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남이 장(場)가니 나도 간다는 말이 있다. 한술 더 떠 초상집에서 실컷 따라 울다 말고 누가 죽었느냐고 묻는다 라는 말도 있다.웃자고 지어낸 말이 아닐 것이다. 무작정 남 따라 하기를 좋아하는 민족 근성을 누군가가 야유해서 만든 말일지 싶다. 유행에 민감한 한국 사람들이란 평가를 우리 국민들의 순발력으로 오인할 필요 없다. 이 역시 가만 있다 말고 남이 가는 장에 장바구니 들고 같이 따라 나서는 것과 같은, 따라 하기에 아주 익숙한 국민성이 반영된 것임에 다름 아니다.하긴 우리 한국사회는 남 따라 하는 것이 세상을 잘 살 수 있는 최상의 지혜일지 모른다. 우리말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했다. 옛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을 가르칠 때 항상 이 말을 교훈적 가치로 각인시켜왔다. 자식이 객지 학교에 진학할 때나 군대 갈 때도, ‘어쨌거나 모난 돌이 되지 말고 그저 남 따라 하라’고 가르쳤고 첫 취직한 아들에게도 이 말을 잊지 않았다.덕분에 우리 백성들 남들 흉내 내고, 눈치 살펴 섞여 가는 데 이골이 나 있다. 상황 봐서 남 욕하는데까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입에 거품 물고 끼여들기 일쑤고, 생각 없이 멀쩡한 한 사람 여럿이서 병신 만들어 놓기가 다반사다.정치하는 양반들 걸핏하면 대세(大勢)를 앞세운다. 이 또한 모두 장바구니 들고 나서니 할 일 없이 같이 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말하자면 대세가 기울었으니 더 딴소리 내어 따질게 없다는 막무가내식이다. 이래서 민중 선동 잘하는 정치인이 더욱 기세를 올리는 모양이다. 열광하는 무리 속에 끼이지 못하면 자신이 소외되는 느낌을 받는다는 젊은이도 있다.얼마 전 필자는 군대간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어느 사병과 말 나눌 기회가 있었다.필자가 요즘 우리 군인들 주적개념이 있느냐고 물었다. 처음 조금 망설이는 듯하던 신병티를 채 벗지 못한 이 병사의 입에서 튀어나온 대답은 상상할 수 없는 ‘충격’ 그 자체였다. 주적이 놀랍게도 같은 내무반의 고참병사라는 것이다. 의외의 상황에 아연해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필자를 향해 병사는 태연하게 말을 잇고 반문까지 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을 정말 몰랐었느냐」고 말이다. 불과 수개월 전 지뢰밭으로 싸여있는 비무장지대의 철책선이 정교하게 뚫린 사건이 발생했을 때, 군 당국은 신원 미상의 민간인 월북자 한 사람 소행으로 발표했었다. 그때 국민들 마음이 어떠했는지 아는가? 이제 우리 군의 경계태세가 민간인이 그 무시무시하다는 철책선을 끊고 들락거릴 정도까지 됐다싶어 자괴감에 휩싸였었다.겨우 그 일을 잊을까 했는데 이번에는 술에 만취한 힘없는 민간인이 성능 보잘 것 없는 어선을 끌고 월북하는 사건이 백주에 눈앞에서 일어났다. 군 내부적으로는 얼차려 시키는 지휘관이나 고참 병사가 주적이 되고 있는 판이다. 우리 국민은 지금 바로 이런 국군을 믿고 엄청난 국방비를 세금으로 물고 있다. 그럼에도 왜 우리 군이 이 지경이 돼 버렸느냐고 한탄하는 사람이 별반 눈에 안 띈다. 모르긴 해도 모난 돌로 정 맞기가 싫어서 할 말 참는 까닭이 있을 것이다. ‘보수 꼴통’ 공격에 지쳐있는 측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움켜 쥔 것만은 놓지 않으려는 바둥거림이 처절하다.이거 앞뒤 안 맞는 것 아닌가? 아직까지는 속모를 낯선 집단 마음 편하라고 빗장 풀고 속절없이 내 집 담장을 무너뜨렸다가는 물려받은 집 터전마저 잃고 말 것이라고 왜 국민 앞에 더 크게 소리치질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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