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자비 들여 철거?” “갈 곳 잃었다” 불만 ‘최고조’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지난달 21일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흡연을 더 강력하게 억제하는 ‘금연 종합 대책’을 내놨다. ‘실내 흡연실’을 완전히 폐쇄하고, ‘담배 광고’를 최대한 억제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복지부는 이를 통해 “38%대인 성인 남성 흡연율을 늦어도 2025년까지는 20%대로 떨어뜨리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여기서 자영업자와 흡연자들이 폭발한 ‘대목’이 있다. 바로 ‘실내 흡연실 전면 폐쇄’다. 자영업자들은 수백에서 수천만 원을 들여 실내 흡연실을 설치했는데 다시 거금을 들여 철거해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흡연자들은 “갈 곳을 잃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2021년 연면적 500㎡ 이상→2023년 모든 건축물→2025년 전면 폐쇄
‘간접흡연 차단’ 때문이라는 데···“길거리 흡연자 늘어날 것” 우려
복지부는 지난달 21일 국민건강증진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흡연을 조장하는 환경 근절을 위한 금연종합대책’을 확정했다.
2023년까지 모든 건축물 실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2025년에는 실내 흡연실을 전면 폐쇄하는 대신,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1만여 곳을 ‘실외 흡연 가능 구역’으로 분리 지정키로 했다.
복지부는 이 같은 내용이 간접흡연 차단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한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연면적 1000㎡ 이상 건축물과 일부 공중이용시설만 지정하던 실내 금연구역을 2021년 연면적 500㎡ 이상, 2023년 모든 건축물 등으로 확대하고 2025년에는 모든 실내 흡연실을 폐쇄한다.
또 실내 금연 확대로 인한 무분별한 길거리 흡연 방지 차원에서 보행자와 분리된 장소를 실외 흡연 가능구역으로 분리 지정한다고 밝혔다. 흡연부스도 실내로 간주하는 FCTC 권고기준에 맞춰 흡연부스 등이 있는 지역 자체를 흡연구역으로 지정해 간접흡연을 막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자영업자들과 흡연자들의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도대체 영업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서울시에 위치한 한 당구장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또다시 바뀐 정부 정책을 두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A씨는 지난 2012년 정부의 새로운 금연 정책이 시행된 후 500만 원을 들여 실내 흡연실을 설치했다. 당시 손님들의 반발이 거셌다. 일반‧단골손님, 취객들 중 흡연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당구를 치면서 담배를 못 피우는 게 말이나 되느냐’고 항의했다고 한다. 심지어 실내 흡연실 설치로 당구대까지 줄어 손님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잇따랐다. 그럼에도 A씨는 ‘어쩔 수 없다. 이해 좀 해 달라’고 손님들을 달래며 당구장을 운영해왔다.
A씨는 “내 돈을 들여 실내 흡연실을 설치하고 손님들의 반발까지 견뎌가며 어렵게 운영해 왔는데 이제 와서 철거하라는 것은 자영업자들을 ‘천민’으로 보는 행태”라며 “이런 게 더할 나위 없는 ‘탁상 행정’이다. 도대체 영업을 어떻게 하라는 얘기인가”라고 토로했다.
다른 지역에 PC방을 운영하고 있는 B씨도 입장은 마찬가지였다. 벌써부터 단골손님들의 문의가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B씨는 “어차피 이어질 정책이었기에 긍정적인 생각으로 거금을 들여 실내 흡연실을 설치했는데 이제 와서 철거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또 자비를 들여 철거해야 한다. 정부 관계자들이 정말 현장에 나와 봤는지, 시민들의 생각을 들어봤는지 의심스럽다”면서 “늦은 시간이 되면 취객들이 많이 방문한다. 현재 있는 실내 흡연실도 못 찾아서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많은데 폐쇄한다면 얼마나 더 난리를 치겠는가. 실외 흡연구역을 만들었다고 해도 컴퓨터를 하다가 사람들이 드문 장소까지 다녀오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간접흡연을 막기 위한 정책이라고 했는데 이 같은 정책이 시행되면 흡연자들은 복도, 매장 입구, 화장실 등에서 담배를 피울 것이 분명하다. 자영업자, 공무원, 흡연자, 비흡연자까지 힘들어질 정책을 왜 발표했는지 모르겠다”면서 “흡연부스 철거로 인해 매출이 하락될 경우 정부가 책임질 것인가. 실내 흡연실 설치‧폐쇄도 자영업자한테 돌리는 정부가 무엇을 도와주겠는가. 이런 게 독재지 다른 것이 독재가 아니다”라고 힐난했다.
설치비용 수천만 원까지
매출↓, 철거비용도 떠안아
실내 흡연실 한 개 조성비용은 보통 100만 원대이다. 환풍 시설을 늘리거나 인테리어를 꾸밀 경우 수천만 원에 육박할 수 있다. 또 실내 흡연실 공간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있던 호프집 테이블, 당구장 당구대, PC방 좌석 등을 불가피하게 줄일 경우 매출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거금의 철거비용까지 떠안게 된 실정이다.
과연 자영업자들만의 불만일까. 흡연자들도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직장인 C씨는 “(정부가) 뭔가 할 때마다 모순투성이다. 뒤를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말도 안 되게 정책을 바꿀 거면 (실내 흡연실)을 왜 만들라고 난리친 것인가. 미래를 생각해 보면 흡연자, 비흡연자 둘 다 싫어할 수밖에 정책”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D씨는 “정부가 실내 흡연실을 규제하는 이유로 ‘미성년자‧유아‧임산부‧비흡연자 등에게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나. 그럼 흡연실을 규제할 게 아니라 담배를 ‘기호식품’이 아닌 ‘위해식품’으로 먼저 규정해야 할 것”이라며 “악영향을 끼치는 물품(담배)인데 세금 붙여서 비싸게 판다는 게 앞뒤가 안 맞는 행동이지 않은가. 담배값 인상 등으로 서민 부담만 늘어났고 흡연율 감소에 과연 효과가 있었을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직장인 E씨는 “현재도 흡연자들은 인간 취급을 못 받으면서 살고 있다. 실외 흡연 부스‧구역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안내도 없지만 금연구역은 어딜 가나 있다. 내 돈(세금)내면서 엄청난 혜택을 누리고 싶다는 것이 아니다. 비흡연자처럼 흡연자도 평범하게 살고 싶다”면서 “지금 실내 흡연실로 인해 그나마 실외 담배꽁초가 줄고 실내에도 비흡연자‧흡연자가 공존하고 있지 않은가. 이걸 폐쇄한다는 것은 흡연자를 외딴섬에 내모는 것이나 다름없다. 비흡연자가 싫어하는 길거리 흡연도 덩달아 늘 것이 뻔하다”고 밝혔다.
실내 흡연실 폐쇄는 지방자치단체(지자체)에게도 부담이다. 실외로 내몰리는 흡연자들이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무원들이 모든 금연구역을 단속하기엔 인력이 부족하다.
현재 복지부는 국민들과 소통하겠다는 방침이고 정책의 정식 시행까지 기한이 남았지만 앞을 예상하고 있는 자영업자‧흡연자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실효성 있는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