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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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외교원 외교사연구센터에서 ‘외교’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 현대사를 조명하기 위해 오럴히스토리사업 ‘한국 외교와 외교관’ 도서 출판을 진행해 왔다. 지금까지 총 16권의 책이 발간됐다. 일요서울은 그중 정태익 전 주러대사의 이야기가 담긴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지면으로 옮겼다.

 

-“軍 아닌 외교 평화통일 원한다면 합당한 준비·노력 필요해”

 

-최근 중국의 급격한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로 세력 전이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 결과 시간이 갈수록 중국과 미국, G2 사이에서 외교적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대사께서 생각하기에는 G2 사이에서 한국은 어떤 외교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나.

▲지금 외교를 하는 데 있어 과거보다는 여러 관점을 고려한 후 숙고해서 결정하는 현안이 많을 것이다. 외교환경이 변한 게 현실인 것 같다. 우리가 잘 봐야 하는 것은 ‘과연 세력 전이가 이뤄진 것인가, 이뤄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다. 미국과 중국의 국력을 냉철하게 분석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냉철히 파악하고 대처하는 것이 외교라고 생각한다.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지구 차원에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동북아시아 차원에서 형성되는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전망하면서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중국의 부상 추세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인가 하는 전망에 대해서 우리가 고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지 프리드먼 박사는 미국의 힘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자원이나 국가시스템 면에서 미국이 중국보다 보편적이고 개방적이다. 대통령 선거 결과로 보면 요즘 미국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해지면서 보수주의적으로 가능 경향이 있지만 미국과 중국을 놓고 볼 때 중국이 더 민족주의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사드 배치 문제만 해도 그렇다.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중국이 감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우리의 외교 방향은 한·미 동맹에 기초하되, 우리 국익에 따라서 보다 자주적인 사고를 해야 된다. 우리가 주체적으로 북한의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해야 한다. 북한은 SLBM 핵무기를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방어체제를 갖추지 않으면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

북핵 문제는 국가의 생존이 걸린 사안이기 때문에 미국의 핵 확장 억제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미군 배치를 허용하는 한, 앞으로도 사드 배치는 불가피하다는 논리로 일관성 있게 설득해 왔더라면 문제 발생을 회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 외교의 방향은 우리 국익에 입각한 대외정책, 대북정책을 수립해서 효율적으로 집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력 신장과 인재 양성이 시대를 초월해서 국가가 가장 신경써야 할 과제다.

-현 시점에서 우리 한국 외교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와 문제가 있다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말해 달라.

▲아놀드 조셉 토인비 박사는 역사를 도전에 대한 응전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으로 봤다. 우리는 위기 속에서 생존해 왔는데 현재 직면한 외교안보적인 위기는 완전히 죽느냐 안 죽느냐 하는 문제다. 핵무기라는 가공할 무기를 개발해 본격적으로 위협을 가하는 상황은 초유의 일이다. 과거와 같은 사고로 대처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제재를 가하지만 동시에 북한의 행태를 근원적으로 바꾸도록 하는 조치도 취해야 할 것이다. 제재를 통해서 일단 현 상황을 관리해 나가는 일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인 대책이라는 것은 양측이 생존할 수 있는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인데, 방법론의 문제가 생긴다. 남북 간 대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하고 북·미 간 대화를 통한 평화 합의가 가미돼야 하며 6자 평화체제 형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외교적 사고의 다층화라고 할까, 모든 것이 평화 체제의 형성으로 수렴되는 외교가 돼야 한다. 독일이 통일하면서 비스마르크가 취한 혜안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한다.

-최근 미·중 간 세력 전이 현상이 발생하면서 국제정세를 전략적으로 세밀하게 분석하고 대외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대사께서 보시기에 앞으로 우리 외교부 조직을 어떤 방향으로 재정비해야 하며, 어떤 외교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말해 달라.

▲한국은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신분 상승한 국가다. 우리가 역사상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중견국가 지위가 됐다. 지금까지 우리는 약소국가였기 때문에 강대국의 동향을 잘 살펴서 선택된 국가와 협력을 유지해서 생존과 안보와 번영을 누려 온 것이다. 우리가 잘 대처해서 경제발전을 이룩했고 국제적으로도 중견국 지위를 얻었다.

중견국들은 강대국과 약소국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 이탈리아 같은 나라가 그런 카테고리에 들어간다. 유럽의 강국이지만 영국·독일·프랑스에 비해 정치적으로 좀 밀려 있다. 그래서 항상 입지를 넓히려고 틈새외교를 한다. 우리는 기존 질서를 타파해야만 성취할 수 있는 통일이라는 목표가 생겼다. 틈새외교를 하기 위해 아르헨티나·브라질·인도 같은 큰 나라지만 안보리에 들지 못한 나라들과 유대를 강화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종래와는 다른 외교를 해야 한다. 최근에 우리 정부가 믹타를 설립해 중견국 외교를 강화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는데, 감당할 수 있는 내부적인 인프라 정비가 안 됐다고 본다.

중견국 외교를 하려면 지금과 같은 약 1500명 정도의 외교조직으로는 대처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사드 문제나 대북 제재 문제에 외교부의 거의 모든 인력이 동원돼 있는데, 그렇게 투입되고서도 일부 인력은 좀 더 큰 그림의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려면 지금 조직보다는 배 이상의 외교 인력, 최소한 3000~5000명 정도는 있어야 한다. 그래야 통일도 달성할 수 있고 지금 당면한 위기상황도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같은 수준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더군다나 군대가 아닌 외교로 평화통일을 하려면 그에 합당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한데, 지금 현재로는 그런 것이 안 돼 있다. 외교 인력이라는 것이 공장의 생산품 같이 제조해 금방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니다. 자연 자원은 캐내서 쓰면 되지만 인력 자원은 훈련을 시켜 제대로 기능하게 하려면 시간도 걸리고 전략도 필요하기 때문에 단시간 내에 그런 인프라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앞을 내다보는 혜안을 가지고 조직 정비를 지금부터 해야 한다. 현 상황을 잘못 관리해 북한에게 포격을 당해 경제적인 손실을 입는 것보다는, 지금 돈 들여 미리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하는 게 훨씬 싸게 먹히는 거다. 지금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위기의 성격에 대해서 보다 냉철하게 분석해야 하고, 여기에 현명한 대처를 해야 된다는 거다. 미래를 위해 조직을 정비하고 외교 전략을 새롭게 짜고, 그러기 위해서는 인력 투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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