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조선시대 나라 경제권은 종로바닥을 중심으로 했던 육의전(六矣廛)상인들이 장악했었다. 육의전에는 지금의 전경련과 같은 도중(都中)이라는 단체가 있었다. 그 우두머리를 대행수(大行首)라 부르고 상인들이 꼭 지켜야 할 도중도(都中道)를 만들어 엄격히 시행했다.말하자면 정부의 간섭 없이 상인들 스스로 절체절명의 윤리 강령을 만들어 놓고 위반 행위를 감시하는 것에서부터 벌칙 기능까지를 자체적 수단으로 해결했던 것이다.이 같은 도중도 강령에는 5금3권(五禁三勸)이 있었다. 다섯 가지를 금하는 첫째가 난전(亂廛)을 금하는 것이었다. 난전이란 것은 전문 업종 이외에 문어발식으로 업종을 늘려 영세 상인들의 생업권을 위협하는 장사행위를 일컫는 것이다.둘째로 매점매석을 금했다. 셋째가 금락가(禁落價)라고 해서 덤핑을 못하도록 했다. 넷째가 금유객(禁誘客)으로 남의 단골손님을 뺏는 행동을 금하고, 다섯째는 정경유착으로 이권을 노리는 행위를 금기로 삼았다.세 가지 권장했던 것은 첫째가 도중의 식구들을 내 부모 형제를 대하듯 하고, 둘째로 도중 식구들의 환난을 제 일처럼 여기고, 셋째는 명절 때를 골라 가난한 백성에게 적선하라는 것이다. 도중도는 번 돈의 사회 환원까지를 이렇게 강령으로 정해 놓았었다.옛 상인단체가 이처럼 엄격한 윤리강령을 만들어 시행한데는 그래야 할 만한 무슨 정치적 이유 같은 게 있지 않았다.다만 재(財)가 도를 넘어서 시장을 어지럽히고 민심과 멀어지면 반드시 재(財)가 재(災)를 부르게 되는 섭리를 꿰뚫은 지혜일 것이다.우리는 현대를 살면서 이 땅 기업들의 흥망성쇠 과정을 꾸준히 봐 왔고, 그에 얽힌 숱한 비화들도 들어서 익히 알고 있다. 그 가운데는 정경유착의 밀실거래로 기업 빌딩을 높이고 문어발식 상업 확장으로 시장 질서를 교란시키다가 멸망해서 사라진 반짝 기업 이야기도 적잖이 있지만, 반면에는 반칙을 기반으로 대기업 대열 진입에까지 성공했던 기업 뒷얘기도 없지 않다. 기업이 이런 태생적 문제를 안고 있다면 그런 기업은 정치권력이 작심만 하면 언제든 알거지로 만들어 버릴 수가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부자가 꽤 있지만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부자가 드문 사실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또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황제처럼 살 수 있는 나라가 우리 대한민국 아니었던가?차라리 시장경제를 옛날처럼 경제단체가 자율로 장악해서 자체의 규범과 법도로 시장 질서를 지키게 했으면 서민경제가 오늘 같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그랬으면 최소한 재벌기업이 택배사업에까지 뛰어들고, 바나나 수입에 안경장사, 심지어 김치장사, 만두장사에 이르도록 잡탕 장사꾼이 되어 재래시장의 영세상인들 숨통을 조이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재래시장을 황폐화 시키는 무슨무슨 마트니 뭐니 하는 것들이 생겨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또한 권력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을 테니 정치권력과의 유착 시비도 훨씬 덜 할밖에 없다. 그뿐일 텐가. 기업 종사자들이 그들 가족들을 서로 내 부모 형제 대하듯 하여 누군가가 환난에 처하면 함께 제 일처럼 여기니 그 지긋지긋해 보이는 노사분규가 일어날 까닭도 없다.게다가 가끔씩 가난한 국민에게 적선을 아끼지 않으니 부자들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생길 것이다.옛 도중도의 오금삼권이 현실에 다시 살아올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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