비롯해 한국적 듀런티들이 너무 많다. 반자유적이며 반한국적인 이적 행위와 같다. 이들은 권력의 비호까지 받고 있다. 일부 한국 언론인들은 포악한 김정일의 독재 실상을 말하지 못하고 있다. 또 이들은 김의 학정으로 수백만명이 굶어죽고 수십만명이 정치범 수용소에서 갖은 학대속에 죽어가고 있는데도 그것에 대해선 준엄히 따지지 못하고 일체 입을 다물고 있다. 이들은 북한의 남한적화를 위한 통일전선전술 책동을 미화해주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자신들이 ‘민족’ ‘민주’ ‘화해’세력이라고 위장하고 나선다.‘잔혹하고도 황폐한’ 김정일 정권의 ‘자기 정당화를 위한 선전물에 대한 편파적이고 몰비판적인 보도’는 한국인들이 추구하는 ‘자유가치에 대한 위해 행위’요,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북한주민들의) 몸부림에 대한 저해 행위’임이 틀림없다. 반자유적이고 반한국적인 이들 언론인들이 지금은 권력과 홍위병들의 비호 아래 설치고 있지만, 언젠가는 듀런티의 경우처럼 단죄의 도마 위에 오르지 않을 수 없으리라고 본다. 듀런티의 인격적인 사후 부관참시를 되새겨 보도록 권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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