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바로 세우기는 민족정기를 일으키고 민족의식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그 같은 뚜렷한 명분이 있기 때문에 군사정권이 종식되면서 문민정부가 빼 들었던 역사 바로잡기의 칼날이 서슬 퍼래 구 기득권의 숨통을 겨눌 수가 있었다.뒤이은 국민의 정부 역시 만약 총선에 이겨 여대야소 정권을 유지했다면 또 다른 역사뒤집기 잔치를 이미 벌였을지도 모를 일이다.언필칭 국민의 정부 정책과 정체성을 계승했다는 참여정부가 탄핵 역풍을 유도해서 17대 국회를 여대야소로 개편하는데 성공한 것은 단순한 여권의 정국 주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든 보수층으로 대별되는 기득권 세력의 초토화를 노릴 것이라는 예측이 분분했던 게 사실이다. 개혁 세력은 자신들의 심장부에 친일의 상징적 역할을 했던 가공스러운 인물의 아들과 딸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게다.때문에 3대가 떵떵거려 온 친일파 집안을 모조리 찾아내서 역사적 단죄를 해야 한다고 비분강개해 마지않았다. 그런데 역사 바로세우기의 화려한 명분이 그처럼 자가당착에 부딪치게 되니 집권세력의 당혹함이 오죽했겠는가.시민단체와의 제휴에 정권의 명운을
여권의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겨우 일촉즉발의 전운이 가라앉고 전선이 일시 소강상태로 접어든 것 같지만 앞으로 벌어질 여야의 기 싸움은 그래서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여권이 비록 국회 다수당 진입에는 극적 효과를 냈지만 그건 바람몰이 성과였다는 점을 부인치 못한다. 그런 만큼 집권세력은 국민 참여를 내세워 기세 있는 시민단체와의 제휴를 적극 모색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정권의 명운을 걸고 진작부터 마련해 놓은 전법상의 전선 구축이었을 수도 있다. 이는 정권 비판신문을 공격하는데 앞장섰던 대표적 시민단체 두 곳이 그동안 갖가지 명목으로 수억원대의 정부 지원자금을 받은 사실 하나만으로도 유추할 만하다. 안 그래도 시민단체의 정치세력화가 위험수위를 넘고 있어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모으고 있는 마당이다. 그러나 그같은 역기능을 분명히 읽고 있으면서도 드러내서 비판만 할 수 없는 것은 사회가 다원화하면서 다양해진 국민의 소리를 대변하는 순기능의 존재가치를 존중해서이다.또한 자신의 이익을 접고 사회문제에 뛰어드는 순수한 열정을 평가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홍위병에 비유돼는 까닭이 있었다
그런데 이름만 대면 금방 알만한 굵직한 시민단체를 포함해 전국 560여 시민단체가 지난 1년 동안 410여억 원의 정부지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 지금까지 그들 단체들이 무수히 쏟아낸 친여 일변도의 논평, 성명 및 TV토론참여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말하나마나 시민단체의 생명은 정치권력이나 돈에 초연한 순수함 그 자체의 도덕성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단체가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항에 야당과 비판언론을 겨냥해 마치 집권세력의 대변자처럼 비난을 퍼붓는 작태를 홍위병에 비유한 야당의 주장이 이제 설득력을 높이게 됐다.더 큰 문제는 순수 사회단체의 충정어린 목소리마저 오해받을 소지가 충분해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순리가 통하지 않는다. 순리가 먹혀 들 수 없는 세상에서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는다는 것이 말이나 될 법한 일이겠는가. 모로 가든 거꾸로 가든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전투적 논리는 현실가치를 왜곡 시키는 첩경일 수 있다.왜곡된 역사는 민족정기를 훼손시킨다는 점에서 기필코 바로잡아야 할 중요과제임에는 한치 어긋남이 없다. 하지만 순리를 무시하는 역사 바로세우기는 또 하나의 현실왜곡에 다름 아닐 것이다. 역사왜곡 보다 현실왜곡이 더 무서운 것은 그로인한 국민적 충돌이 상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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