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아가기가 너무 힘든 판에 귀에 들리느니 온통 부딪치는 마찰음과 깨지고 터지는 파열음들뿐이니 보통사람들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치 않을 것이다. 지금의 혼란을 국가조직이 권위적 리더십에 의존해왔던 독재 획일 문화를 떠내려 보내면서 반드시 겪어야 할 현실 과제라고 하기에는 나라꼴이 너무 시끄럽다. 위아래 질서도 없어 보이고 그저 모두 다가 잘나고 똑똑함을 내세우는, 그래서 때로 막가는 듯한 모습이 연출되는 정치 행태가 앞으로 어떤 귀착지를 만들어 낼지 우려되는 바가 적지 않다. 빚어지고 있는 일련의 정치적 파동을 ‘수평적 리더십’의 한시적 분출 효과로 치부하기가 어렵다. 수평적 리더십은 ‘대관(大寬)의 리더십’이 전제돼야 한다. ‘대관(大寬)의 뜻은 말 그대로 큰마음, 곧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도자와 정복자가 같을 수가 없는 것은 정치 지도자는 화합의 기술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갈등을 봉합하기 보다는 화합의 명분을 만드는 큰마음이 아쉬운 때다. 사랑이 없는 정치 지도자는 정치를 관리하고 경영할 능력은 있을지 몰라도 국민을 안심시킬 덕목은 못 될 것이다. 네모난 그릇의 물을 둥근 그릇으로 뜨는 지도자의 여유가 느껴 질 때 비로소 국민은 나라장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는 법이다. 들뜬 민심과 가라앉는 민심의 충돌
다 아는 예기지만 황희(黃喜)정승이 갑(甲)을 흉보는 을(乙)의 말을 듣고 ‘네 말이 옳다’ 고 해놓고 또 을을 욕하는 갑의 말에서도 ‘네 말이 옳다’고 했다. 옆에 있던 부인이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핀잔하자 ‘부인 말씀도 옳다’고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생각난다. 이런 황정승의 바보스러운 듯 해 보이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까닭은 누구나 자신에게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도록 해야 왜곡된 보고를 피하고 민심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교훈적 가치 때문이다. 이는 수평적 리더십을 내세워 집권세력의 맹렬 간부들이 감성과 이성의 균형을 잃은 채 튀는 말로 내분을 일으키는 것과는 다른 이치다. 집권조직이 내분으로 결속을 해칠 때 올 국력 손실에는 국민 일각의 들뜬 민심과 가라앉은 민심이 충돌하는 위험을 상상해야 한다. 지도자의 리더십이 크게 상처입고 국가 기강이 바로 서지 못하면 민심이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것은 흐름의 이치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의 리더십은 그럴수록 초조해서는 안 된다. 행군 중에 얻은 술 한 병을 흐르는 물에 쏟아 넣어 수백 명이 마시게 했다는 주(周)나라 태공망(太公望)의 고사를 이 시점에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이다. 결국 리더십은 기교도 용병술도 아닌 큰 마음이다. 다시 말해 영혼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의 마음이 만인의 심금을 울릴 때 분명한 리더십의 성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도자가 고루 사랑 받을 때라야
정치권이 말하기 좋아하는 화합정치의 요체도 정치지도자가 두려운 존재를 벗어나 사랑받는 존재가 돼야 한다. 두려운 지도자는 권력을 강화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과거 정치에서 보듯 권력정치는 하나의 폭력에 다름 아닐 것이다. 큰마음(大寬))의 리더십하면 춘추전국 시대 때 초(楚)나라 장왕(莊王)의 리더십을 새삼 기리게 된다. 밤늦은 시간에 공신들과 술자리를 벌이는 자리에서 바람에 등불이 꺼지고 깜깜해진 틈을 타 만취한 공신 한 사람이 왕의 애첩 허희(許姬)를 희롱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어둠 속에서 성희롱을 당하게 되자 허희는 그 사내의 갓끈을 떼어들고 빨리 불을 밝히라고 소리치며 끈 떨어진 갓 임자가 나를 희롱했다고 악을 썼다. 이때 장왕의 명령은 등불을 밝히기 전에 이 자리에 있는 사람 모두 갓끈을 떼어 버리라는 것이었다. 취중의 실수를 굳이 밝혀내서 아까운 인재를 잃지 않으려는 그의 큰마음을 후세 사람들은 영원토록 잊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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