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기 막말 규탄’ ‘군 통수권자 권위 지켜야’ 문 대통령 보호 나선 보수단체

[사진=황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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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 | 황기현 기자] 지난달 31일 자유한국당 소속 정용기 의원은 자유한국당 제4차 국회의원 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서 북한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무협상 결렬의 책임을 지워 김혁철 특별대표 등을 숙청했다는 보도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정 의원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도자로서 문재인 대통령보다 더 낫다”고 발언했다. 정 의원의 이 발언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일제히 발언을 비판하며 정 의원의 징계와 처벌을 요구했다. 그런데 정 의원 비판 대열에 의외의 단체가 합류했다. 대표적인 보수 성향 관변단체로 알려진 ‘한국자유총연맹(자총)’이 그 주인공이다.

북한 비판 쏟아내던 향군과 자총의 변신 이유는?
“안보에 도움 된다고 생각하면 지지할 뿐”

자총은 3일 발표한 성명에서 “충격을 금할 수 없다”며 정 의원의 발언을 규탄했다. 자총은 “정용기 의원이 일당 독재체제인 북한 지도자와 우리 대통령을 비교한 발언은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과 가치를 부정하고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대미 외교를 담당한 북한 주요 인사들이 처형되었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는 극도의 반인권적인 만행으로서 국제적으로 지탄받아야 할 범죄행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그런데 어떻게 자유민주주의 및 삼권분립을 정체성으로 하는 대한민국과 일인독재체제인 북한을 비교할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또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 가치는 자유민주주의”라고 지적하면서 “한국자유총연맹은 어느 정파의 노선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 및 자유와 관용의 미덕을 담은 대한민국 헌법의 숭고한 가치가 바로 우리의 노선임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총은 “정 의원은 자유민주주의와 독재체제에 대하여 분명한 입장을 밝혀 줄 것”과 “국민께 공개 사과하고 스스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질 것”을 요구했다.

또 다른 보수 성향 관변단체 대한민국 재향군인회(향군) 역시 같은 날 ‘최근 안보상황과 관련한 향군의 입장’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는 정 의원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부정하고 북한 위협에 일사불란하게 대응해야 할 대통령의 군 통수체계가 도전 받으며 대한민국의 최후 보루인 국군의 위상이 심각하게 손상되는데 대해 국가안보 제2보루인 향군이 이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거나 “일부 친북단체들이 김정은을 찬양하는 등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국내 최대의 보수 단체 두 곳이 사실상 모두 문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북한 비판 입장 내놓던 단체들의 변신

앞서 말했듯 자총과 향군은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보수단체다. 한국반공연맹에 뿌리를 두고 있는 자총은 그동안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  왔다. 2017년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도 “북한 정권을 ‘선의의 대화 상대’로 상정한 모든 유화정책은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 4월에는 판문점 선언을 환영하는 성명서를 채택하고 “한반도의 획기적 번영과 민족의 역사적 숙원을 이루기 위한 거대한 발걸음”이라고 극찬했다. 불과 7개월여 사이에 태도가 사뭇 달라진 것이다.


1952년 2월 1일 창설된 후 종북 세력 척결을 목적으로 한 강연회 및 세미나, 집회를 개최하는 등 안보 활동을 목적으로 운영되던 향군 역시 마찬가지다. 향군은 2017년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비핵화 정책과는 다르게 ‘전술핵 즉각 재배치’와 ‘자체적인 핵무장 공론화’를 소리 높여 외쳤다. 그러나 향군도 7개월 후인 정상회담 당일 문 대통령을 환송하는 ‘향군 한마음 대회’ 행사를 개최하며 변신했다. 당시 행사는 청와대부터 광화문역에 이르는 1.2㎞ 구간에서 피켓과 태극기를 흔드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보수단체들이 호위무사 역할 하는 이유는?

자총은 지난해 4월 김경재 전 총재가 퇴임하고 박종환 신임 총재가 취임한 뒤 조금씩 변화의 바람을 겪었다. 자총이 판문점 선언 환영 성명서를 채택한 것도 이 시기다. 충북지방경찰청장 출신 박 총재는 문 대통령과 경희대 72학번 동기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박 총재가 동기를 챙겨주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자총은 당시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총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며 “이번 성명에도 ‘북한의 변화를 신중히 지켜봐야 한다’고 명시했다”고 주장했다.


향군의 경우에는 올해 초 청와대와의 연루설로 홍역을 앓은 바 있다. 업무방해와 배임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김진호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을 비롯한 수뇌부가 백원우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과 회동했고, 이후 검찰이 김 회장을 무혐의 처리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당시 사건을 보도했던 ‘시사저널’은 향군이 회동 직전, 기존의 입장을 바꿔 남북정상회담을 지지하는 행사를 열었고 이에 따라 청와대가 향군의 지지를 약속 받는 대신 김 회장의 비리를 무마해 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향군은 이에 대해 비핵화를 위한 남북정상회담의 성공 기원 차원에서 독자적으로 계획해 추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5월 청와대 인사들과의 회동 자리에서 민원이 담긴 서류를 건넸다는 의혹 역시 향군을 음해하려는 모함이라고 주장했다. 김진호 향군 회장이 정권에 따라 지지 성향을 바꿔 왔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정치인이 아닌 자연인으로 선호하는 대통령 후보를 지지한 것”이라며 “정치권과 연계된 바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향군과 자총이 매년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받는 상당한 액수의 지원금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눈치를 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자총과 향군은 매년 100억 원이 넘는 돈을 국고와 지자체에서 지원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총은 행정안전부를, 향군은 국가보훈처를 각각 주무관청으로 두고 있다.

향군 “우리는 안보단체”

다만 향군의 경우 올해 들어 다시 정부와 날을 세우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향군은 올해 3월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보훈혁신위)가 북한 정권 수립에 공을 세운 김원봉을 독립유공자로 만들려 하자 “공론화 과정 없이 밀실에서 결정된 정책에 반대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김 회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와) 코드를 맞춘다는 소리 하지 마라”라며 “(향군은) 안보단체니 안보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지지하고, 그렇지 않으면 반대할 뿐”이라고 ‘친정부 성향’이라는 비판에 대해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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