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들어서야 할 자리에 간판이 들어서 있고, 인격이 바로 서야 할 자리에 외모가 들어서 있고, 용기와 양심이 들어서야 할 자리에 특권과 물질이 들어서 있습니다. 저는 입만 열면 경쟁을 외치고, 손만 들면 점수 잘 받는 법을 칠판에 썼습니다. 원칙과 상식에 어긋나도 대학에만 들어가면 된다는 주절거림으로 아이들을 몰아 왔습니다.감히 누구에게 죗값을 돌리겠습니까. 모두 저의 잘못입니다. 양심을 가르치지 못하고, 진실을 가르치지 못하고, 잘못을 잘못이라 가르치지 못했던 이 선생놈의 잘못입니다.수능시험 부정행위 관련학생들이 무더기로 구속되는 등 파문이 일파만파로 확산되는 가운데 한 고교 교사가 국민 앞에 쓴 참회의 글 내용 일부다. ‘저에게 돌을 던지십시오’로 끝을 맺은 이 글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그러나 나는 감동적이라기보다 충격이라는 표현을 하고 싶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껏 잘못된 세상사(事)를 제 탓으로 돌려 사무치게 자아를 비판하고 절절하게 사죄하는 모습을 전혀 대해 본 기억이 없다.나라 정치판이 아수라장처럼 변해도 통치자가 직접 ‘내 탓이요’하고 용기 있게 나서는 경우가 없었다. 추종 세력들은 한 술 더 떠 남의 탓으로 각색하는 충성 경쟁에 눈이 시뻘게지는 모습만 보아 왔다.야당하는 사람들은 또 행여라도 자신의 무능이 드러날까봐, 혹은 여론의 불똥이라도 튈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고작이었다. 나라 살림살이에 안방 책임자라 할 국무총리가 막중한 시기에 천한 막말로 보름 가량이나 국회를 공전시키고도 죽어도 ‘내 탓’은 않는다. 만만한게 조조 군사라는 듯 모든게 저항세력 탓이고 언론의 선동 때문이라는 논리였다.과거 군사정권이 늘 말했던 불순분자, 불온세력 표현이 그렇게 말 둔갑을 한 것 같다. 국민은 당장에 배가 고파 죽겠다는 데도 미래에 잘 살자는데 뭘 그렇게 언론이 까불고 덩달아 반역세력이 준동하느냐는 식이다. 하긴 남보다 좀 가졌다는 죄 때문에 반역세력으로 내몰려야 하는 모순이 얼마나 사회 불안을 가중시키고, 국민을 갈라놓는지를 모르는데 언감생심 ‘내 탓’을 바랄 바가 못 될 것이다.오죽하면 가진 자 앞에서 정당한 권리주장을 할 수 없었던 못 가진 자들의 주눅든 삶의 편린들이 무수히 잠재돼 있는 정권이 막무가내로 한풀이를 하고 있다는 비아냥이 나올까.옳든 그르든 권력 맛을 익힌 권력은 권력을 사수키 위해 제 자식도 죽일 수 있다는데, 건방진 도전 세력쯤은 단칼에 처치해 버리고 싶을 것이다. 철밥통을 누리는 공무원들은 또 철밥통을 더욱 굳히기 위해 유례없는 공무원 파업도 불사했다.기업 노동자들이 돈 한 푼 더 받기 위해 파업하고 농성하는 것은 이제 애교로 보일 정도로 지금 나라 안의 모든 조직은 위에서 아래로, 또 그 아래로 걷잡을 수 없이 전부가 제 밥그릇 지키고, 키우고, 심지어 남의 밥그릇 뺏기에 몰두해 있다.이런 나라꼴을 분명히 읽고 있는 우리학생들이 그저 점잖고 정직하게만 시험을 치를 것이라고 기대했다면 진짜 어른들이 너무 뻔뻔한 것 아니냐는 구속 학생들의 항변이 내 귀에 들리는 듯하다.우리가 아이들에게 보이고 가르친 것은 ‘사람이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이 되었느냐’가 중요했던 만큼 반칙을 모르면 숙맥 취급 받기가 십상 아닌가.그래서 나는 교육부 자유 게시판에 참회의 글을 올린 어느 고등학교 선생님의 ‘참용기’에 감동하기보다 충격을 느낀다는 것이다.아직까지는 살아있는 양심, 행동하는 양심이 어느 정치인의 구린 냄새나는 정치 슬로건이 아닌 진실된 모습으로 이 땅에 살아 있음을 발견한 신선한 충격을 이해 못하지 않을 것이다.그 선생님은 자기가 죄인이니 자신에게 돌을 던지라고 했다.정말 돌 던질 자(者) 있겠는가? 오히려 우리 모두가 그 선생님으로부터 돌을 맞아야 할 사람들 아닌가?
2004년 12월 5일 5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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