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에 참으로 이상한 모럴이 생겨나고 있다. 다름 아니라 뭔가 말 실수를 했거나 말 꼬리를 잡혀서 파장이 일어나고 입장 거북해 지기라도 하면 애꿎은 언론에 화살을 돌려 물고 늘어지는 경향이 짙어졌다. 언론이 자신을 공격할 목적으로 왜곡보도를 했다면서 논란의 중심에서 빠져나오려는 일부 지도층 인사들의 치고 빠지는 재주가 때로 혀를 내두를 정도다. 지난주에만 해도 국내 노사 현안문제가 더없이 심각한 터에 노동부장관이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노사의 사회공헌 기금문제는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 고 말해 많은 언론이 관심을 나타냈었다. 그러나 해당 장관은 발언 닷새 후인 지난달 25일 여성경영자 총협회 강연에서 ‘사회공헌기금 문제는 노사 교섭 대상이 아니다’라고 못 박고 이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옮기자고 한 것은 노조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재계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 이었는데 재계와 일부 언론이 자신을 공격한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간담회에 참석했던 출입기자단의 해명 요구가 있었고 어정쩡하게 문제가 가라앉긴 했다. 물론 전에도 이런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 그 빈도가 강해지는 양상이 예전의 간헐적인 대언론 마찰과는 비교 안 되는 뭔가가 느껴지는 것 같아 영 개운치가 않다. 처세의 달인이었나
필자가 일선 기자시절 매우 난감한 상황을 맞아 기사 작성을 고민했던 적이 있다. 당시 말 잘하기로 정평 나있던 모 실세 정치인의 지방 나들이를 동행 취재하면서 지역 단체들의 초청강연 내용을 리포터 할 때였다. 그런데 이 양반 강연내용이 장소에 따라 그때 그때 달라지는 논리가 기가 막혔다. 강연 대상이 기업인을 상대로 할 때는 아주 단호한 어조로 ‘노조주장을 다 들어 주다가는 남아날 기업이 없다’ 며 노동자들의 강경투쟁 노선이 미치는 사회적 해악이 크다고 해놓고는 대학생 근로자들을 향해서는 ‘노동계급의 권익은 곧 사회 계층의 평등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노조 활동이 보다 조직화돼야할 때’ 라고 열변을 토하는 모습에서 필자는 실소하기 보다는 한국정치의 비애를 느껴야 했었다. 이는 이번 6·5재보선 과정에서 유세지원차 내려갔던 모 신진 정치지도자가 부산에서는 자신이 부산사람, 대구에선 대구사람, 제주에 가서는 또 제주사람이라고 강변한 것과 맥락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말했듯 정치인이 탤런트가 돼야 하고 그래서 가끔씩 코믹연기도 해야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또 정치가 생물이기 때문에 그처럼 처신이 변화무쌍한 것인지는 몰라도 정치활동이 단물을 쫓는 꿀벌의 습생일 수가 없을 뿐 더러 대중적 인기에 운명을 건 배우의 연기활동과 같을 수도 없는 것이다. 언론 상대 소송이 또 하나 인기작전
그런 이치에도 불구하고 시절이 한참 지난 아직까지 인기에 영합하려들고 단물을 탐하는 정치행태가 잔존한대서야 이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집권층을 포함한 새 정치권에서 나오는 소리들이 사안이 민감할수록 접근방식이 정직하지를 못해 보이고 그러자니 논리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꾸준히 언론을 통해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언론의 보도태도가 고울 리가 없을 터이다. 걸핏하면 언론을 상대로 명예훼손, 왜곡보도를 주장하며 막대한 손배소송을 내는 것도 궁극의 목적은 못마땅한 언론의 기를 꺾어 예민한 부분에서 언론의 칼을 무디게 하려는 것일 게다. 또 하나는 언론과의 소송 전을 벌임으로써 일부 시민단체의 지대한 관심을 끌고 용기 있는 행동으로 평가 받을 수 있다는 속내도 없지 않을 것 같다. 열린사회에서 어떤 경우에도 언론의 오보를 따지고 횡포에 맞서는 저항의식이 위축될 수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주목 되는 것은 그 같은 시대적 욕구와 흐름을 기화로 언론 불신을 조장하려드는 위정세력 일각의 신기회주의적 발상이 더욱 우리 사회를 혼탁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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