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행위는 한 인간의 가장 개인적이고 고독한 결단이다. 그런데 그 같은 고독한 개인적 결단이 연쇄성을 나타내는 것을 보면 자살에도 그 행위를 전염시키는 어떤 균(菌)이 있는 것 같다.희랍 신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여신들이 모여 사는 콩규리아의 성스러운 숲에 인간의 때가 묻어 들면서 여신들이 타락하기 시작한다. 이를 비관한 나머지 대 여신 아르테미스가 나무에 목을 매 죽는다. 이어 신성(神性)과 속성(俗性)의 갈등을 이기지 못한 여신들이 같은 나무에 목을 맸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에는 열녀소(烈女沼)같은 실체적 역사가 있다. 이 땅 도처에 가문의 명예를 위해 열녀들이 투신한 곳이라는 얘기가 구전으로 내려온다. ‘자살론’으로 유명한 뒤르켐은 자살에 모방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자살에는 개인적 고뇌를 넘어서 자살을 유발하는 사회적 공통분모가 있으며, 누군가가 사회적 자살을 하게 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낮아져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법으로 따라죽게 된다고 했다. 이를테면 외진 밤길을 혼자 가는 것보다 두셋이 가는 것이 덜 두렵듯이, 죽음의 길도 그렇게 생각하는 심리가 자살에 투시되어 연쇄자살을 이끈다는 것이다. 또 자살학자 매신저는 ‘죽고 싶은 원망’과 죽고 싶게 만든 사회적 요인에 대한 ‘적대(敵對)원망’의 상반감정(相反感情)이 대립해서 적대원망이 클 때 연쇄자살을 하게 된다고 했다. 이렇게 보면 연쇄자살은 곧 항의자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근래 영화배우 이은주씨 자살이후 모방자살 사건이 우리사회 일각에 무슨 유행병 번지듯 일어났다. 서울 중앙지검이 이은주씨가 숨진 지난 2월22일 이후 3월10일까지의 관내 자살사건을 분석한 결과 하루평균 2.13명이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수치는 이은주씨가 자살하기 전인 평균 0.84명에 비해 2.5배나 증가한 수치다. 이 가운데 80%가 이씨와 같은 목을 매는 자살 방법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씨의 자살이 돌발적이고 충동적이기 쉬운 20,30대의 극단적인 행동을 자극한 것으로 분석됐다.이로써 ‘베르테르 효과’(유명인의 사망을 모방한 자살)가 젊은 층에 미치는 영향력을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망인구 가운데 자살이 사망원인의 5위라고 한다. 지난해에는 자살이 급증해서 하루평균 3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나타났다.이는 192명의 사망자를 낸 대구 지하철 참사가 1주일에 한번씩 일어나는 것과 같은 규모라고 지적했다.이런 사회현상을 놓고 일부 젊은층의 극단적 논리와, 급격한 사회 변화에 떼밀려 여지없이 나약해져버린 허무주의 패배주의를 탓하고 국가가 자살예방대책을 세우라고 해본들 대안이 쉽지 않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살균은 개인의 절망을 자양분으로 번식하는 이치를 더욱 가까이 주목하지 않고서는 자살이라는 지극히 고독한 결단을 막을 방법은 없다.대학 입시 제도에 절망을 느끼지 않은 수험생이 꽃다운 나이에 자살할 마음을 갖지는 않을 것이다. 또 노후를 보장해주는 국가제도가 있는데 숱한 노인자살이 일어날 까닭이 없다. 또한 인내하고 노력하면 반드시 훗날의 성공이 담보된 희망 있는 사회라는 믿음을 자살로 배반할 이유가 하등 없을 것이다.거짓말과 말 바꾸기가 통상의 정치행태가 돼 있는 현실에서 국가가 내놓은 청사진에 안도를 느낄 국민이 얼마나 있겠는가? 사람이 절망해서 미래를 포기할 때면 그 마음속엔 증오와 저주만 남게 된다. 가공스러운 범죄 잔학심리를 일으키기도 한다. 단지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쥐가 고양이와 같이 죽자는 것과 혼자 죽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