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7대 국회가 개원됐다. 노 대통령은 이번 17대 국회를 4·19혁명후의 5대 국회, 또 6월항쟁후의 13대 국회와 더불어 ‘국민의 국회’라고 할 수 있다며 그 가운데서도 17대 국회는 민중 봉기나 헌정 중단사태 없이 모범적인 선거와 활발한 시민참여를 통해 건설해냈다며 이것이야말로 시민혁명이라고 이름 붙여도 손색없다고 더욱 의미를 부여했다. 그래서 17대 국회를 ‘국민의 국회’ ‘시민의 국회’로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왜 안그렇겠는가. 노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을 탄핵했던 세력이 역풍에 무너지고 열린우리당이 다수 의석으로 등장한 17대 국회에 대단한 역사적 우월성을 부여하고 싶을 것이고 또 인정받고 싶을 것이다. 초선의원이 절대다수인 새 정치권이 과거정치를 부인하고 사회개혁을 마치 자신들의 재야시절 방학 과제였기나 한 것처럼 중구난방형으로 쏟아내고 있는 것도 그 같은 우월성과 무관치 않을 듯하다. 사람이 우월감을 갖게 되는 까닭이 크게 나뉘어 두 가지 유형일 것이다. 그 하나는 일부 귀족층의 태생적인 우월감일 테고 다른 하나는 모진 고난을 겪으면서도 불굴의 투지로 자신을 불태워 드디어 뜻을 이룬 사람 특유의 우월성을 배제할 수 없다.여론집약은 상호작용에 의한 것
우월감에 차있고 자만이 넘치다보면 오만해져서 초심을 잃고 독불장군이 돼 버릴 수 있다. 매사에 나는 정의이고 상대는 불의로 척결돼야 한다는 분열적 사고가 일어나고 그것이 곧 불의를 보고 못 참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정신으로 스스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독선이다. 이런 독선적 시각으로 볼 때 비판세력은 모두 적이 될 수밖에 없다. 부정적 여론이 강해지면 언론이 부추긴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 역시 예나 지금이나 위정자들의 잘난 우월감에서 사물을 보려드는 자세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고 있는 맥락일 것이다. 지금 국민가계가 진 빚이 사상처음 450조원을 넘기고 가구당 빚도 3,000만원에 육박하는 경제위기에 대한 인식이 언론의 선동 탓이겠는가. 여론의 흐름이 집약되는 것은 일부 언론이 꾀해서 될 일이 아니고 국민의식을 바탕으로 한 정치권과 언론의 상호 작용에 의한 것이다.집권세력 모두가 조금만 ‘뜻을 펴기 위해 몸을 낮춰야 했던’ 초심으로 돌아가면 그리고 조금만 ‘자신에게 엄격해지면’ 아집을 털고 시야를 넓힐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야 세상이 제대로 보일 것이고 사물을 옳게 파악해야 적절한 처방도 나올 것이다.수구세력의 발호를 차단키 위해
지금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수도권 이전문제만 해도 그렇다. 그동안 행정수도 이전계획이 사실상의 ‘천도’라는 지적이 있을 때마다 대통령을 비롯한 측근관계자들은 수도권 인구밀집 현상을 피하기 위해 수도기능의 극히 일부를 옮기자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당초 수도 이전의 필요성을 역설한 내용에는 지배세력 교체를 위해서라는 대목이 비중 있게 들어있다. 말하자면 기득권 수구세력이 수백년 동안 둥지를 틀고 앉아있는 서울을 벗어나 새로운 터전에서 새 세력이 국가를 지배할 토대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흡사 후고구려(태봉국)의 궁예왕이 백성들 정서와 상관없이 수구 토호세력의 발호를 차단키 위해 기를 쓰고 도읍을 철원으로 옮긴 역사가 턱없이 이 시대에 재현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국민이 그토록 통합정치, 상생정치를 주문한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이제 국민계층이 서로 등을 지고 반목하는 것을 더 두고 볼 수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모두 합심해도 산적해 있는 민생문제 등 난제해결이 어려운 판에 국민정서가 지역적으로 갈리고, 이념적으로 갈리고, 또 우리(我)와 적(敵)으로 쪼개지는 시대상황을 걱정하는 국민 마음이 여간 무겁지 않을 것이다. 만약에라도 수구세력의 발호가 두렵고 겁나면 개혁세력은 자칫 우월감에 빠져들어 자충수가 될지도 모를 무리수를 가급적 피하고 초심으로 돌아가 우선 서민생활이 안정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실용 개혁안 마련으로 맞서 가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수구세력의 저항명분이 약해질 것이고 따라서 민심은 이반을 멈출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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