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투자 권유" 공정위 "규제 강화"...엇갈린 정책에 '울상'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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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기업들이 경영 이념 잡기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전반기 기업 경영 수행과정에서 미비했던 일들을 하반기에 만회하기 위한 전략 짜기 회의가 내부에서 이어지는 상황에서 정부 부처에서 내놓은 정책 중 일부가 다른 정부 부처와 상충된 것들이 많다.

자칫 한쪽 부처에 치우친 전략을 짜다 보면 다른 부처에 미운 털이 박힐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기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기획부에서 정부 부처의 어느 장단에 맞춰 정책 전략을 짜야 할지를 고민하는 사이 다른 부서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부처별 특성때문이라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피곤함 역력
  재계 아우성에도 '재벌개혁' 강조...정부와 재계의 동상이몽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10조 원 규모의 민간 및 공공부문 투자 보강 방안, 투자 활성화, 제조업 및 서비스산업 혁신전략 등 경제현안에 대해 보고했다.

당시 보고 내용에는 기획재정부가 관계부처와 협의ㆍ조율 중인 복합 테마파크 등 3단계 기업투자 프로젝트, 공공부문의 추가 투자방안 등이 포함됐다. 아울러 서비스 및 제조업 등 산업혁신전략에 대한 보고도 있었다.

10조 원 투자보강책 보고

홍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우리나라의 서비스산업이 새로운 일자리와 부가가치의 원천이 될 수 있도록 종합적인 발전 전략을 조속히 마련하고, 제조업 르네상스의 경우에는 우리 경제의 성장 엔진인 제조업의 활력을 되살릴 수 있도록 이른 시일 내에 전략과 방향을 제시하겠다고 보고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에 대해 투자 활성화, 산업혁신 전략 등을 포함해 최근의 대내외 경제 상황들을 면밀히 검토해 부총리를 중심으로 관계부처들이 준비하고 있는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마련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투자 확대를 독려하고, 경영 애로가 무엇인지 를 경청하던 1기 경제팀과 마찬가지로 대기업의 '적극적 역할'을 당부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실제로도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30일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참석했다.

홍남기 부총리 또한 비슷한 시간 열린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기업투자 활성화 차원에서 5~6월 중 대기업들을 집중적으로 방문해 정부의 정책방향을 설명할 예정이다"라며 "우리 경제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이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동안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을 중심으로 현장방문을 했는데 지난달부터는 대기업 방문도 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덧붙였다. 이에 화답하듯 재계도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정부의 최근 행보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3대 중점 육성 산업. 정부는 지난 4월 22일 비메모리 반도체·미래형 자동차·바이오 등 3대 분야를 ‘중점 육성 산업’으로 정하고 범정부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정책 지원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반도체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을 중심으로 비메모리반도체 분야 강화 기치를 내걸었다. 현대차는 수소전기차를 내세우며 미래형 자동차 업체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바이오의 경우, 삼성과 SK 외에 많은 대기업들에서 관심을 갖는 분야다.

삼성은 지난 4월 24일 비메모리반도체 분야 대규모 투자 계획을 주요 내용으로 한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한 데 이어 30일에는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관련 정책과 목표를 담은 ‘시스템반도체 비전과 전략’을 발표하고 5대 중점대책을 내놓는  것으로 화답했다.

책임경영 꿈도 못 꿔  

이처럼 재계는 정부 훈풍에 신바람을 예상하며 노력했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여전히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재벌개혁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고 반기업 정부 정책에 발목 잡힌 사례도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공정위가 국회에 제출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대기업 규제 강화 사안이 여럿 포함돼 있다. 일감 몰아주기 대상 확대, 대기업 공익법인과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지주회사 의무 보유 계열사 지분율 요건 상향 등이 기업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게다가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최근 '흔들림 없는 재벌개혁'을 강조하면서 기업이 느끼는 체감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또한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친노 정책이 잇따르면서 경영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반기업 정책은 반기업 정서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일부 기업인들의 일탈이 더해지면서 전체 기업인을 죄인 취급하는 풍조가 만연하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최근 경제 우선 정책으로 친기업 행보를 보이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보다 진정성 있는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재계 관계자는 “이런 환경에서 경영을 하느니 차라리 폐업을 하거나 외국으로 회사를 옮기는 게 낫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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