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불장군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은 사람이 혼자서는 도저히 세상살이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랄 때까지는 부모형제를 의지하지만 다 자라서는 가족과 함께 사회를 의지해서 살기 마련이다. 사회를 의지함은 강제규범, 도덕규범을 망라한 사회제도를 따르며 동반자, 동지, 동료들을 신뢰해서 제몫을 다하며 서로 힘을 합하는 정신일 테다. 이처럼 믿음을 바탕으로 서로 의지하며 한세상 살아가는 것이 인간 삶이라고 보면 인생이란 것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도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날이면 날마다 크든 작든 세상 소란이 끊이지를 않는다. 저마다 이유 없지는 않다. 이념충돌, 이해관계, 별별 사연이 다 있다. 싸움 끝에 생긴 상처는 아픈 만큼 성숙을 가져올 수도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는 깊은 앙금만을 남길 수밖에 없다. 가슴속 앙금을 가진다는 것은 증오를 키우고 강한 적대감을 심는다는 의미다. 적개심을 일으키고 서로 증오하다보면 언젠가 한바탕 전쟁이 불가피해진다. 전쟁에 이긴 쪽은 물론 전리품을 얻게 돼 즐거울 것이다. 반면에 패한 세력은 빼앗긴 것을 되찾아 오기 위해 절치부심 기회를 노리는 것이 속세 이치다. 또 세상에 권력이란 것이 존재하는 한 주류계급, 비주류 계급이 없을 수가 없다. 따라서 지금 사는 곳이 지상낙원이라고 해도 인간은 끼리끼리 서로 부딪치는 소리를 내면서 살아갈 도리밖에 없는 것이 인간세계 한계일 게다. 그래서 저마다 내편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생각과 목적이 같은 사람끼리 동지적 관계를 맺고 목표를 실현코자 함도 욕망이란 관점에서 보면 인간 성취욕에 다름 아닐 것이다. 때문에 사람은 죽을 때까지 무엇을 얻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 믿고 의지했던 사람이 자신의 이해를 저울질한 나머지 등을 돌려서 오히려 위해를 가해오는 배신행위도 적잖게 일어난다. 이럴 때 느껴지는 배신감은 필설로 다 형언키가 어려울 것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노릇이다. 이처럼 사람이 사람을 저주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 다른 모든 일에서도 생각하는 사고가 온전할 리 없다. 생각이 온전치 않은데 머리는 차고 가슴은 덥기를 기대할 수가 있겠는가. 욕심만 가득해져서 이기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서 의리와 신의를 말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물에 빠진 것을 건져낸 사람에게 내 보따리 내놓으라고나 안하면 다행일지 싶다. 세상사는 철학이 자신 외에 누구도 믿지 말아야 하는 것이면 우리 사회는 수도 없는 독불장군으로 차고 넘칠 수밖에 없을 일이다. 만약 이런 독불장군들이 득세라도 하는 날이면 세상은 온통 요동을 칠 것이 뻔하다. 독불장군에게 상생(相生)원칙이 들어서고 통합 원리가 먹혀들 여지가 근본적으로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다른 어떤 힘의 논리가 작용돼서 그에 굴복되지 않는 이상 말이다. 지금 정치권이 입만 열면, 또 기회 있을 때마다 민생을 말하지만 역시 그들의 독선적 사고가 어찌되지 않는 한 그건 한낱 말 성찬에 그칠 따름이다. 어쩌면 못살겠다고 나선 국민들 매질을 떠넘기려는 계획된 수순일지도 모를 일이다. 더 볼 것 없이 그렇게들 민생을 챙기겠다고 호언했던 2월 국회가 어찌됐나 하나만 봐도 정말 국민 해먹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예외 없이 독불장군들의 독선논리가 판을 쳤고, 급기야는 국회의사당 안에서 내빼고 잡으려는 전대미문의 추격전이 빚어지기도 했다. 아마 인터넷상에서 이 모습을 본 국민들이 할 말을 잃었을 줄 안다. 이게 오늘의 대한민국 현실이다. 무슨 수로 딱히 어떻게 할 방법도 없다. 꼭 한 가지가 있다면 갑자기 늘어난 독불장군들이 스스로 외로워지는 처지를 옳게 인식하는 길 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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