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과 함께 인심이 다 변하고, 산천이 다 변해서 풍경이 다 달라졌어도 우리네 설 명절은 조금도 다르지 않게 우리를 맞는다.어김없는 민족 대이동이 일어났고 거기에 민족의 저력이 새삼 느껴지기도 했다.고향땅이 반갑기 그지없고 헤어져 산 가족 친지들의 정겨운 모습이 귀성 길의 고단함을 일순간에 잊게 했을 줄 안다. 모처럼 환해진 얼굴로 한자리에 모인 대가족이 궁금했던 집안 얘기를 끝내고 나면 화제는 당연히 나라문제로 이어져서 열띤 토론을 벌일 게다. 특히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토론 아닌 정부여당에 대한 치열한 성토장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또 재보궐 선거를 앞둔 지역에서는 설 연휴 동안의 사랑방 토론이 선거 민심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그래서 여야 정치권 모두가 설 연휴 민심잡기에 각별히 나서고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또한 여권 핵심부의 더 비상한 관심은 지금 한창 진행 중인 과거사 규명문제에 쏠려 있을 듯하다. 역사 파헤치기가 일으키는 국민 반응에 이목을 집중하는 것은 그 일이 정권의 장래와 절대로 무관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현정권 궁극의 목표인 기득권 세력 교체를 실현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 역사를 손질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집권세력을 더욱 초조하게도 할 것이다.작은 정부를 표방해 온 참여정부의 청와대 비서실 인원이 어느새 480여명에 이르고 있는 것 역시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대통령 비서실 업무란 것이 바람직하게는 대통령과 내각 사이의 가교 역할일 것이다. 가교 역할이라는 것은 서로간의 뜻을 정확히 전달하고 조율해내는 과정상의 실무를 일컫는 것일 게다.그런데 비서실 기구가 너무 크면 부작용을 크게 일으킬 수 있다. 아니 당연히 그렇게 될 것 같다. 가장 쉽게 우려할 수 있는 문제가 정부 각 부처의 실 국장들이 소신을 접고 청와대 비서실의 뜻을 기다리게 된다는 점이다. 서슬 퍼렇던 유신 독재 때 대통령 비서실 인원이 225명이었다고 한다. 그런 것이 문민정부 때 오히려 400명으로 늘고 지금은 또 80여명이 더 늘어난 현실이 돼 있다.그만한 인원 규모이면 청와대, 내각 간 가교역할을 벗어나서 청와대 비서실의 내각 장악을 실질적으로 유도해 내기에 모자람이 없을 덩치다. 과거 그 절반의 인원으로도 대통령 비서실이 내각을 충분히 장악했던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국민은 때로 사안의 잘못됨이 틀림없는 해당부처의 정책 오류가 빚어낸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내심으로는 주무 장관에게 절대적 책임을 돌리려 하지 않는다. 오로지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 말 한 마디만 주목해서 놓치지 않으려 드는 것이다.가끔 부처 장관이나 실무책임자가 특단의 경기 부양책을 내놓거나, 또 때로 획기적인 제도개선안 같은 것을 내놔도 국민은 솔직히 그걸 해당부처의 자율 안으로 안 본다. 따라서 성공한 정책의 공(功)도 대통령 몫이고, 실패한 과(過)도 대통령 몫이 될 수밖에 없다.많은 국민들 생각이 이러한데 기회 있을 때마다 청와대가 나서서 내각 자율의 책임행정을 강조하는 것이 그다지 의미가 있을 것 같지 않다.예컨대 김대중 정부 때 잘못된 경기 부양책으로 신용카드가 남발돼서 지금 신용불량자가 넘치고 있지만, 수많은 민초들은 그때의 경제부총리 이름조차 애써 기억코자 않을 것이다. 그 이유가 어차피 이 나라가 대통령 책임제라는 제도적 형식논리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그보다는 정책 입안과정부터 방대한 비서실 조직이 ‘청와대의 뜻’으로 정부부처를 장악해서 실행시킨 실질적인 결과로 인식한 까닭에 실책의 책임소재 또한 대통령에 두는 것이다.이런 점에서 특히 정책의 민감한 사안 때마다 일어났던 졸속 시비가 대통령 비서실 역할과 상관된 때가 아주 많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문제는 역사가 변하는 만큼 통치 방식도 더욱 달라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제 시대의 주제가 민주화를 거쳐 선진화로 바뀐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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