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 매사에 급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모르긴 해도 우리들 하루 일을 처리하면서 아침 시작부터 저녁 늦은 무렵까지 ‘빨리, 빨리’를 수십 번은 더 뇌일지 싶다. 걸음도 빨라야 하고, 밥도 빨리 먹어야 하고, 글 쓰고 일 처리하는 모양이 빠를수록 능력 있어 보이고 심지어 화장실에서 일 보는 것조차 서둘러야 할 판이니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숨찬 삶을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아마 먹고 살기에 급급했던 우리 조상들이 모처럼 먹을 것을 발견해서 앞 다투어 내뛰었던, 그처럼 빨리 움직이지 않고서는 몫을 빼앗긴다는 강박관념이 민족정서를 지배했던 까닭일 것이다.더 말할 것 없이 새치기해서 끼여들기 잘하는 못된 버릇이 약빠르고 재치 있게 보인 그런 세태를 살아 온 우리 민족이다. 요즘 이순신 장군 일대기를 다룬 TV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거기 보면 무려 열아홉 번의 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 장군이 확실한 승기(勝機)를 잡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장면이 있었다. 그 같은 전략적 기다림을 가지고 장군이 다른 마음을 먹어 빨리 치지 않는다고 모함하는 상황도 전개했다. 모함이 먹혀들고 급기야 장군을 잡아가두고 요절 낼 수 있었던 게 임금의 조급한 마음에 불을 지르는 계략을 세워서였다. 수백년 전의 일이지만 보는 사람들 무척 분통 터져 했을 줄 안다. 그런데 문제는 수백년 전에 일어났던 이런 엇비슷한 정치상황이 현실 정치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가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임기가 정해진 정권이 임기 내에 뭔가 색다른 치적을 남기고 싶어 할 때 정국은 격류를 타야 한다. 총력으로 급격히 밀어붙이지 않으면 인사권자로부터 역시 다른 생각을 가졌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 민심은 뒷전일 테고 오로지 집권자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는 충성 경쟁의 각축만이 치열해질 따름 일 테다.옛 조선조 태조 때 일어났던 왕자의 난에 대해 익히 알 것이다. 두 차례나 골육상쟁을 치른 방원 왕자가 계획하고 노린 것이 임금 자리였다는 사실은 천하가 다 아는 터였다. 그럼에도 난을 성공시킨 방원은 서두르지 않았다. 빨리 왕위에 앉으라는 중신들을 비롯한 측근 가신그룹의 집요한 재촉 압력을 뿌리치고 적장자(嫡長子)서열 원칙을 앞세워 사실상의 장남격인 방과 왕자에게 왕위를 승계토록 만들었다. 마침 방과 왕자에겐 적실 소생 왕손이 없었다. 이를 명분으로 자연스럽게 왕세제로 책봉되어 2년 후 정종의 양위로 조선조 3대왕에 오른 태종 왕 방원을 놓고 정권의 정통성 시비는 훗날까지도 일체 일어나지 않았다.당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절대 권력자로 부상한 방원 왕자가 빨리 왕 자리에 오르고 싶으면 권력 주변에서는 어느 한 곳 말릴 곳도, 거리낄 것도 없었다. 본인의 속마음 또한 왜 급한 욕망이 일어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는 민심을 얻지 못한 절대 권력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꿰뚫고 있었던 게다. 특히 판을 뒤집는 변혁 정치를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민심을 끌어 들여야 했고, 그러려면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했을 것이다.다 아는 케케묵은 이야기를 이 시점에 뭣 하러 꺼내 놓느냐고 의아해할지 모르지만 근자 빚어내는 이 땅 현실정치를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다 알고 있는 역사 이야기라도 정치권이 한번쯤 상기해 봤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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