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되는 국가직 전환에 애타는 소방관들

[일요서울 | 이도영 기자] ‘소방관 국가직 전환’ 관련 법안들이 또 다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법안 심사만 논의되고 처리는 국회 정상화 이후로 미뤄졌다. 행안위 법안소위 위원으로 있는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과 윤재옥 자유한국당 의원은 전직 경찰 출신이다. 여야가 극한으로 대치 중인 상태에서 민주당이 법안 통과를 위한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서는 권 의원이 필요하고 법안 논의 시에도 윤 의원 설득이 중요해 결국 소방관 국가직 전환은 두 전직 경찰 손에 달릴 전망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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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 남은 법안에 윤재옥 “심사 다시 할 것”… 원점으로 돌아가나

소방관 국가직 전환 관련 법안은 지난 2016년 이재정 민주당 의원이 1호 법안으로 발의했다. 이후 본회의에 오르지 못한 채 행안위 법안소위에 계류 중이다. 지난 4월에 발생한 강원 산불을 계기로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에 대해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졌고 국민 10명 중 8명이 찬성한다는 여론조사까지 나왔다.

이 의원은 일요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지방자치 단체별로 재정자립도가 다르다 보니 예산의 차이가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자립도에 따라 소방 서비스의 편재화가 일어나는 사태는 소방관 국가직 전환을 통해 국가가 총체적으로 자원을 투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해결할 수 있다”고 소방관 국가직 전환 관련 법안을 발의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 법안은 ‘소방관 눈물 닦아주기 법’이라고도 불린다.

권은희, 논의 불참하다 돌연 ‘원안’ 내세워

지난달 14일 행안위 법안소위가 소방 공무원 국가직 전환 관련 법안 등의 처리를 위한 회의를 열었지만 끝내 개회되지 않았다. 한국당 의원들과 함께 권 의원이 불참했다.

권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홍익표 소위원장이 오늘 안건 없이 행안위 법안소위를 직권으로 개의하겠다고 한다. 저는 오늘 행안위 법안소위에서 완전한 소방의 국가직화를 위한 소방4법을 일괄해 심의·의결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권 의원이 말한 내용은 이 의원이 법안 발의 당시 냈던 원안이다.

홍익표 소위원장은 “행안위 법안이 워낙 많아 매월 둘째, 넷째 화요일에 법안소위를 열자고 제안한 분이 권은희 의원”이라고 반박했다.

권 의원의 해당 페이스북 글에 자신을 소방관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댓글을 통해 “권 의원이 하고자 하는 방법대로 추진했으나 관련 기관의 의견이 제각기 달라 현재의 안이 마련됐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 이제 와서 원안대로 모두 통과돼야 한다는 건 그저 발목 잡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권 의원이 주장한 ‘원안’을 냈던 이 의원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권 의원을 향해 “이제서야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며 소방관 국가직을 위한 한 발짝 나아가는 것조차 가로막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라며 “권 의원의 주장은 법안 발의자인 나도 잘 모르겠다. 그 주장의 목표가 진정 소방관 국가직화를 위한 것이라면 토론하자. 그런데 정작 법안소위 현장에서는 볼 수 없다”고 전했다.

홍 소위원장은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권 의원이) 회의 전날에 나에게 자기가 제출한 공무원, 특히 경찰 공무원 직장협의회 법안을 다뤄 달라고 요구해서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는 경찰 관련 자신이 발의한 법안 심사를 위해 소방관 국가직 전환 관련 법안을 협상카드로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행안위 법안소위는 지난달 28일 소방관 국가직 전환 관련 법안들에 대한 심사를 사실상 마쳤다. 그동안 법안에 대해 권 의원의 이견이 있었지만 민주당이 권 의원의 주장을 부칙으로 넣기로 합의했다.

최인창 한국소방단체총연합회 총재는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권 의원의 법안도 맞다. 하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전부 해주겠다고 약속한 소방청 독립도 42년이 걸렸다”며 “권 의원이 말한 예산·인사·감사 전체를 가지고 다시 논의한다는 것은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의원이 발의한 신분만이라도 국가직으로 하고 그 다음에 어떤 당에서든지 개정안·수정안을 발의해 통과시키면 된다”라며 “그런데 새롭게 한꺼번에 하자는 것은 안 해주겠단 얘기다. 보여주기식이라고 생각한다”고 권 의원을 비판했다.

최 총재는 권 의원이 페이스북에 게시한 소방관 국가직 전환 관련 글에 “권 의원 말대로 인사, 예산 등 전체를 포함해 다시 논의한다면 기재부와 행안부, 지자체 등의 반발로 막히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가. 시간만 축내는 반대 아닌 반대가 아닌가”라고 댓글을 여러 차례 달았지만 권 의원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윤재옥 “한국당 불출석 동의 안 해”

홍 소위원장은 이날 법안을 의결하지 않았다. 권 의원이 참석해 법안 의결을 위한 정족수는 채웠지만 한국당이 국회 마비를 들어 법안소위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당 없이 법안 의결까지 한다면 반발이 더 거셀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홍 소위원장은 법안소위 종료 후 기자들과 만나 “이채익 한국당 간사가 전화로 ‘이 법은 우리들도 크게 이견이 없는 법안이기 때문에 국회가 정상화되면 이날 논의된 법안들을 합의해 처리해주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윤재옥 한국당 의원은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이채익 간사가 법안을 통과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그럴 용의가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우리 당이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안심사를 다시 해야 한다. 국회가 정상화 되면 법안소위에서 심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법안 심사를 다시 한다면 소방관 국가직 전환은 늦춰질 전망이다.

윤 의원은 이 의원이 ‘국회는 비정상화한 적이 없다. 한국당이 불출석한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일정과 안건을 통보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 의원은 이전에도 소방관 국가직 전환 법안 통과를 막은 전력이 있다. 이 의원은 일요서울과의 인터뷰 중 지난해 11월 28일 행안위 법안소위에 소방관 국가직 전환 법안이 상정됐지만 통과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윤재옥 수석부대표가 홍문표 한국당 의원에게 전화를 했는데 홍 의원이 회의 현장에서 홍익표 소위원장에게 통화를 넘겨줬다”며 “윤 부대표는 홍 소위원장에게 이유는 말하지 않은 채 오늘 법안 통과 못 시킨다고 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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