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가 따로 있겠는가.
정치가 순리를 거역하려 들고, 백성이 불안해하고, 국론이 분분해서 나라 사정이 혼란스러우면 이를 난세라고 할 것이다. 이런 난세를 겪는 민초들의 삶은 고단하기 말할 수 없고 마음이 살얼음판을 걷는 듯 두렵기만 할 것이다.그러자니 경제적으로 좀 있는 자들은 가진 것을 정리해서 국외 탈출(?)을 하고 싶은 생각도 들 것이고 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인생을 아예 포기하고 싶은 충동마저 생길 것이다.물론 국민 다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지금의 나라 사정을 미래를 담보한 대변혁기로 여겨 변화의 추이를 주목하고 있는 세력도 적지 않을 것이다. 좋게 말하면 그만큼 우리사회가 국민의 다양해진 목소리를 수용해낼 저변 확대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참여정부가 시민단체의 역할을 기대해서 세력있는 일부 단체에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 맥락과 연관되기도 하는 것이다.그러나 문제는 소리 없는 다수 국민들이다. 여권의 정치 양상이 이미 당면의 민생 과제를 뒤로 젖힌 채, 또 상생(相生)논리쯤은 해묵은 교과서적 이론으로 답보 시킨 채, 오로지 정권의 목표만을 위해 전진 배치되고 있는 현실이 예사롭지가 않다. 대란에 빠져야 대치를 이룬다는 생각
집권세력이 사활을 걸고 추진하려는 목표는 확연하다. 국가보안법 폐지, 친일과거사 규명, 수도이전,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국민 합의가 어렵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기 때문에 정면 돌파로 한판 승부를 가릴 태세다.어쩌면 세상이 대란(大亂)에 빠져야 대치(大治)를 이룬다는 생각을 가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을 새기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하지만 목소리를 참고 있는 다수 국민들이 어느날 폭발음을 내기 시작하면 상황을 걷잡기가 매우 힘들고 어려워질 것이다.지도자가 정치적 이념이 수반된 분명한 소신과 옳은 통치 철학이 있다는 것은 아주 다행한 일임에 틀림없다. 국민이 노무현정권을 탄생토록 한 것이 그 때문이다. 그 같은 지도자의 덕목이 썩은 정치를 몰아내고 국민이 다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기대를 모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시대 흐름이 어째 다같이 잘 살자는게 아니라 판갈이를 통해 세상 판세를 한번 바꿔 보겠다는 속내가 더 뚜렷해 보인다. 이건 기득권 세력의 저항으로 설명될 일이 아니라 지도자의 통치 철학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나라 위한 마음 하나면 못 풀 일이 없다
즉 지도자의 강한 신념이 나라를 위한 것이냐, 자신의 야심을 위한 것이냐의 관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꿈같은 얘기로 들리겠지만 만약 오늘의 우리 정치권이 모두 나라를 위한다는 마음 하나라면 못 풀 일이 없다. 그걸 알면서도 여권은 지도자의 비위를 건드릴 수가 없고, 야권은 각자의 이해를 저울질할 수밖에 없는, 어떻게 보면 가련한 처지가 조금도 변화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그럼 정치권의 그 어떤 캠페인도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다. 다만 정치를 혐오하는 난세의 상처만 깊어질 따름이다. 혹시라도 집권세력 내에 국가가 대란에 빠져야 대치를 이룰 것이라고 생각하는 측면까지 존재한다면 나라 장래는 한마디로 절망의 끝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난세는 결코 영웅의 대치(大治)를 잉태하는 움직임이 아니다. 이대로는 저주와 원한만을 잉태할 뿐이다.판단이 늦어지면 국가 위기의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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