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초반의 그 스타트업 CEO는 발표 중에 울컥하는 심정을 억누르기 어려워하고 있었다. 국회에서 열리는 조찬스터디 모임에서 만난 그는 2015년도에 창업해서 4년여 동안 식약처와 싸우면서 지치고 화난 심정을 발표하는 중에 날것으로 드러났다.

그 젊은 CEO는 자신이 어떻게 사업을 가로막는 규제를 뚫었고, 그럼에도 왜 사업이 기울고 있는지를 애써 담담하게 전달하고 있었다. 조찬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그가 감내했을 울분과 화를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식약처는 이 회사 제품에 대해 ‘의료기기인 것 같으니 의료기기 허가를 받으라’고 하면서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판매허가를 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회사는 신생아의 돌연사를 방지할 수 있는 제품을 4년이 지나도록 국내시장에서 판매 할 수 없었다.

그 덕에 미국이나 유럽 마케팅에 집중했고, 아마존과 같은 국외쇼핑몰에서 소량의 주문을 받아 판매해 왔지만 불투명한 사업전망으로 초기 투자유치에도 실패했다. 얼마 전에야 겨우 ‘의료기기가 아님’이라는 답변을 받았지만 벤처투자업계의 관심은 떠난 지 오래다.

소규모 자본과 인력으로 아이디어와 기술력만 믿고 시작하는 스타트업 종사자들은 정부의 규제가 사업을 하면서 마주치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말한다. 규제는 뻔히 보이는데 피할 방법이 없다.

정공법으로 규제심사를 받다보면 성장의 기회는 날아가고 판매도 투자도 꽁꽁 묶여 자연사 할 처지가 되어 버린다. 규제는 대통령이 내리 눌러도, 집권여당이 규제철폐를 몰아쳐도 난공불락인 경우가 많다. 규제가 필연적으로 공무원의 권한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규제를 줄이는 것을 자기 권한을 떼어 내는 것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최근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K’사태를 보면 규제도 대기업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무릎 골관절염 치료제인 ‘인보사-K’에 종양을 일으킬 수 있는 성분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식약처에 판매 허가신청을 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식약처는 1차 중앙약사심의회에서는 부정적인 결론을 내 놓고도 두 달 만에 심사위원들을 바꿔 2차 회의를 열고 허가 의견을 냈다. 코오롱이 식약처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알 수 없지만 자본 앞에 약한 모습을 노출한 것이다. 

이렇듯 규제는 평등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식약처는 국민의 건강을 중대하게 위협한 ‘인보사-k’는 쉽게 의견을 번복하면서까지 허가를 내줬지만, 스타트업 제품에 대해서는 의료기기인 줄 알았으나 의료기기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는데 4년이 걸렸다.

이런 규제의 불평등은 자본의 크기에 비례하는 로비능력의 차이에서 갈라진다. 스타트업들이 규제에 막혀 쩔쩔매는 동안 대기업들은 규제의 틈새에서 사업기회를 독점하고,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범법을 저지른다.

규제는 자본과 권력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조찬모임에서 울컥했던 그 스타트업 CEO는 수  많은 서류를 직접 준비하다 결국 변리사를 찾아갔다고 한다. 변리사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해 궁리를 하다 결국 국회까지 이 문제를 들고 왔다. 그리고 두 달 만에 문제가 해결됐다.

그는 “상황이 변한 게 하나도 없는데 국회를 통해 문의하니까 바로 담당공무원이 연락이 오더라”며 허탈하게 웃었다. 코오롱이 자본의 힘을 앞세워 식약처의 규제를 뚫었다면, 국회는 공무원에 대해 가지는 우월적 지위로 규제를 회피할 답변을 이끌어 낸 것이다.

그 스타트업의 CEO가 자본과 권력 앞에 굴종하는 규제의 속성을 알았다면, 진즉에 국회로 이 문제를 들고 왔을 것이다. 결국 승리자는 규제 철폐가 말로만 무성한 환경에서 규제를 회피할 편법을 찾아내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규제조차 평등하지 않은 빌어먹을 세상이다. <이무진 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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