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정치판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고 있자니 한때 우리사회에 회자됐던 우스갯소리 몇 토막이 갑자기 생각난다.신부(神父)와 정치인이 한강에 빠지면 사람들은 얼른 정치인부터 건져 낼 것이라고 했다. 이유는 정치인이 빠져있으면 한강물이 오염된다는 것이었다. 또 식인종에게 붙들려 가서도 한국 정치인은 절대로 무사히 풀려난다는 해학적 유머도 있었다. 식인종들도 때묻고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한국 정치인만큼은 기피할 것이라는 도저히 웃을 수만은 없는 우스갯소리를 엮어낼 정도로 우리네 정치실태가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 정치상황을 한마디로 정의해서 ‘속이려는 정치권력과 속지 않으려는 국민과의 싸움’이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지금의 정치권이나 과거의 정치권이나 국민을 향한 한결같은 요구가 자신들을 믿어달라는 것이었다.독재정권은 국민이 자신들을 믿지 못하는 이유를 불순분자들의 책동이나, 정권탈취를 노리는 불온세력, 불건전 언론과 야당의 선동 때문으로 몰았다. 그런점에서는 지금의 개혁세력들 주장과도 크게 변화된 것이 없어 보인다. 이처럼 지금까지 어느 정권도 ‘모든 것이 내탓이요.’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인 적이 없다는 사실은 그만큼 정치권력이 몰염치했고 철면피했었다는 방증일 것이다.한국정치가 조종(弔鐘)을 울리는가
정치 암흑기때 옳은 정치를 기대해서 무한한 신뢰와 국민적 희망을 한 몸에 모았던 민주화 투쟁의 상징적 인물 두 분이 미래역사에 어떤 명암을 나타낼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그분들이 각기 저지른 3당 합당 강행, 두 번에 걸친 정계은퇴 번복행위는 한국정치의 도덕적 회복을 영원히 불능케 하는 것이라고 했다.아니나 다를까, 그토록 입만 열면 개혁과 과거청산, 정치인의 투명성을 강조해 온 열린우리당 신기남씨의 이중성이 확인되면서 이제 이 나라 정치는 적어도 도덕적 측면에서는 확실한 조종(弔鐘)을 울렸다는 생각이다. 오로지 분명해진 것은 아무리 정치권력이 비판 언론을 매도해서 적대시하고 타도 대상으로 삼아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해도 비판 언론이 반드시 살아 움직여야 한다는 존재의 당위성일 것이다. 아직도 속이려는 권력과 속지 않으려는 국민과의 싸움이 계속되는 한 신기남씨 경우 같은 정치인의 이중구조가 또 드러날 개연성이 충분하다. 때문에 집권세력은 이번 진실게임의 결과가 몰고 온 파장을 놓고 등잔 밑을 못 본채 또다시 정략적 역이용에 몰두할 일이 아닐 것이다.대여 투쟁의 전략적 호재 아니다
야권 또한 이번 사태를 얼씨구나 하고 대여 투쟁의 전략적 호재로 삼을 일이 아니라는 사실쯤은 모를리 없을 것이다. 야당 정치가 물리적 탄압을 받던 그때 시절과는 너무도 판이해진 국민 정서를 똑바로 이해하고 있다면 이 기회에 냉정하게 자기 성찰을 시작해야 한다. 정치인이 정치생명을 걸고 자신의 과오나 약점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조금도 부끄러울 일이 못된다. 오히려 그것이 진정 용기 있고 아름다운 정치라는 사실을 이 기회에 확실하게 깨달아야 될 것이다.숨가쁘게 정치적 성장을 거듭해 온 신기남의원이 취임 3개월만에 거대 여당의 당의장직을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그 일이 부친의 친일 전력에 대해 자식이 책임지는 그런 모순적 희생을 강요당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누구도 모르지 않다. 신의원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려 부친의 일본군 헌병 경력을 인정하기 바로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친일했던 집안은 3대가 떵떵거리고, 독립투사 집안은 3대가 가난하고 소외받는 웃지 못할 역사가 계속돼왔다’고 말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원이 공격받는데 대해 ‘21세기판 연좌제’라고 반박하던 여권 인사들이 불과 이틀을 못넘기고 갑자기 신의원의 태도는 위선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비판의 소리를 높게 나타냈다.왜인가. 비로소 위기의식이 심각했던 까닭일 것이다. 그렇다. 집권세력 스스로가 발목잡힌 과거사 논란은 하면 할수록 ‘정체성 차별화’의 목적이 빗나가 자가당착에 빠질 위험이 커질 것이라는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속이려는 권력과 속지 않으려는 국민이 싸우는 세상은 모든 것을 잃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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