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공자가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몹시 궁해져 이레 동안이나 굶고 있을 때였다. 피골이 상접해진 공자가 낮잠을 자는 사이 제자가 쌀을 구해와 오랜만에 밥을 지었다. 밥이 거의 다 될 무렵에 잠을 깬 공자가 멀리서 바라보니 제자가 솥안에 손을 넣어 밥을 꺼내 먹는 게 아닌가. 곧 밥상을 받은 공자가 못 본 체 말하기를 “방금 꿈속에서 선조를 뵈었는데 밥은 깨끗한 것으로만 올리라고 하더구나”라고 했다. 제자가 대답하기를 “안됩니다. 솥 안으로 재가 튀었는데 밥을 버리는 것은 상스럽지 못하다고 판단해서 그걸 집어 먹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에 공자가 속으로 ‘믿을만한 것이 눈이로되 또한 믿을 수 없는 것이로다’ 하고 탄식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공자 말 가운데 “의지 할만한 것이 마음이로되 마음 역시 의지할 만하지 못하도다”라는 대목이 있다.마음을 의지하지 못함은 사람이 충동을 억제하고 유혹을 물리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마음의 간사한 변화를 다스리기가 힘들다는 뜻일 게다. 눈을 믿을 수 없다는 말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밥솥 안에 날아든 재를 스승의 밥에 넣지 않기 위한 행동이 눈으로 살피기에는 제자가 스승의 밥을 먼저 먹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만약 공자가 모르는 체 제자의 마음을 그렇게 떠보지 않았다면 그 제자는 공자의 마음속에 아주 버릇없는 고약한 인상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처럼 직접 눈으로 보고 내린 마음 결정이 때로 진실을 엄청나게 왜곡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때문에 우리는 지금 눈에 비춰지는 현실만으로 이 땅의 장래를 함부로 예단해서는 안 된다. 근래 눈에 드는 상황으로는 어느 국민도 이 나라가 희망적이라고 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허무주의, 패배주의 만연이 우려될 정도로 절망을 말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같이 혼미한 나라사정이 위험수위를 육박하고 있는 현실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심전심의 국민 마음을 위정자만 모를 까닭이 없을 것이다.누구 말처럼 정부 부동산 정책이 강남 아줌마 수준보다 못하고, 자식 군대 보내서 개죽음 시킬 수 없어 자식 국적 포기케 하는 부모나 군대 기피를 위해 손가락 자르는 젊은이를 이제 더 이상 나무랄 수가 없고, 믿었던 우먼파워의 스타 경찰이 제 손목에 수갑을 차게 되고, 북한 김정일이 이 땅 대권 향방에 영향력을 나타내고, 국회의원이 정치 후원금 적게 준다고 기업인에게 술병을 던지고, … 별별 기막힌 일들이 하루가 멀게 눈앞에 펼쳐지는 작금의 나라 형편을 보고 있자면 금방이라도 나라가 결딴 날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인데 국민더러 희망을 잃지 말라고 해서 통할 문제가 아니다.허무주의 패배주의에 빠져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파괴적인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이 시점에 중요한 것은 국민이 산비탈의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남북문제를 비롯한 굵직한 현안문제가 정치적 목적으로 가려지거나 가시적 효과를 기대해서 숲 없이 언제 말라 죽을지 모를 나무를 과시하는 것과 같은 꼼수 대처는 분란만을 가중시킨다는 말이다. 무슨 일이든 덮으려 들면 의심이 더해질 수밖에 없고, 피하려고 들면 불신과 분노를 증폭케 하는 법이다.시중에 난무하는 숱한 억측들이 누군가가 어떤 정치적 목적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는 말들이 아닐 것이다.원래 나라일이 투명하지 않으면 온갖 유언비어에 귀 기울이게 되는 것이 민심이다. 더욱이 참여정부가 임기 중반을 넘기고 있는 상황이다. 이대로 민심 불안이 깊어 가면 정권적 차원의 수습이 불가능해진다. 더 머뭇거릴 필요 없이 현 정권이 그리고 있는 솔직한 그림 전체를 국민 앞에 펼쳐서 국민이 나무에 가려 있는 숲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민심을 안정케 하는 최선의 방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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