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의 생활이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당국은 그동안 경제위기가 아니라고 항변해왔다. 연 3.8%의 성장률은 세계적으로 볼 때 낮은 수준이 아니며, 매일 주가가 올라가고 수출도 잘 되고 있는데 웬 아우성이냐는 식이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간의 7일 회담에서도 이와 비슷한 시각차를 나타냈다. 그러나 나라밖에서 매긴 노무현 정부에 대한 성적표는 딴판이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정부경쟁력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2002년 세계 50위에서 지난해 60위로 10계단 추락했다. 항목별로는 국민의 정치 참여만 소폭 상승했을 뿐 정치적 안정성이나 정부 역량, 정책의 질적 수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 부패에 대한 통제 등 나머지 5개 항목은 모두 하락했다. 이는 정부 경쟁력이 김대중 정권 때보다도 후퇴한 것으로 그동안 국민이 속으로 짐작해 온 정부의 한심한 경쟁력 수준이 구체적 수치로 나타난 셈이다.노무현 정부가 지난 2년 6개월 동안 견지해 온 경제정책은 성장보다는 반시장적이라 할 수 있는 분배에 무게를 뒀다. 그러나 정부는 분배를 위해서는 성장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않고서는 위기탈출의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경쟁력 제고를 위한 해법은 이미 나와 있는 것이다. 경쟁 촉진을 통해 민간 부문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그러려면 정부는 먼저 평등주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규제를 완화하고 공정한 심판관 역할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념과 명분에 집착해 반시장적인 정책을 쏟아내서는 곤란하다. 시장을 불신하는 정부치고 경쟁력이 올라간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정부 경쟁력 제고의 첫 단추는 비대화된 정부의 규모와 권한부터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산업자원부 주관으로 6일 서울에서 개막된 「산업혁신포럼 2005」에 참석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도 작은 정부를 주문했다. 그는 “산업화 시기에는 ‘큰 것’일수록 좋았지만 21세기에서는 ‘작은 것’에 주목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성장을 강조한 전문가도 있다. 7일 로드리고 라토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한국정부가 성장위주의 거시경제정책을 계속해야 한다”고 조언한 바도 있다.한국경제가 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요즘 주목받는 과거 정권 때의 한 경제 관료가 있다. 전두환 대통령시절 경제수석을 지내며 위기에 처한 한국경제를 구한 김재익(1983년 아웅산묘소참사 사고 때 사망)이 바로 그다. 경제에 문외한인 전두환 대통령이 그를 경제담임교사로 차출한 것은 한국경제의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안정·자율·개방의 경제철학으로 체질개선을 통해 한국경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게 사실이다. 그의 안정화정책 덕분에 우리는 1980년대 후반 경제호황이 가능했던 것이다. 친구들이 그가 전두환 정권에 참여한데 대해 “김재익은 김일성이 밑에 가서도 일할 사람”이라고 비난하자 “만약에 내가 김일성을 설득시켜 그 사람의 생각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해야지”라고 단호하게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노무현 정부도 정파의 이해관계를 떠나 현실을 직시하고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김재익과 같이 국가관이 뚜렷한 경제전문가를 찾아 경제위기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정권의 한 각료까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경제를 모르고 대안이 없으니까 옛 관료들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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