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자녀교육 방식이나 사회적 리더십 덕목 가운데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항목이 아주 비중 있게 요구 되고 있다.유교정신이 사회문화를 지배했던 가부장제의 우리네 옛 가정에서 아버지의 존재는 절대적 봉건 군주와도 같은 위치였다. 따라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권위로 가족에 군림하는 아버지의 말 한마디가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은 대단했다. 사윗감을 모르면 그 아버지를 보면 된다고 까지 했었다. 그런 만큼 아버지가 내리는 한마디 호령이 자녀들에게는 훈육 그 자체였다. 반대로 칭찬의 한 말씀은 옥음과도 같은 효과였으리라.이때 훈육 당한 자식은 질책과 호령을 두려워한 나머지 매사 조심하는 마음이 더해서 두드러지는 일체의 행위를 자제하여 삼가게 될 것이다. 칭찬받는 자녀는 기가 살아서 더욱 칭찬받을 일을 만들려고 애쓸 것임에 틀림없다.이렇게 보면 왜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이 따로 필요치 않을 것이다. 더욱이 글로벌 시대의 경쟁력 제고에는 국민성향이 진취적이어야 함이 물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힐책보다 칭찬이 매우 중요한 리더십 덕목이라는데 별 이의가 없을 것 같다.그런데 우리 민족은 어째서 칭찬에 그처럼 인색했는지 이 시점에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세계 어느 민족보다 탁월한 지혜와 슬기를 가졌었다는 우리 선조들이, 또 자식사랑에 특별했던 우리 어른들이, 아랫사람에 대한 면전(面前)칭찬을 아끼고 금기시 하다시피 한데는 반드시 그만한 까닭이 있었을 줄 안다.칭찬을 받게 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일단은 우쭐해지기 마련이다. 특히 아직 수양이 덜된 수학중의 자녀들에게는 자칫 건방진 자만심과 턱없는 오만을 기를 우려가 없지 않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 땅의 옛 어른들은 일찌감치 또 하나의 지혜를 터득했지 싶다.전통적인 우리말 속에 들어있는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그저 만들어진 게 아닐 게다. 주위의 무관심속에 오로지 자신만의 투혼으로 세계 정상에 우뚝 서는 7전8기의 성공 신화를 만들어 국민적 갈채를 한 몸에 받았던 한 권투선수가, 얼마 안가 그 기량을 탕진해버린 사연을 40대 위로는 모를 사람이 없을 것이다. 가까이는 온 지구촌을 뒤흔든 붉은 악마들의 저력을 이끌어내고 민족적 투지를 불 지폈던 월드컵 축구 영웅이, 자만에 빠져 있다가 애석히 무너지는 모습도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본 바 있다.이 나라 정치상황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겸손한 자세로 국민의 지지와 기대를 모았던 정치지도자가 힘을 얻고 나면 어느새 오만한 눈길로 군림하는 못된 현실을 꾸준히 겪어 왔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고 했던가. 이땅 정치판의 가장 못된 버릇이 내가 한 건 혁명이고 상대가 한건 쿠데타라는 논리다. 이보다 더한 오만이 또 있을 것 같지가 않다.지난 4·30 재보선후의 여야 표정을 보라. 압승 직후에 보였던 겸양한 자세를 접고 서서히 자만에 배인 모습을 드러내는 한나라당의 모양새도 그러하지만, 애써 재보선 참패의 결과를 왜곡 평가하려는 여권의 자세가 분노스러울 지경이다. 이 정도면 옛 우리 어른들이 남긴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고 이쁜 놈 매 한대 더쳐라’는 말의 갚은 의미와 교훈적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고도 남을 것이다.갈수록 이기적 사고가 더해지고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는 세상인 만큼 우리는 냉정한 머리로 오랜 역사가 전하는 민족 지혜를 배워야 한다. 그 길만이 내 자식을 그 흔한 공주병, 왕자병에서 지켜내고 오만한 독선이 세상 더럽히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수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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