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0일 전격적으로 국민에게 자신에 대한 ‘재신임’을 묻겠다고 선언하였다. 만약 재신임 투표에서 노 대통령이 불신임된다면, 그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그 경우 노대통령은 그의 형 건평씨 말대로 낙향해 농사나 함께 짓게 될지도 모른다. 건평씨는 노대통령의 재신임 선언 직후 동생과 통화가 되었더라면, “잘한거다. 촌에 들어와서 농사나 같이 짓자고 말했을 것”이라고 밝혔다.그러나 노 대통령은 촌에 들어가 농사나 짓자고 재신임안을 구태여 들고 나온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재신임안 제기의 진짜 동기는 벼랑끝으로 내몰린 자신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불만을 벼랑끝 전술로 정면 돌파하자는 데 있다. 노 대통령은 불과 11일 전 까지만 해도 한 공식 모임에서 자신이 만만하게 물러설 수는 없다고 역설했다. “나는 소신 하나로 왔다. 정치 10단, 정치 9단이라는 사람들에게도 꺾이지 않고 대통령까지 왔다. 그렇게 만만하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토로했던 것이다. 바로 10여일 전까지만 해도 만만하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장담한 그가 대통령을 물러나고자 재신임안을 내놓을 턱은 없다. 재신임을 받아 자신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잠재워 청와대에 머물기 위한 승부수이다. 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취임 직후만 해도 90~80% 대로 올랐던 것이 계속 하락해 이제는 20~10% 대로 곤두박질 쳤다. 그의 재신임 제기는 그가 털어놓은 바와 같이 “언론환경도 나쁘고 국회환경도 나쁘고 지역 민심의 환경도 나쁘다”는 고립무원한 정치환경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정면 도박으로 보인다.그러나 노 대통령은 일단 재신임의 벼랑끝 승부수를 던진 이상 국가의 최고 지도자로서 국가의 안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재신임 과정에서 야기될 국가적 혼돈과 그 후의 방향이 그것이다.사실상 노대통령의 권력은 재신임 선언 순간 레임덕 상태로 들어갔다. 국정의 혼란은 불가피해졌다. 그에 대한 대책은 분명하다. 재신임 결정의 날을 가능한한 앞당기는 길밖에 없다. 노 대통령은 “늦어도 내년 총선 전후까지는 재신임을 받겠다”고 했다. 하지만 재신임은 내년 4월까지 미룰 수 없다. 금년 내라도 앞당겨 실시하는 것이 국정혼란과 국민적 갈등 그리고 소모적 정쟁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한편 노대통령의 재신임 선언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는데 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재신임에 붙이게 된 주된 배경으로서 최도술 전 청와대총무비서관 비리혐의 노정을 계기로 들었다. 아울러 “그동안 축적된 여러 국민들 불신”도 꼽았다.그동안 축적된 국민들의 불만과 불신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그의 취임과 함께 쌓여온 것들이다. 그것들 때문에 하필 지금 재신임을 공표해야 할 문제는 아니다. 또한 최씨의 비리에 대한 노 대통령의 대응은 사법절차가 끝난 다음에 그 결과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순서이다. 그 때 가서 그 문제에 대해서는 노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하며 주변인물들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약속하면 될 일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서둘러 재신임을 발표해서 전국민들의 시선을 그 쪽으로 끌고 가 묶어놓았다. 필시 연유가 있는 것 같다. 국민들의 분노를 폭발시킨 건국이후 최고의 거물간첩 송두율 문제와 최도술 비리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야당의 정치적 공세를 흐리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추측케 된다. 이 두 사건은 진전의 향방에 따라서는 노무현 정권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데서 그렇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자신의 행정부에 침투한 동독 스파이 문제로 사임했다는 데서 더욱 그렇다.끝으로 노 대통령은 설사 국민투표를 통해 재신임을 받는다고 해도, 지난날과 같이 코드에 맞춘 인사와 정책을 버리지 못하고 신뢰하기 어려운 말을 계속 내뱉는다면, 또 다시 자신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불안은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재신임 투표를 열번 해봐야 소용 없다. 그럴바에야 건평씨의 말대로 촌에 가서 농사나 짓는 것이 노 대통령이나 국가를 위해 서로 좋은 일이 아닌가 싶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