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작년 대통령선거 패배 이후 마치 얼빠진 사람 같이 우왕좌왕 흔들리면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국회 의석을 과반수 확보한 원내 제일당으로서 국정을 주도하지도 못한다. 전통 보수당으로서의 이념과 정체성마저 잃어버린 것 같고, 등뼈도 없는 해파리 같이 파도에 밀려 이리저리 떠 다니는 형국이다. 그러더니 얼마전에는 한나라당 소속 최돈웅 의원이 SK그룹으로부터 대선자금 100억원을 받은 사실 마저 드러남으로써 “부정부패 원조당”이라는 오명을 재확인 시켜주고 말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감으로는 부적절하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국민의 불신과 불안 그리고 불만을 유발했다. 그래서 적지 않은 국민들은 집권 경험도 갖춘 한나라당이 혼란스러운 정치향방을 올바로 잡아줄수 있을거라고 기대했었다. 하지만 한나라당에 대한 기대는 한낱 거품으로 꺼지고 말았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좌파성향 코드 정치를 몸 던져 가로막고 나설 용기도 없었고 대안도 제시 못했으며 그나마 검은 돈마저 꿀꺽했음이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이 더 큰 실책이나 저지르기를 마냥 기다리고 앉아 있는 듯 싶다. 이 당은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가 제기되자 보수당으로서 파병의 필요성을 딱부러지게 주장하고 나섰어야 했다. 그러나 이 당은 먼저 노 대통령이 결정을 내린 뒤 그리고 국민의 여론 추이를 살펴본 다음에야 입장을 밝히겠다면서 기회주의적으로 임했다. 걸핏하면 반전피켓을 들고 시끄럽게 외쳐대는 집단들의 파병반대시위가 두려워 한나라당은 추가파병이 필요하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당은 반전항의시위가 무서워 뒤로 몸을 숨길게 아니라 당당히 그들과 맞서 추가파병을 설득하며 국민여론을 끌고 나갔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와 관련해서도 왔다갔다 하며 중심을 잡지 못했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처음엔 “빠른 시일 내에 가장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재신임을 처리하라고 다그쳤다. 그러나 그는 이틀 뒤 말을 바꿨다. 그는 재신임 보다는 먼저 최도술 비리의혹부터 파헤쳐야 한다고 순서를 뒤집었다. 최 대표는 먼저 재신임 투표의 조기 실시를 주장했던 만큼 여론조사 결과와 상관없이 재신임을 밀고 가는 소신을 보였어야 했다. 도리어 몇석 안되는 의원을 거느린 자민련은 노 대통령이 ‘하야’를 처음부터 주장하며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한나라당의 추한 모습은 최돈웅 의원의 100억원 수수사건에 임하는 억지와 편파적 자세에서도 드러났다. 최 대표는 송광수 검찰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SK비자금 수사는 당당히 조사를 받을 것이지만 당의 계좌를 추적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겁을 주었다는 데서 그렇다. 그동안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이 검찰의 수사사안에 대해 언급하였을 때마다 수사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고 벌떼 처럼 들고 일어 났었다. 언젠가 최대표는 “이 나라는 법도 원칙도 없이 목소리 큰 사람이 좌지우지하는 나라가 됐다”고 개탄한바 있다. 송 검찰총장에 대한 최 대표의 전화야 말로 ‘법도 원칙도 없이 목소리 큰 사람이 좌지우지’ 하려는 간섭이 아닐 수 없다. 이 나라의 고질적 병폐인 불법 대선자금은 여야의 것을 막론하고 모든 계좌를 추적해 파헤쳐져야 하며 고백성사와 관계없이 법대로 처벌되어야 한다.한나라당은 대선패배 직후 ‘새로운 시작’ ‘노쇄이미지 쇄신’ ‘강력한 추진력’ 등이 요구된다고 입을 모았었다. 하지만 지금 한나당이 필요한 것은 철부지 386세대 주장과 같은 물갈이나 세대교체 또는 노쇄이미지 쇄신이 아니라 ‘원숙한 경륜’과 ‘균형 잡힌 노련미’ 보강이며 전통 보수당으로서의 원칙과 소신이다. 등뼈도 없는 정당이 아니라 노무현 코드 정치에 꼿꼿이 맞서 국정의 좌선회와 혼돈을 바로잡는 정당이어야 함을 강조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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