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가정 지키기 위함이라는데...’ 사이코패스는 아냐

신상공개가 결정된 고유정이 지난 6일 오후 제주 동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뒤 머리카락으로 얼굴(왼쪽)을 가렸으나 7일 오후 같은 장소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진술녹화실로 이동하며 얼굴을 들고 있다. [뉴시스]
신상공개가 결정된 고유정이 지난 6일 오후 제주 동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뒤 머리카락으로 얼굴(왼쪽)을 가렸으나 7일 오후 같은 장소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진술녹화실로 이동하며 얼굴을 들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지난달 전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치밀하게 시신을 훼손유기한 고유정(36)씨의 범행에 국민적인 공분이 일고 있는 가운데 고 씨의 범행 동기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사건에 사용했던 표백제 태연하게 환불···평상심 유지, 일반적인 사람 아냐

의붓아들 살해 의혹도 번져···현 남편, 고유정 살인 혐의로 검찰 고소

고유정 씨는 지난달 25일경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전 남편인 강모(36)씨를 만나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고 씨는 지난달 18일 미리 제주에 도착해 마트에서 칼과 고무장갑 등 범행 도구를 미리 구입하는가 하면, 증거인멸에 필요한 표백제를 사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다.

또 표백제를 환불하는 등 범행 이후에도 평상심을 유지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고 씨가 전 남편을 살해한 이후 남은 물품을 마트에 환불하는 장면이 CCTV에 찍힌 것이다.

이에 대해 프로파일러(범죄심리학자)인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보통사람이라면 범행 후 사람을 죽인 사실에 매몰돼 다른 일상적인 활동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남은 물품을 반납해서 환불받는 다는 것은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 사람이 사이코패스다’ ‘아니다를 떠나서 (범행 후) 마트에 들러 남은 물품을 환불받는 행위만 봐도 일반적인 사람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평가했다.

고 씨는 여전히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며 자신의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상 공개 결정에 따라 얼굴이 언론에 공개된 이후에는 수사에 더 비협조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뼛조각 발견했지만

신원 확인 어려워

고 씨가 혐의를 부인하는 동안 범죄 입증 자료는 차곡차곡 쌓여나갔다. 경찰은 지난 5일 인천시 서구 재활용품업체에서 고 씨에게 살해당한 피해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뼈 일부를 발견했다.

경찰은 지난달 31일 고 씨가 김포시 아버지 명의 아파트 내 쓰레기 분류함에서 전 남편 강 씨의 시신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흰색 종량제봉투를 버리는 모습을 확인했다.

이후 해당 봉투의 이동 경로를 쫓아 봉투에 담긴 물체가 김포시 소각장에서 한 번 처리된 후 인천시 서구 재활용업체로 유입된 것을 확인했다.

발견된 유해는 뼛조각으로 소각장에서 500~600도로 고열 처리돼 3cm 이하로 조각난 채 발견됐다.

경찰은 유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 의뢰해 피해자의 것인지 유전자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유해가 이미 소각된 상태로 신원 확인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고 씨는 범행 당일 제주를 빠져나오면서 강 씨의 시신 일부를 바다에 버렸다. 선박 CCTV에는 고 씨가 약 7분가량 봉투에 담긴 물체를 바다에 버리는 장면이 찍혀있다. 이후 완도에서 양식업을 하는 어민이 시신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발견해 신고했다. 그러나 동물 사체 일부로 생각한 어민은 봉지를 다시 묶지 않고 바다로 던져버렸다. 완도경찰과 해경은 어민이 신고한 봉지와 내용물을 찾기 위해 양식장 인근 바다를 수색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경찰은 못 밝힌 범행 동기

검찰은 밝혀낼까

경찰은 고 씨의 차량에서 발견한 혈흔을 정밀 감식한 결과 수면제 성분인 졸피뎀이 검출됐다는 국과수의 회견 결과를 토대로 고 씨가 약물을 이용해 전 남편을 제압하고 범행을 벌인 것으로 봤다.

고 씨는 경찰의 이 같은 추궁에 감기 증세로 약 처방을 받은 사실이 있다면서도 약의 사용처나 잃어버린 경위는 명확히 설명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고 씨는 일관되게 범행을 부인했다. 살인은 맞지만 자기방어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정당방위라는 주장이다. 경찰은 우발적 범행을 강조해 추후 형량을 줄이기 위한 전략으로 봤다.

이에 따라 경찰은 고 씨의 살인 정황만 밝혔을 뿐, 정확한 범행 동기에는 한 발짝도 접근하지 못하고 수사를 마무리 했다.

경찰은 지난 11일 최종 브리핑을 통해 이번 사건을 고 씨의 치밀하고 계획적인 단독 범행으로 결론을 냈다.

경찰 관계자는 고유정이 현재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극단적인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고 씨에게 정신적 질환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 동부경찰서는 지난 12일 오전 살인 및 사체유기훼손은닉 등의 혐의로 구속된 고 씨를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고 씨가 호송차에 올라타는 과정에서 격분한 피해자 유가족이 고 씨에게 고성과 함께 호송차를 막아서는 등 한 때 호송현장은 극심한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일부 유가족은 서장실로 올라가 항의의 뜻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족들은 호송차가 동부서를 떠난 뒤에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등 흥분된 마음을 가라 앉히지 못했다.

고 씨에게는 또 다른 의혹도 있다. 그가 자신의 아들을 죽였다는 것이다. 현 남편은 고 씨를 살인죄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현 남편인 A(37)씨는 고 씨가 자신의 아들 B(4)군을 죽였다는 내용의 고소장을 지난 13일 제출했다.

B군은 고유정의 의붓아들로 지난 32일 오전 10시경 충북 정주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A씨는 잠을 자고 일어나보니 아들이 숨을 쉬지 않아 119에 신고했다고 진술했다.

경찰 조사에서 고 씨는 B군과 다른 방에 자고 있어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겠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과수는 B군이 질식사로 숨진 것으로 판단했다. B군에게서 외상이나 장기손상, 약물 및 독극물 등은 발견되지 않았다.

제주에 있는 친할머니 집에서 지내던 B군은 청주에 있는 아버지 A씨를 만나러 왔다가 변을 당했다.

한편 경찰 수사를 통해 고 씨의 잔혹하고 치밀한 계획범죄 정황이 드러나면서 고 씨에게 사형을 내려달라는 청원이 14일 오전 기준 14만 명을 넘어섰다. 청원 동의가 하루에 23000여 명씩 증가하는 등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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