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며칠만 자고 뜨면 2005년 새해를 맞게 된다. 숨 가쁜 한해를 지나오면서 다들 무척이나 힘들고 고단했다. 불안한 나머지 주눅이 든 가슴을 여러 차례 쓸어 내리기도 했을 것이다.난생 처음으로 식당 업자들의 솥단지 데모도 구경했고, 공무원 노조가 만든 장관을 지명수배하는 전단도 구경했다. 경제 불황이 오죽했으면 밥장사조차 못해 먹겠다고 절규했을까, 그 참에 국가 공조직의 기강 문란이 어느 정도였길래 장관을 주요범인 취급하는 수배전단을 뿌릴 수 있을까, 아연해진 국민들의 절망감은 더 덮을 데가 없지 싶다.이렇게 절망하는 민초들 앞에 펼쳐지는 이 나라 정치권 그림은 정말 화지 위에 그려지는 그림 같으면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사람이 칠흑같은 어둠속에 길을 잃고 암흑에 갇혀 버려도 차분히 갈 길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이 밤을 지새면 곧 새벽동이 튼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동이 언제 틀지 예측이 불가능해지고 아예 해가 뜨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면 사람들은 생지옥을 느끼고 스스로 아비규환에 빠져들 것이다.지난 세월에서 우리는 해(年)를 바꿀 때쯤이면 누가 시키기나 한 것처럼 한해를 뒤돌아보고 나름대로의 새해 설계에 분주해 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뭔가가 잡힐 것만 같았고, 그래서 새해에는 반드시 성취할 게 있어 보였던 세상에 대한 기대가 우리를 지탱케 했다.그러나 오늘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손에 잡힐 것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확실해 보이는 것은 새해 벽두부터도 나라 안이 온통 깨지고 부딪치는 소리로 무척이나 시끄러울 것이라는 전망뿐이다.국민이 지난 날 정치를 혐오해서 정치하는 사람들을 옳게 보지 않은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그들 집단이 너무 부패했던 까닭이다. 진저리를 친 국민들이 깨끗한 정치를 염원해서 정치 판갈이를 시도했던 결과가 지금의 17대 국회다. 초선의원들이 국회를 장악하는 그림으로 나타난 점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많은 국민들은 이제 이 땅의 정치가 확연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인식에 부정하지 않았었다. 투명하고 밝은 정치가 국민의 얼어붙은 마음을 빠른 시일에 녹여 낼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봤던 게 사실이다.그랬던 것이 지금 우리네 현실은 여우 피하자 호랑이 만난 격이 되고 말았다. 기껏 바꿔놓았다는 국회 그림이 알고 보니 썩은 냄새 진동하는 ‘정치꾼’ 대신에 피 냄새 풍기는 ‘싸움꾼’으로 메워져 있는 정치모양에 국민이 발을 구르고 있다.차마 낯가죽 두껍게 이대로 해를 넘길 수가 없었던지 여야 지도부가 막바지 세밑 협상에 가까스로 성공 하는 듯했다. 옳은 정치라면 이들 지도부의 합의 사항은 반드시 이행돼야 한다. 내부적 불만 때문에 당 대표간의 협약이 깨지고 합의안이 존중되지 못한다는 것은 정치권이 앞장서 질서를 무시하고 사회 균열을 독려하는 것과 진배없는 행위다.수도 서울의 여유와 평화를 상징하듯 했던 시청 앞 잔디 광장이 대립 집단의 충돌 마당이 되고 있는 것도 그 같은 정치 행태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뿐인가, 국회의사당 앞이 온통 이해 집단의 농성장이 돼버린 것 또한 오늘의 정치권이 ‘우리는 모르는 일’로 말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여권 강경파들이 ‘한나라당과 타협할 바엔 좌절이 낫다’고 말하고, ‘싸우는게 우리 모습’ 이라는 데는 할말이 없다.이런 가운데서 화합을 입에 올리고 상생이 어쩌고 한다는 것이 손톱만큼의 의미도 없을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속절없이 절망할 수만도 없지 않은가.대통령도 달라지고 있는데 개혁세력은 발전적 대안으로 빨리 화답해서 희망의 2005년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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