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갖는 공포감에는 많은 종류가 있다. 병든 사람이 가지는 죽음에 대한 공포 외에도 인간 삶의 언저리에는 공포감을 느낄 만한 숱한 요소들이 항시 존재한다. 그러나 거짓말이 주는 가공스러운 공포를 생각해 본 사람이 크게 많을 것 같지는 않다. 근자 이 땅은 가뜩이나 어렵게 꼬여가는 정국에 핵폭탄처럼 터져 나온 국정원의 도청 문제로 들끓고 있다. 국가정보기관의 도청 의혹은 진작부터였다.언론의 간헐적 의혹 제기가 끊이지 않았던 터에 특정 정치인의 보다 구체적이고 신빙성 있어 보이는 폭로도 접해온 바다. 그때마다 국민은 혼란스러웠지만 설마 하는 마음에서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는 정부 말을 애써 믿어보자는 눈치였다. 더구나 정부기관이 망라돼서 온 신문에 “국민 여러분! 절대로 휴대폰 도청은 안 되니 안심하고 통화하십시오”라는 대문짝만한 광고까지 냈으니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을 듯했다. 하긴 국민을 속이고 얼러대는 것이 이 나라 정치권력의 속성임을 모를 국민이 없을 텐데 그런 정부 다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국민이 아주 많지는 않았을는지 모르겠다.어쨌든 정보통신부장관이 직접 나서서 통신과학의 현주소를 조목조목 들어가며 도청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말을 그 나라 국민이 믿지 못한다는 것은 이만저만한 무례(?)가 아닐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나 다를까, 막상 뚜껑이 열리고 보니 그 지경이다.허탈하고 참담해하는 국민 마음이 너무 두려웠던 나머지 김승규 국정원장은 판도라의 실체가 겉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대국민 고백형식으로 국민께 용서를 빌었다.김원장은 지난 10년 동안의 국정원 도청팀 운영을 시인하면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참여정부 들어서는 도청장비 폐기와 함께 일체의 도청행위가 없었다고 했다. 이 같은 고백적 발표가 나오자 세상은 온통 뒤집어진 느낌이다. ‘백로’처럼 또 ‘군계일학’같이 보였던, 아니 그렇게 보이려고 더덕더덕 분칠했던 까막새가 폭포로 쏟아지는 장대비를 맞아 본래의 형상을 드러낼 것 같기도 하고 짐작하기 어려웠던 정경유착의 극치점이 발견되는 찰라의 진운이 감돌기도 한다.어디선가 읽은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서당아이 셋이서 길을 가다 돈 한 닢을 주웠다. 나누어 가질 수가 없어 거짓말 내기로 이긴 아이가 돈을 갖기로 했다. 한 아이가 말하기를 “우리 아버지는 바람이 강해서 지리산이 쓰러진다고 지게작대기 들고 산허리 받치러갔다”고 했다. 이어 한 아이는 “우리 어머니는 가뭄에 논바닥이 갈라진다고 열 마지기 논에 오줌누러갔다”고 응수했다. 나머지 한 아이는 “우리 누나는 장마가 오래 간다고 찢어진 하늘 꿰매러 갔다”고 떠벌였다.아이 셋은 도저히 승부를 가릴 수가 없었다. 궁리 끝에 서당 훈장을 찾아가 심판을 맡기기로 합의했다. 자초지종을 들은 서당 훈장이 “거짓말 내기를 하다니 이런 못된 버릇을 봤나! 이 훈장은 평생 거짓말 한 적이 없다”고 하자 엎드려 있던 아이 셋이 일제히 일어나 소리쳤다. “야, 훈장님이 이겼다. 한 닢은 훈장님 차지다”라고 말이다.평생 거짓말을 안 했다는 거짓말이 제일 큰 거짓말이라는데 세 아이의 인식이 합치한 것이다. 뜬금없다고 생각할 일이 아니다. 나만은 결백했다고 강변하면서 음모론을 꺼내고 열 받은 모습을 힘들여 간접 중계해봤자 국민은 가공(可恐)한 거짓말 공포만 더 느낄 따름일 것이다.진정한 국민 마음은 이번 기회에 한국정치사를 걸레로 만들어놓은 음모와 배신의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나기를 염원할 것이다. 국기를 뒤흔든 불법 도청사건이 노무현 정권과 김대중씨 간의 ‘정치게임’으로 본궤도를 이탈하여 본질을 왜곡하는 작태를 이번만은 국민이 좌시치 않을 것이란 예감이 온다. 가공(可恐)한 거짓말 공포에서 국민이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참여정부의 제일과제로 떠오른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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