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이후의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국민을 위한(for the people) 국민의(of the people) 국민에 의한(by the people)이라는 민주주의의 이상을 교과서적 이야기가 아닌 현실의 문제로 이끌기 위해 정치권력과 맞서 끝없는 저항을 해왔다. 그런 가운데 남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사람도 있고,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에 기증하는 사람도, 음지에서 자비를 베풀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도 많다. 지금같이 어렵고 힘든 경제 여건이지만 오늘이라도 불쌍한 사람 사연이 보도되면 당장에 구름처럼 성금이 답지할 것이다. 그만큼 대한민국은 선량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많은 나라이다.
국민정신이 선량하다는 것은 더없이 자랑스러운 일이다. 남의 것을 뺏고 싶어 침략근성으로 이글거리는 민족과는 비교될 수 없는 한국인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한국인임을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하는 지경이 됐는가? 까닭은 길게 설명할 게 없다. 우리나라에는 국민 개인적 선(善)은 있지만 공동의 큰 선(善)이 없다는데 있다. 제대로 된 나라가 되려면 작은 선과 큰 선이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상호작용을 이루어야한다. 그럼 공동의 큰 선은 누가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당연히 정치권의 몫이다.그러나 8·15광복 후 이 땅의 정당들은 오로지 잿밥에만 눈이 어두워 붕당정치와 보스정치, 패거리정치로 날을 지새운 바람에 작금의 정치실종 위기를 맞았다. 너를 살려 두고서는 내가 살 수 없다는 상극정치가 이 땅을 지배한 지가 60년인데 국민이 이 나라 정치를 혐오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 노릇이다.위정세력이 늘 하는 말이었지만 참여정부 들어서도 민심에 굴복한 정치권이 상생정치를 하겠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그즈음이라도 정치권이 상생의 큰 선(善)을 보였다면 이 나라는 국민의 선량함과 더불어 얼마든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됐었다. 우리 국민들은 누구를 독하게 물고 늘어지다가도 참회하는 진정성이 엿보이면 금방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그만큼 착한 민족이다. 이걸 정치하는 사람들이 모르지 않을 텐데 뱃속의 욕심 때문에 나라꼴을 이렇게 누더기로 만들어놓은 것이다.시민단체들의 공동 선(善)을 기대해봤지만 그들 또한 총체적인 대안 없이 작은 시야와 지엽적인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수박을 쪼개지 못하고 겉만 핥는 식의 중구난방식 개혁론이 세상을 오히려 어지럽게 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뿐만 아니라 공동의 선을 추구한다는 유명 민간단체가 때로는 야합설에 휩싸여 국민을 아연실색케 한 적도 있다. 게다가 이제 선량한 서민들 한숨 섞인 담배 한 대에 홧술 한 잔 마시기도 점점 어렵게 돼가는 형편이다.국민 건강을 위해 흡연인구를 줄인다는 정책이 담배 값 대폭 인상이란다. 또 서민들이 몸에 해로운 독한 술을 덜 마시게 할 목적으로 소주 세를 인상 시킨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바닥에 떨어진 열린 우리당의 지지율 상승전략, 즉 열린 우리당의 반대로 무산되는 그럴듯한 당정 간의 묵계가 숨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라 아직은 더 지켜볼 일이다.반면 절대로 부의 세습을 막겠다던 정부가 5억 이상의 재산 상속세를 종전의 50%에서 10%로 격감 시킨다고 한다. 뭐가 뭔지 도무지 어리둥절해서 종잡을 수가 없다. 세계는 지금 미래 대비를 위해 분주히 뛰고 있는데 국내 시장흐름은 헷갈리기만 하고, 오직 작은 권력 다툼에 매몰된 이 나라 정치권은 공동의 선(善)을 잊은 지 오래이며 차기권력만이 눈에 보일 뿐이다. 그래도 이나마 나라가 지탱해 나가는 것은 국민 개인적 선(善)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부끄러운 한국인으로 살기 싫어 이민가고 싶다는 국민숫자가 계속 늘고 있는 사실이 충분히 이해되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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